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좋은 의견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저도 동의합니다. 특별히, 저는 윤리학에서 말씀하신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마크 롤랜즈라는 철학자가 했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생각엔, 자신의 삶을 도덕적 이유에 따르게 하느냐, 이기적 이유에 따르게 하느냐 하는 선택은 궁극적으로 무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선택은 궁극적으로 자아 규정적인 선택이다. 즉, 어떤 이유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유형의 인간이 되고 싶은가 하는 그 인간상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다.(마크 롤랜즈,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SF영화로 보는 철학의 모든 것』, 신상규·석기용 옮김, 책세상, 2014, 262-263쪽.)
(2) 콰인주의 실재론
사실, 저는 이 글을 적으면서 제가 콰인의 '존재론적 상대성'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초월론적 유명론'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한 퀴르거는 이 입장이 결국 (콰인과 퍼트남이 제시한) '존재론적 상대주의'라고 지적하기도 해서요. 여하튼, 말씀해주신 것처럼, 최선의 언어나 최선의 이론이 결정된 뒤에야 의미론적 상승을 통해 존재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콰인주의적 지적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우리의 언어와 외계인의 언어 중 무엇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지를 최종적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가 속성에 대해서도 언어 상대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구인인 우리에게는 속성이 너무나 자명하게 존재하는 것이지만, (4)를 이해 못하는 외계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요. 물론, 저는 속성에 대한 언어를 사용하는 '지구인'이기 때문에, 외계인들을 향해
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강력한 이론'으로 받아들이는 언어가 정말 다른 이론에 비해 객관적으로 강력하다는 근거를 대보라고 누군가가 요청한다면, 저는 결국 비트겐슈타인처럼
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언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생겨먹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언어를 강력한 것으로 받아들일 뿐이라는 거죠.
(3) 자아의 동일성
저는 자아의 동일성 문제에 있어서 데넷의 입장을 지지해요. '나'라고 지칭되는 대상이 어딘가에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다중 도안(multiple draft)'의 연속을 '나'라고 부른다는 입장이에요. 더 쉽게 말해, '나'라는 존재가 무엇이고 누구인지는 매 순간 끊임없이 쓰여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거죠. "집에서 편하게 늘어져 있을 때의 나가 진정한 나야!", "배고파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 나의 동물적 본성이 나야!",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분투하는 의지적 모습이 나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거에요. 이런 입장들은 '진짜 나'라는 숨겨진 대상이 어디에 존재하고, 나머지는 다 '거짓된 나'인 것처럼 평가하지만, 사실 '나'라는 존재는 저 모든 것들을 관통해서 매 순간 다시 쓰이고 있다는 게 제가 지지하는 견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