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도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들이 궁금합니다

철학과를 지망하는 고등학생인데요, 철학도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들이 궁금합니다. 예를들어 어떤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고 요약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런 작업들의 구체적인 방법들이 궁금합니다. (수능 독해에서 배우는 것들과 결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러한 소양들을 기르는 방법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글쓰기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철학관련 서적을 읽고 요약, 비판하는 연습을 하면 될까요? 지금은 슈퇴리히 철학사를 읽고 있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한국학생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많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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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질문이 올빼미 게시판에도 있었던 것 같아서 링크 공유해드립니다.
답변들을 보시면 여기 계신 분들이 책 읽는 것이나 공부법에 대해서 적어두신 거 참조하실 수 있을 거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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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심자가 독학하는 것을 그다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무슨 책을 읽어야하는지, 무슨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익혀야할 것은 공부하는 태도입니다. 너무 원론적인가요? 그러나 원론적으로 공부한다는것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대학을 안다니시니, 한국의 k-mooc를 포함해 어떤 강좌든 그것을 들으면서, 그 강좌에서 요구하는 저작을 읽는것이 훈련하기에 좋은것같습니다. 다만 주의해야할 점은, 단순히 강좌를 듣는 것이 아니라 강의 전에 해당부분에 관한 저작을 미리 읽고, 주제와 핵심사항에 따라 내용을 분류 및 요약하시길 바랍니다. 그 후 강의를 들으며 내가 오독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살펴보고, 질문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것을 알아나가시죠.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지식은 대학생보다 부족하더라도, 공부에 관한 체급 자체가 커져 어떤 주제에 관해서든 잘 배우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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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선 제 글이 고등학생보다는 학부 1/2학년 분들에게 적합하다는 점을 미리 적시합니다.

(1) 다른 분들이 모두 좋은 말을 해주셨지만, 저는 이 말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만약 내가 철학과 간다고 했을때, 내 옆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다면...싶은 말을 할까합니다.

(2) "철학"을 한다고 할 때, 작성자님은 무엇을 염두하고 계신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철학만큼 이질적인 학풍이 섞여있고, 대중과 학계의 괴리가 크며, 지금 시대에 와서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학문은 없다고 느낍니다.

(3) 철학은 사실 거대한 "철학"으로 통상적으로 불렸던 텍스트와 그 텍스트가 다루던 주제들에 대한 연구입니다.
사람들은 통상 철학이 원래 주장하던 바 -삶의 의미와 같은 실존적 측면을 철학 공부를 통해 얻고자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고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철학도" 즉 아카데미의 일원이 되고자한다면 부적절한 접근이라 생각됩니다. 더 이상 거의, 그런 종교적 뉘앙스를 띈 주장을 하고 평가하고 토론하지 않기 때문이죠.
만약 이런 것을 생각하신다면, 비교문학이나 신학, 종교학 등의 학문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4) 철학 학계의 논문은 대체로 개념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X가 Y를 의미한다 주장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왜냐하면 파트를 이루는 부분이 논증이고 학문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철학의 방법론이란 직관과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진 합리성에 의존하기에 특별한 지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정도의 논리성/합리성이 필요한데 그걸 얻는 방법은 다양한 분들이 좋은 댓글을 달아주신듯 합니다.

(5) 다만 철학 학계의 분위기는 경쟁적입니다. 새 논문은 언제나 기존 논문보다 참신하고 새로운 주장을 하길 요구받습니다. 따라서 사학이나 미술사학처럼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아카이브 작업이나 해제 작업은 철학 학계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철학사(누가 무얼 주장하고 그게 뭔 영향을 미쳤고)적 작업을 좋아하거나 철학으로 분류된 텍스트 자체를 좋아하신다면, 고전학과나 사상사학과(사학과에 보통 소속되어있습니다. 영미권에서는요)쪽을 생각하시는게 좋습니다.

