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1)을 검토합시다.
YOUN님은 『논고』에서 『탐구』로의 이행, 혹은 『논고』의 전기 철학을 포기하게 된 계기로 ‘요소 명제의 상호 독립성’과 ‘진리함수 논리’ 사이의 모순 관계를 제시하셨습니다. 이 모순이 드러나는 사례로 ‘색깔 배제 문제’를 제시하셨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모순적인 두 전제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결함을 발견하고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YOUN님에 따르면, 이 결함을 해결하려는 일련의 과정이 “모순을 독단적으로 잠재워버리려 하는 시도로 폭로”된 뒤에야 비트겐슈타인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언어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Q1) 비트겐슈타인은 왜 자신의 이론이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견해를 붙잡고 그런 결함을 해결하려 했을까요? (Q2) 자신의 견해를 붙잡고 이론의 결함을 해결하려 하던 비트겐슈타인이, 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의 시도가 “모순을 독단적으로 잠재워버리려 하는 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언어를 바라보게 되었을까요? (Q1)은 나중에 다룰 것입니다. 여기서 다룰 것은 (Q2)입니다.
저는 YOUN님이 사용하신 “모순을 독단적으로 잠재워버리려 하는 시도로 폭로”되었다는 표현, 그리고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언어를 바라보기 시작한다”는 표현의 근거를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이 표현이 근거 없이, YOUN님의 상상 속 내러티브에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전회 사건을 끼워 맞추다 보니 등장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의 (Q2)에 대한 답은,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의 명제론이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이후 비트겐슈타인이 한 작업은, 말씀하신 바대로 색 명제가 요소 명제라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진리함수론을 수정하려 한 것 등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기 철학에서 이른바 ‘중기 철학(1929~1937)’으로의 이행은, 그러한 “모순을 독단적으로 잠재워버리려 하는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명제들의 진리함수 규칙에서 명제들의 내적 구문(syntax)에서 생기는 규칙으로의 이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구문 개념은 문법 개념의 선조 격으로, “어떤 결합이 하나의 낱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한 무의미한 구조를 배제하는지를 알려주는 규칙(RLF, 1929년)”입니다. 즉, 비트겐슈타인은 전기의 일원론적 명제론에서, 다원론적 명제론으로 이행한 것으로, 여전히 명제론의 차원에서 철학적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중기 철학에 진입하는 시점에서는, 구문 개념이 문법 개념으로 계승됨을 알 수 있습니다. 『대타자본』에 이르러 막을 내리게 되는 1930년에서 1933년까지의 유고에는 ‘Grammatik’이라는 표현이 무려 217번이나 등장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문법 개념을 고안해내고는 “철학의 먹구름은 사라졌다. 우리는 이제 철학을 하는 방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연금술과 화학 간의 차이를 비교해 보라; 화학은 방법을 갖고 있다(WL)”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철학의 방법이란 “한 표현을 그것과 문법적으로 연관된 표현을 탐구함으로써 탐구하기(BB)”일 것입니다. 『대타자본』의 한 구절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문법이 단어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말하며, 또 단어의 의미와 문법적 공간 속에서의 단어의 위치(the location of a word in grammatical space)를 동일시하기까지 합니다. 이 ‘문법적 공간’이라는 표현은 『논고』에서의 ‘논리적 공간’이라는 표현을 연상케 합니다. 단절성이 훨씬 강하겠지만, ‘논리적 통사론’– ‘구문’ – ‘문법’ 개념의 연속성이 보이지 않으시나요?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어떻게 이행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는 일은 짧은 시간에 해내기 힘든 일입니다. 저로써는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지만 제 반박을 정당화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사실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비트겐슈타인의 전회는, YOUN님이 제시한 것처럼 자신의 시도가 ‘모순을 독단적으로 잠재워버리려 하는 시도’로 ‘폭로’되어 언어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전회가 전기 철학의 모순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리고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전기 철학의 논의가 후기 철학의 주요 표적인 것도 분명합니다. 여기에 오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회의 과정은, YOUN님이 상상하시는 것처럼, 전기 철학의 모순이 폭로되었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론철학자들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 ‘해소하기’에 본질적이게 되었다는 식의, 단속적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 및 그것의 결함을 보완하려는 시도가 “모순을 독단적으로 잠재워버리려 하는 시도”라고 서술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또 질문이 떠오릅니다. (Q3) 대체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일까요?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논제 (1)과 별개로, 논제 (4)와 관련하여, YOUN님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단일한 논리적 통사론을 해소하여 다양한 언어게임의 문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고도 주장하십니다. 이 주장은 다양한 언어게임의 문법을 보여주는 것이 해소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전제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을 이상의 논의에 비추어 고치면 이렇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단일한 논리적 통사론 제시를 철학적 문제의 해소 방법으로 채택하다가, 다양한 언어게임의 문법 제시를 철학적 문제의 해소 방법으로 채택하는 방식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이는 각각 논리적 통사론의 “위반” 지적과 언어 게임의 문법의 “위반” 지적을 철학적 문제의 해소 방법으로 채택했다는 것과 엄연히 다릅니다. 코넌트가 이런 말을 비판하는 까닭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규칙의 위반”을 통해 규정하는 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