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마지막으로, 카벨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에 대한 코넌트의 논문에 대한 제 요약을 별도로 첨부합니다. 제가 쓴 글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회의주의자의 발화에 아무런 결함이 없다는 말은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코넌트가 소개하는 카벨이 회의주의자에 대해서 어떤 말을 했는지, 보다 섬세하고 주의깊게 주목하고자 합니다. 카벨이 지적하는 회의주의자의 문제는, 그가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것이 아니라,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딜레마의 한 뿔은, 완벽하게 뜻이 통하는 말을 하면서 보편적인 회의를 표명하는데 실패하는 것이고, 다른 한 뿔은, 언어게임 바깥에서 말하도록 이끌리는 것입니다. 회의주의자가 당면한 문제가 딜레마라는 점이 중요한 이유는, 그에게 완벽하게 뜻이 통하는 말을 하면서 보편적인 회의를 표명하지 않는 선택지가 언제든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회의주의자가 그의 말과 관련해서 "비정합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는 카벨의 표현은 단지 수사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완벽하게 뜻이 통하는 말을 할 선택지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명쾌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회의주의자는 언어 게임 바깥에서 말하도록 이끌리며, 사실상 “아무 말도 안 하게” 됩니다. 자신이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기 때문에, 심지어 무언가를 뜻있게 말할 선택지를 스스로의 비정합적인 욕망으로 거부했음은 더더욱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카벨은 "의미함의 환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코넌트가 인용한 카벨의 말을 잠시 가져와 보죠.
“Not saying anything” is one way philosophers do not know what they mean. In this case it is not that they mean something other than they say, but that they do not see that they mean nothing (that they mean nothing, not that their statements mean nothing, are nonsense).
이 구절에 대한 윌리엄스와 맥긴의 오해와 그에 대한 비판은 굳이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에서 인용된 카벨의 말에 따르면, 문제는 철학자의 진술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철학자 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입니다. 윗 답글에서 제가 서술한 카벨의 해석이 옳다면, 우리는 원리적으로 어떠한 발화에 대해서도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 문법 규칙은 위반될 수 있는 규제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떠한 발화마저도 그것에 적절한 문법을 등록할 수 있다면 의미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심지어 회의주의자의 발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결함이 있는 것은 발화가 아니라 발화자(의 욕망)입니다.
이때 코넌트가 말하듯이 회의주의자에게 우리 언어의 다양한 언어 게임들을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유효한 의미의 다양한 가능성들의 조망/통찰Übersicht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가 이 다양한 언어게임들 중 어느 하나에 참여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즉 그가 언어게임들 내에서 말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가 그의 말로 무엇을 의미할지는 여전히 불명료하게 남아 있으며, 그런 한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언어게임들에 대한 일목요연한 조망이 드러내 주기 때문입니다. 언어게임들이 일목요연하게 조망된 상황에서는, 회의주의자의 (보편적으로 의심하고자 하는) 욕망을 한 번에 서로 다른 여러 언어 게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회의주의자는 언어 게임 바깥에서 말하도록 이끌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카벨은 여기서도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자각 임을 명시하며 일관된 구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