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인 견해로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하이프에서, 그 대상이 전기 비트겐슈타인이 아니라 후기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점이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분석 철학이라는 학풍 (형이상학을 배제한 채, 가장 확실한 탐구 대상으로 존재하는 '언어'와 그 언어의 대상[지칭이든 의미든])을 완성시켰지만,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라는 가닿아 있는 오래된 영역으로 분석 철학을 확장시켰죠. 바로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죠. (그리고 이 확장 과정에서 자신의 전기 철학을 어느정도 폐기하는 지점도 있고요.)
(2)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하이프에는 분명, 이 "삶"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야망과 비전에 대한 동경이 어느정도 섞여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 - 로티 방향의 '치료로서의 철학'처럼요.) 그렇지만 철학 분과 내에서는, 오히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사용' 이론 - 즉, 어떤 형태의 화용론 -은 교과서에서 한 파트로 잘 정리되어버린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이 갭에서 이러한 평가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전 생각합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비전에 대한 경의와 반대로, 비트겐슈타인이 개척한 영역이 생각 외로 소박하다는 점에서 말이죠. (물론 이 소박함이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한 철학이 성립 가능한 영역이었다는 생각을 가끔 하긴 합니다.)
(3)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의미에서, 분석 철학 학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마지막 '신비주의자', 혹은 '실존주의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 마력이 때론 사람을 홀리지만, 전 그 홀림에 저항하는 것이 마땅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삶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비전과 거기서 철학이 할 수 있는 '소박한 역할'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냉담한 평가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그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거기서 어떠한 '의미'가 더 있을지 모른다고 그걸 성경마냥 읽어대고, 무언거를 더 덧붙이는 것은 이제 철학도 아니고 좋은 방향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철학의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