철학적 좀비 논증

차머스(David Chalmers)가 제시한 철학적 좀비(philosophical zombie) 논증은 물리주의 혹은 물질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고안된 사고실험이다.

일단 철학적 좀비 개념은 많은 물리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핵심적인 논제인 ‘수반 논제’(supervenience thesis)를 겨냥하고 있다. 수반 논제는 다음과 같다.

(S) 심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에 수반한다.

덧붙이자면, ‘수반한다’라는 술어가 약수반인지 강수반인지에 따라 (S)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약수반과 강수반의 정의를 이용하여 (S)를 재정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WS) 심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에 약수반한다 ↔ 모든 가능세계 w와 개별자 x, y에 대해, w에서 x와 y가 모든 물리적 속성들을 공유한다면 x와 y는 w에서 모든 심리적 속성들을 공유한다.

(SS) 심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에 강수반한다 ↔ 모든 가능세계 w1, w2와 개별자 x, y에 대해, w1의 x와 w2의 y가 모든 물리적 속성들을 공유한다면 w1의 x와 w2의 y는 모든 심리적 속성들을 공유한다.1)

(WS)는 단순히 물리적 속성을 공유하면서 심리적 속성을 공유하지 않는 가능세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SS)는 두 대상이 서로 다른 가능세계에 있더라도 물리적 속성을 공유하기만 한다면 무조건 심리적 속성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르게 말하면, (WS)는 기본적으로 같은 세계에 속하는 두 대상에 대한 논제이고, 따라서 양자가 w1에서 물리적 속성을 공유하더라도 세계가 달라지면 (예컨대 w2에서는) 심리적 속성을 공유하지 않을 가능성을 허용하는 반면, (SS)는 그러한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하간 이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S)가 양상적 주장이라는 점이고, 어떤 대상이 동일한 물리적 속성을 가지면서 다른 의식 상태를 가질 가능성을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부정한다는 점이다.

한편 차머스는 좀비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2) 철학적인 의미에서 좀비란 의식을 가진 존재와 모든 물리적 속성을 공유하면서도 의식만은 가지고 있지 않은 대상을 가리킨다. 나와 다른 가능세계에 쌍둥이가 하나 있다고 해보자. 쌍둥이의 신체는 세포 하나하나에서부터 오장육부와 두뇌에 이르기까지 나와 동일하다. 또 쌍둥이는 나와 행동적으로 동일하다. 그는 나와 똑같이 웃거나 울거나 화내거나 떠드는 행동을 하며, 초콜릿을 보면 군침을 흘리고 아스파라거스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며, 얻어맞으면 맞은 부위를 감싸 쥐고 소리를 지른다. 즉 그는 나와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두 사람은 단 한 가지 지점에서 다른데, 이는 쌍둥이가 나와 달리 현상적 느낌(phenomenal feel)만은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얻어맞았을 때 나는 아픈 감각적 느낌을 의식에 떠올리는 반면, 쌍둥이에게는 그러한 느낌이 없다. 초콜릿을 먹을 때 나는 의식에 달콤쌉싸름한 감각을 느끼는 반면, 쌍둥이는 그러한 감각을 느끼지 않는다.

(이 좀비가 아니다.)

이런 좀비가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은 당연히 희박하다. 의식이 없는 사람은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병리적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처럼) 의식이 있는 사람과 다분히 기능적으로 다를 것이며, 신체 내 신경 체계의 상태도 다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차머스의 논점은 좀비가 현실적이라는 점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구상 가능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좀비는 논리적 모순 없이 개념적으로 정합적이다.

상식적인 견지에서 봤을 때, 좀비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반 논제 (S)를 논박할 반례를 하나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좀비가 논리적 모순 없이 상상 가능하다는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제 좀비를 가지고 강수반 논제에 대한 반례를 구성해 보자. 차머스에 의하면 좀비가 있는 가능세계(wz라 하자)가 존재한다. 세계 wi의 나 i와 좀비 가능세계 wz의 좀비 z는 모든 물리적 속성을 공유하지만 모든 심리적 속성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이 사례가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하다면 (SS)는 틀렸으며, 따라서 심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에 강수반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약수반 논제에 대한 반례를 구성해보자. 나와 좀비가 공존하는 세계 wk가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가능세계 wk가 존재한다. 이는 (WS)에 대한 반례이다. 이렇다면 심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에 약수반하지 않는다.3)

물리주의자 입장에서는 이 논증을 반박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길을 택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예컨대 차머스가 ‘심리적 속성’이라는 개념을 잘못 쓰고 있다고 응수하는 것이다. 즉 ‘심리적 속성’이라는 용어는 그 의미상 ‘물리적 속성에 의해 완전하게 결정되어 있음’을 함축하고, 따라서 좀비는 개념적으로 모순되고 논리적으로 상상조차 불가능하다고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비가 비정합적인 개념임을 보이는 것은 ‘둥근 사각형’이 비정합적인 개념임을 보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보인다.


1)Kim, J., “‘Strong’ and ‘Global’ Supervenience Revisited”, Supervenience and Mind: Selected Philosophical Essay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79-91, 80-81.
2) Chalmers, D., The Conscious Min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94-97.
3) 차머스 자신이 명시적으로 강수반과 약수반 논제를 각각 비판하지는 않지만, 좀비 논증이 양쪽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논증이라는 점을 차머스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P는 우주의 모든 미시물리적 진리의 연접[이다.] […] Q는 임의의 현상적 진리이다[.] Q가 어떤 개별자가 특정한 현상적 속성을 예화한다는 진리라면, P&~Q는 모든 것이 미시물리적으로 우리 세계와 같지만 문제의 개별자가 연관된 현상적 속성을 예화하지는 않는다는 진술이다. 이 경우, 세계가 좀비 세계이든 아니면 문제의 개별자가 그저 물리적으로 동일한 세계의 좀비이든 모두 P&~Q의 참을 보이기 위해 충분하다.” Chalmers, D., The Character of Consciousnes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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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소문으로만 듣던 좀비놈의 정체를 알게됐습니다. 당연히 그림의 좀비인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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