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번역본에 대한 몇 가지 추천

(1) <순자집해>와 <묵자간고>는 모두 청나라 시대 고증학자들이 만든 텍스트입니다. 사실 이 텍스트를 <순자>와 <묵자>의 텍스트로 추천 가능한 것이, 청나라 고증학 풍토에서 나온 주석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고증학의 경우, 텍스트에 대한 저자의 주관이 개입되던 기존의 주석 전통보다는 당대의 어문학/문법학에 기반해 정확한 해석을 하려는, 서양 문헌학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참고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19세기-20세기 동안 서양에서 나온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교정본 같은 역활을 하는 셈이죠.)
또한 <순자>와 <묵자>는 기존에 주석이 거의 없는 것도 추천할 만한 이유 중 하나이고요. 순자의 경우 기존 주석이 당나라 시절 양경주 말고는 없고, 묵자는 기존 주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중 하나입니다.

(2) 그에 비해 <논어><맹자>의 경우, 한나라 때부터 중요한 텍스트로 여겨졌고, 그에 따라 주석서 종류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 주석들은 각각의 시대와 저자의 목적에 맞게 "자유롭게" 해석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사실 동북아 철학 주석서에서 자유롭게와 원래의 뜻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꽤 많기는 합니다.)

이 문제는 특히 도가 계열 <노자>와 <장자>에서 극심합니다. <노자> 같은 경우, 법가적인 주석부터 시작해서 왕필의 형이상학적 주석, 성현영의 불교-중관론적 주석, 하상공의 양생론적 주석에서 심지어 병법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믿을 만한 고증학풍의 교정본이 있냐 물으신다면....음.....어려운 질문이네요.

(3) <논어>는 제가 문외한이니 패스하고, <맹자>는 보통 두 가지 주석서가 중요하게 생각되어집니다. 한나라 시대 조기주와 송나라 시대 주희주입니다. 둘다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번역되었고, 조기주는 <맹자주소>로, 주희주는 <맹자집주>로 번역되었습니다. 조기주의 경우, 한나라 경학의 스타일을 반영해서 일상적인 느낌의 주석서이고, 주희주는 신유학 경향을 반영해 강한 형이상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장자는 이게 좀 애매한데, 가장 중요한 주석은 곽상주이지만, 곽상주는 말 그대로 곽상 본인의 해석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해서....그리고 곽상주는 아직 번역이 안 되었습니다.

(5) 제가 말해드린 그냥 번역서들도, 기본적으로 다 저런 주석서들을 참고해서 번역합니다. 다만 어느 주석을 따랐는지 명백히 안 밝히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학술적 용도로 쓰기 애매한 경우도 있고 그럴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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