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철학의 과제들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철학은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를 매우 흥미롭게 읽고 몇가지 질문이 생겨 글을 씁니다.

  1. 철학이 더 이상 총체적이고 고정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면, 현대철학은 무엇을 하고 있고 그 목표는 무엇인가요?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의 목표가 다르고 세부적 주제에 따라서도 목표가 다를 것 같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2. 철학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정 주제에 관해 양립불가능한 주장들이 공존해 왔습니다(예: 합리론과 경험론, 실재론과 유명론). 그러나 자연과학에서는 이와 다르게 실재를 설명하려는 여러 이론들 중 어느 한 이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나) 더 타당하다고 결론지어집니다. 왜 철학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한가요?

  3. 실재에 관해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은 확실히 불가능한가요? 아니면 단지 인간 이성이 그것을 파악하거나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인가요?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형식과학적 진리들뿐인가요?

조금은 애매모호하고 거창한 질문들인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계실테니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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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의 목표가 딱히 바뀌었다 생각하진 않습니다. 여전히 철학자들은 진리가 무엇이며, 지식이 무엇이며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들이 뜻하는 정의를 명확히 찾으려 노력하죠.
차이가 있다면, 이제 이 정의의 자리에 "총체적인 진리"가 더 이상 없을뿐입니다. 더 이상, 그 진리 하나를 알게되면 모든 것을 깨닫는,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장 진리와 가장 가까운 말인 "참(truth)"조차 이 정의가 무엇인지 학자들이 온갖 상이한 주장을 하고 있죠.

(2) 나아가 여기서 도출되는 것은 작성자님이 말하신 실재 개념을 더 이상 학자들이 안 믿는다 할 수도 있죠. 사실 전 작성자님이 질문 (3)에 쓰신 실재의 의미가, 제 답변 (1)에 나오는 총체적 진리와 같은 의미로 쓰인거 같다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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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님께서 가지고 계신 의문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쉽게 대답을 드리기는 다소 어려울 것 같네요. 말 그대로, ‘현대철학 일반’의 경향에 대해 질문하셨다 보니, 철학의 분과를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 질문에 댓글을 적기가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거칠게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 공부하실 때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로 참고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실재에 관해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은 확실히 불가능한가요?

오늘날 철학자들이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학적인 이유입니다. 과거와 달리,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한 사회 전체에 통용되는 공적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고,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고, 학문의 각 영역이 대단히 세분화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회, 모든 문화, 모든 학문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허황된 것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죠. 물론, 철학 비전공자분들이나 소위 ‘재야철학자’분들 중에는 여전히 자신이 우주의 진리를 깨우쳤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그리고 그런 분들이 종종 철학과 사무실로 자신들의 자비 출판 저서를 보내주시기도 하십니다만,) 오늘날의 사회, 문화, 학문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를 자각하고 있는 전문 철학자들 중에서는 이런 ‘우주의 진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형이상학자들조차도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을 제시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는 철학적인 이유입니다. 서로 다른 철학적 전통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시된 여러 논증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가령, 우리의 인식 조건을 벗어나서 사물 자체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월권 행위라는 논증(칸트), 각각의 분과 영역에는 각각의 사태에 적합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논증(후설), 종합명제의 진리값은 경험과학의 실험과 관찰에 의존해야 한다는 논증(에이어), 명제의 참/거짓이 세계와의 1:1 대응을 통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논증(콰인), 언어의 의미가 사회적 실천에 의존한다는 논증(비트겐슈타인), 인식은 이유의 논리적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논증(셀라스), 자연과학이 반증을 통해 발전한다는 논증(포퍼), 자연과학조차 각 시대의 패러다임에 의존한다는 논증(쿤), 자연과학을 규정하는 단일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증(파이어아벤트), 각 사회가 각 시대마다 서로 다른 지식의 체계 속에서 권력의 질서를 형성하였다는 논증(푸코), 서양 형이상학이 전제한 문자/목소리의 이분법이 자기 모순적이라는 논증(데리다) 등이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의 불가능성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2) 현대철학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이라고 표현하신) 소위 ‘거대담론’ 대신에 ‘미소담론’을 성립시키려는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혹은, 각각의 미소담론들을 중재하려는 철학자들, 각각의 미소담론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를 분석하려는 철학자들, 각각의 미소담론을 비교하거나 평가하려는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아니면, 철학사 속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 철학자들을 해설하고 비평하려는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아예 ‘철학의 종말’을 선언하는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3) 왜 철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결론이 나지 않나요?

