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철학사를 뒤적이다 알게 된 사실인데,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출판된 지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명성을 얻었고, 키에르케고어는 사후에 50년이 지나서야 이름이 알려졌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초판은 1885년에 겨우 40부만 니체 본인의 자비로 출판되었다가 그가 사망한 1900년대 무렵에야 점차 인정받게 되었다네요. 이런 걸 보면 철학의 세계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정말 이해하기 힘드네요. 인터넷 아카이브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몇 십년 전 책들이 발굴되어서 재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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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경우 1940년 정도에 진행된 하이데거의 니체 강의를 발판으로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고, 그 이전에는 예술가들에게 읽히던 문학작품일 뿐이었다지요. 그리고 또 하이데거와 함께 나치와 얽혀서 추방됐다가 20세기 후반에 복권되어 다시 철학으로 사유되고 있지요. 이제 고작해봐야 50년 정도 밖에 다뤄지지 않은 철학인데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 보면 참 기묘하긴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러한 역사적 콤플렉스? 같은 게 남아있어 정치철학적 니체를 다루는 전공자들의 논문 대다수에는 “니체의 철학의 폭력성 혹은 지배 등은 현실 정치권력에서의 우열 혹은 폭군을 ‘절대’ 의미하지 않는다” 와 같은 구절이 적혀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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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아요! 니체 논문 읽다 보면, 꼭 저런 내용 한 번씩은 나오더라고요!
저도 그런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기는 한데, 이따금씩은 너무 니체를 미화? 세탁? 하는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