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보기엔 동양철학이나 종교철학도 거대한 개X철학의 체계일 수 있겠고, 하이데거, 헤겔, 니체, 들뢰즈 등이 엄밀성을 결여한다고 그렇게 비판하는 학자들도 많아왔고요. 한국의 많은 철학자나 철학자 출신 작가 분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고요.
이런 걸 본다면, 학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추구하는 디서플린이 "매트릭스 시뮬레이션 이론" 류의 한낱 공상이나 무의미한 고담준론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날지 아닐지 어떻게 확증과 보장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없어도 마치 과학자가 맡겨진 실험과제를 해나가듯이 철학자 역시 업무를 계속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보실까요?
그런 확증은 오로지 동료들, 즉 당대나 후대의 학자 사회에 의해 결정된다. 진정한 철학의 기준이란 결국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진정한 철학과 개X철학을 나누는 내용의 내적 기준이 있다. 엄밀성, 지시성, 적용 가능성 등, 이것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역사적이고 위대하다"고 불리더라도 일개 블로거들의 잡문과 마찬가지로 개X철학에 불과하고, 실제 몇몇 유명 철학자들은 이 기준에 따라 우리의 건설적인 담론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인식론적 패러다임에 따라 위 두 가지로 시각이 나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실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만한 좋은 의견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를테면 과학의 경우 종종 '진짜 과학'과 '사이비 과학(Pseudoscience)'을 구분하고는 하죠. 흔히들 후자를 두고는 '틀리지조차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칼 같이 나누려는 20세기 후반기의 여러 시도는 다 나름의 한계에 부딪혔고, 이를 두고 래리 라우든은 진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나누는 시도가 무의미하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요컨대 중요한건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을 가리는 것이지, 과학인지 아닌지 가르는건 영양가가 없다는 발상이죠.
이런 의미에서 '진짜철학'과 '가짜철학'을 나누는 것이 (1) 진짜 vs. 사이비 과학처럼 '철학이냐 아니냐' 자체로 나뉘는지, (2) 좋은 vs. 나쁜 과학처럼 '철학인건 다 맞는데, 이게 좋냐 나쁘냐'를 기준으로 나뉘는 것인지를 미리 따져보면 향후의 건설적 논의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평 감사합니다! 프래그머틱한 접근을 말씀하시는군요. 다만 "좋으냐 나쁘냐"의 기준조차 선결된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면 갈등은 여전히 남게 되지 않을까 의문이 있습니다. 예컨대 지적설계론은 사이비지만 근본주의 종교인에겐 자신의 신념을 강화해주는 "좋은" 과학이고, 일론 머스크의 "시뮬레이션 이론"도, 심지어 나치 우생학도 나름의 목적에 봉사하는 한에서 "좋은" 철학으로 인정되어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무언가 더 공리적인 것을 좋음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면, 결국 이는 답정너(question-begging)로의 무한퇴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좋음이란 전혀 자명한 가치가 아니고, 개개인마다 그 정의가 다르기에 그 적용을 완력으로 강제 중재하기 위해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철학은 궁극적으로 정치의 가치론적 요구에 종속된 (메타-)이데올로기의 역할 밖에 할 순 없는 것일까요?
먼저 라우든 같은 경우엔 '좋은 과학'의 기준으로 전통적인 '이론적 덕목들', 예컨대 '경험적 자료에 의해 잘 지지됨' 같은 특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기준에서 근본주의 종교인에게 그 신념을 강화해준다는 '좋음'은 적어도 현 맥락에서의 '좋음'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비슷한 기준이 철학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면, '좋은 철학'을 판가름하는 것이 "정치의 가치론적 요구에 종속된 (메타-)이데올로기"로 후퇴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론적 덕목(예. 강력함)이 객관적인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를테면 (필요이상으로 과격한 사례이지만) 다음과 같은 '상대주의자'도 있을법합니다.
그래, 지구구형설이 지구평면설보다 증거가 많은 것은 인정하겠어. 하지만 그게 대체 내가 지구평면설이 더 옳다고 보는거랑 무슨 상관이야? ! 난 '증거가 많다' 같은 것은 덕목으로 보지 않아! 어차피 뭘 믿느냐 마느냐 기준은 다 상대적이라고
이처럼 "선결된 목적" 일체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경우라면, 확실히 말씀해주신 바대로 갈등은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말씀하신 라우든의 견해를 비판하자면, "Goodness"를 "Virtue"로 치환하는 것은 또다른 동의어 덧대기(gift-wrapping)에 불과할 뿐 전혀 문제해결이 아니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음은 덕목의 하위개념이므로 결국 "좋음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덕목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은데, 가치의 인식론적 요건에 대한 물음을 단순히 술어의 변경으로 충족시키려 한다면 "덕목의 기준은 윤리, 윤리의 기준은 도덕, 도덕의 기준은 유연, ⋯" 식으로 무한 순환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만을 낳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 "전통"을 기준으로 한다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근본주의 종교인 입장에서 현 과학 중심 포스트모던 시대는 2천여 년의 확립된 전통을 저버린 "악한" 사회이므로 전통에 입각하여 창조과학·제정일치를 따르는 "전통적으로 좋은" 사회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나치와 현재 미국 대안우파도 이 알고리즘을 따릅니다.
그래서 라우든과 같이 상대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학자는 적어도 일말의 "좋음"이나 "잘"과 같은 가치판단이 결국 어떤 최상위 결정자의 독재에 근거하고 있고, 따라서 힘의 논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태를 먼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평면지구설·일루미나티설·기후음모론 등 사이비 과·철학들은, 경험적 증거의 누적이 자동적으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반례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 지지세력은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주의에 입각해 실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 자료와 신념을 조화시킬 우회로를 갱신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강화합니다. (예: 힐러리 클린턴의 "피자게이트" 논쟁)
다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이해관계를 침해하는 정책의 결정자가 아니라는 데 안심하고, 그들의 인식론적 결함은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한 채 우리만의 일상을 잘 영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넓은 담론을 지향해야 할 철학이 그런 깔개로 밀어넣기(sweeping under the rug) 태도를 유지하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철학이 목적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방임한다면 남은 공백은 똑똑한 민중에 의해 알아서 다수결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독재자들이 채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짜 철학은 있지만 학자들이 무능력해서 열매가 없다"고 하던지, 아니면 "모든 철학은 가짜 철학이다"라고 선언해야만 할 선택의 기로에 놓인 처지인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