한 마디로, 철학이 근-본 학문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보다 훨씬 오래된 학문입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과학’은 기껏해야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죠.) 그래서 그동안 철학에서는 워낙 많은 방법론이 생겨났고, 워낙 많은 입장이 생겨났고, 워낙 많은 글쓰기 스타일이 생겨났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의 기준으로 ‘철학의 표준’을 통일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더군다나, 철학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예술, 종교, 비평, 정치, 역사 등 다른 분야 종사자들도 일종의 철학적 사유를 수행한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죠. 그래서 철학은 다른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과 달리 전문가 집단을 엄격히 한정해서, 표준화된 연구 방법론에 따라, 권위가 인정된 소수 학회를 중심으로 수행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대학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전문화는 가능하지만, 이미 역사 속에서 지금의 다양한 모습으로 형성된 철학을 완전히 표준화킬 수는 없는 거죠. 바로 이 점 때문에, 철학에서는 다른 학문들보다도 훨씬 입장 차이, 관점 차이, 스타일 차이, 전통 차이가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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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에 대해서는 좀 논란이 있습니다. 철학자들 간의 의견차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과장되었다는거죠. 개인적으로 전적으로 동감하진 않습니다만, 팀 모들린이 "비주류인, 튀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더 대중적으로 각광을 받는 경향 덕분에 그런 착각이 생긴 것임"이라고 설명을 한 것도 나름 이런 주장의 연장선 상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Overwhelmingly most philosophers are atheists or agnostics, which I take to be convergence to the truth. Most are compatibilist about free will and believe in it, which I also take to be convergence to the truth. Almost all believe in consciousness and most don’t have a clue how to explain it, which is wisdom. It is not that there isn’t convergence, it is that the outliers who do not converge get much more attention than the great mass of convergers, who don’t particularly stand out.

다른 한편으로 철학과 과학의 유인 구조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철학이건 과학이건 결정적 합의에 이르기 위해선 몇몇 암묵적인, 직접적으로 검증되기 힘든 가정들이 필요합니다. 토머스 쿤이 지적했다시피, 과학 활동에서는 이런 가정들을 의문시하지 않고 그냥 밀어붙이는 것이야말로 결과적으로 합리적입니다. 반면에 철학 활동에서는 딱히 '가정들을 의문시하지 않고 그냥 밀어붙이는 것'이 딱히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과학 활동에서 발생하는 '이런 가정들을 의문시'하는 활동이 과학에서 '과학철학'으로 떠밀려 오는 현상도 이를 방증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학보다 철학에서 결정적 합의에 이르는 경우가 적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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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철학자들이 흔히 말해지는 것보다는 많은 문제에서 합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철학에서도 분명 ‘진보’가 일어난다고는 생각하지만, 저 팀 모들린이라는 분은 굉장히 강한 주장을 하시네요;;; 많은 철학자들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동의하는 이유에는 논증의 타당함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적이고 실존적인 이유가 개입한다고 봐요. (가령, 중세 철학자들 중 절대 다수가 유신론자고, 오늘날 철학자들 중 절대 다수가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라고 해서, 그 사이에 정말 신 존재에 대한 철학적 논증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그런데 저걸 다 싸잡아서 ‘진리로의 수렴’이라고 해버리다니, 과연 저 주장에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의 의견이 수렴할지 저는 의문이네요. 다만, 저는 과거에 비해 훨씬 논의의 층위가 다양해지고 논의에서 다루어지는 고려 사항이 세분화되었다는 점에서만큼은 철학이 발전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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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이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으니 3에 대해서만 제 의견을 피력하겠습니다.

실재에 관해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전지하다와 다르지 않을 것 같지 않나요? 그렇다면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전지할 수가 있을까요? 인간은 그런 설명을 시도하면 안티노미에 조우한다고 칸트가 말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은 그런 설명이 어떤 형식을 취해야 하는지 자체를 모르고 알 수가 없습니다. 실재의 일부인 어떤 존재자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그 사실로 말미암아 실재 자체를 총체적이고 절대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실재와 일치하거나 실재를 설계한 지적 존재자만이 실재 자체를 총체적이고 절대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가 있다면 말이죠.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정말로 있다면 그런 존재자이겠죠.

인간의 인지 능력의 기초는 자연환경과의 관계에서 자기보존을 하고 번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적응이 이루어져 온 진화를 가리킵니다. 즉 인간의 두뇌는 그 적응의 산물이자 그 적응의 기관입니다. 그 적응이 최근에는 자연의 변형에 가까워졌고 그 두뇌로 양자물리학도 하고 형이상학도 하고 교향곡도 만들어내고 예배도 드리지만 그 두뇌에는 인류의 진화가 절대지를 향한 목적론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더 간단하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두뇌의 용량과 회로들을 실재 자체를 총체적이고 절대적으로 아는데 적합하도록 인위적으로 증량 및 개선할 수 없다면 인간은 실재 자체를 총체적이고 절대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 개선은 인간이 이미 실재 자체를 총체적이고 절대적으로 알 수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답변들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우고 가네요.

거의...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정답급 글이네요. 많이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