(6) 마지막으로 사실상 영미권 철학은 반쯤은 심리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더 이상 쓰기 어려운 분야가 되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크게 도덕심리학, 세부적인 인식론적 문제(환각, 착시), 심리철학적 문제(의식, 심신관계) 등의 분야가 특히 그렇습니다. 이런 분야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필히 심리학 혹은 인지과학을 복수전공하시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논문을 보면, 더 이상 철학만을 전공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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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다른 여느 학문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는 입장들의 지형도를 파악하고, 쟁점이 되는 사안을 파악하고, 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서,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설정하고, 그 입장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여러 논문들을 조사하여, 자기 자신의 논문을 지속적으로 써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능력은 정말 대학원 이상의 '연구자'들이 갖춰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등학생분께 당장 요구하기는 어렵죠. 다만, 많은 철학 초심자분들이, 철학도 엄연히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학술적 연구 분야라는 걸 간과하는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철학을 어느 정도까지 공부할 것인지(가령, 교양으로 공부할 것인지 학술 연구로서 공부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술 연구'로서의 철학은 초심자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있어서, 사실상 대학 바깥에서 혼자 공부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sophisten님과 Mandala님도 여러 가지로 잘 말씀해주셨지만, 철학의 이런 학술적 성격을 간과하신다면, 나중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할 때 자칫 방황하시거나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의 상황에서 철학을 위한 기본 소양을 어떻게 쌓아야 할 지 궁금하시다면, 저는 제일 먼저 논리학을 공부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전문적인 논리학은 대학에서 배워야겠지만, 기본적인 명제논리, 1차 술어논리, 비판적 사고론 정도는 혼자서도 몇 개월이면 충분히 익힐 수 있습니다. 논리학 교과서를 하나 잡아서, 거기 나온 연습문제들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성균관대학교 이병덕 교수님의 책을 많이 보는 것 같지만, 영어권에서는 어빙 코피(Irving M. Copi)의 논리학 책이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논리학을 잘 공부해두시면, 나중에 어떤 텍스트를 읽더라도 (분석철학뿐만 아니라 대륙철학 텍스트를 읽더라도) 거기서 요점을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3) 어학을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되죠. 특별히, '학술적인' 철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최소한 영어로된 철학적 글들을 무리 없이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요. 외국에서 공부하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 부분에서 유리한 면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어가 자유로우시다면, 공부하시고자 하는 철학 분야에 맞춰서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한문 등을 배워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2외국어를 잘 못하는 편에 속하지만, 이런 언어들을 배워두시면, 참고할 수 있는 텍스트의 범위가 훨씬 늘어나는 데다, 다른 연구자들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도 좀 더 능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4)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습관을 들이는 걸 당부드리고 싶네요. 초심자분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문제 중 하나가, 입문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진다는 겁니다. 입문서를 많이 읽어둬야 그 다음에 고전적인 텍스트들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지만 입문서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자신이 실제로 텍스트를 독해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입문서를 쌓아두고서 다 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정말 중요한 건, 입문서를 빠르게 대충만 훑고서, 자신이 정말 읽고자 하는 텍스트로 직진해서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텍스트를 아무리 지루하고 어렵더라도 반복해서 읽으면서 자기 논리로 정리하려는 성실함과 노력이죠. 사실 이런 태도가 없으면, 철학을 '겉멋으로만'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신이 제대로 읽은 텍스트는 하나도 없는데도, 어디서 주워들은 (니체니, 하이데거니, 푸코니, 들뢰즈니 하는) 멋있는 이름들만 언급하면서, 아무런 내실 없는 인생관이나 도덕관 따위를 전문적인 철학인 것처럼 이야기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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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귀한 조언들 감사합니다.

  1. 제가 철학 공부를 하고 싶다 라고 할 때 의미하는 것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고, 철학적 텍스트를 읽으며 비판/분석한 후 유의미한 담론을 생산해내려고 하는 활동 전반을 일컫는 것입니다.

  2. 실존주의 언젠가 공부해야할 중요한 사조라 여기기는 하나 제겐 아직은 크게 관심을 두고있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관심사는 근대인식론인데 - 왜냐하면 입문서가 대개 데카르트 코기토 설명으로 시작해 스피노자, 칸트로 나아가기 때문인듯 합니다- 순수이성비판이나 정신현상학 같은 원전을 읽기 전에 길러야할 몇가지 소양을 알고 싶었습니다.

  3. 저 또한 삶 또는 실존적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의 철학보다는 세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려는 철학의 면모에 매료되었기에 철학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4. 사실 제가 철학과 진학에 대해 가장 염려스러워 하는 부분도 경제적 불안정(물론 심각히 고려되어야할 사항입니다) 보다는 새롭고 참신한 주장을 내놓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의 대가들이 어떻게 그러한 독창성을 갖게 되었지도 근래의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5. 몇몇 분석철학자들이 (촘스키나 데닛, 콰인 같이) 인지과학이나 수학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알고있었지만 대부분의 논문들이 현대과학의 성과들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네요… 아직 대륙철학을 공부할지 분석철학을 공부할지 정하지 못한터라 좋은 참고가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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