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이 대단하다!] 지표사 이론으로 독해한 헤겔의 철학: 김주용의 「감각적 확실성과 지표적 표현의 문제」

김주용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첫 번째 장인 「감각적 확실성」으로부터 지표사 이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세 가지 독법을 검토한다. 그는 지표사를 통해 개별자를 의미할 수 없다는 ‘개별자 지시 불가능성 독법’과 지표사가 구체적 맥락과 결합되는 상황에서 대상을 고정적으로 지시한다는 ‘지시 이론적 독법’이 「감각적 확실성」에 대한 주석적으로 올바른 해석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난점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주용의 논문은 두 입장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브랜덤이 제시하는 ‘대용어 이론 독법’을 옹호한다. 본고는 우선 김주용의 논문을 간략하게 요약하고(Ⅰ), 김주용의 논문이 헤겔의 철학과 오늘날의 언어철학을 건설적인 방식으로 연결시킨다고 설명한 뒤에(Ⅱ), 김주용의 논문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Ⅲ).

Ⅰ. 「감각적 확실성」에 대한 세 가지 독법

김주용은 「감각적 확실성」에서 헤겔이 제시하는 논의가 크게 세 가지 독법에 따라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로, 개별자 지시 불가능성 독법은 지표사를 비롯한 어떠한 언어도 개별적 대상을 지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헤겔에게 귀속시킨다(포이어바흐, 플러머, 솔). 둘째로, 지시 이론적 독법은 지표사의 어휘적 의미가 구체적 맥락에서 용례를 지닐 때에야 비로소 지표사와 대상 사이에 고정적 지시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입장을 헤겔에게 귀속시킨다(해리스, 드브리스). 셋째로, 대용어 이론 독법은 지표사가 가리켜 보이는 개별적 대상이 대용어를 통해 의사소통 속에서 표현될 수 있다는 입장을 헤겔에게 귀속시킨다(브랜덤).

(1) 개별자 지시 불가능성 독법에 따르면, 헤겔은 「감각적 확실성」에서 지표사를 통해 개별적 대상을 지시하고자 하는 시도를 비판한다. 우리가 감각적 확실성 속에서 경험하는 개별적 대상(특별히 순수 개별자)은 보편적 언어를 통해 지시될 수 없다. “사념(Meinung)은 개별적인 반면 언어는 보편적”(김주용, 2020: 76)이다. 아무리 ‘지금’, ‘여기’, ‘이것’, ‘나’와 같은 지표사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지표사 역시 언어표현이다. 지표사는 “고유한 개체들에 대한 앎이 아닌 보편자에 대한 앎을 제공”(김주용, 2020: 78)할 뿐이다. 그러나 김주용은 이러한 입장이 (a) “나는 배가 고프다.”처럼 일상 속에서 개별적 대상을 성공적으로 지시하는 문장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b) 언어를 통해 세계를 지시할 수 없다는 (헤겔이 결코 승인하지 않을 법한) 외부 세계 회의론을 발생시키며, (c) 개별자와 보편자가 서로 고착되어 있지 않다는 헤겔의 철학적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2) 지시 이론적 독법에 따르면, 헤겔은 (지표사의 ‘성격’과 ‘내용’을 구분한 카플란의 입장처럼) 지표사 자체만으로 개별적 대상을 순수하게 지시하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즉, 지표사가 지닌 어휘적 의미(lexical meaning)는 지표사가 지시해야 하는 개별적 대상이 무엇인지를 확정하지 않는다. 가령, ‘나’라는 표현은 A에게서 발화될 때와 B에게서 발화될 때 각각 서로 다른 대상을 지시한다. 따라서 ‘나’라는 지표사가 무엇을 가리켜 보이는지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단어가 지닌 어휘적 의미를 넘어서서 그 단어가 사용되는 구체적 맥락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김주용은 이러한 입장이 언어와 세계를 엄격하게 분리시키는 이원론을 함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언어와 세계 사이의 이원론은 (a) 언어를 단순한 ‘인식 도구’로 상정하고 세계를 초감성적인 ‘인식 대상’으로 상정한 나머지 헤겔이 거부한 ‘인식 도구설’을 받아들이는 문제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b) 자신이 전제한 언어와 세계 사이의 간극이 ‘지시’를 통해 다시 연결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지시’를 불가사의한 관계로 남겨두는 문제 역시 지니고 있다. “이상의 이유로, 헤겔에게 지시 이론을 귀속시키는 독법은 헤겔이 여러 곳에서 거부하는 입장을 헤겔에게 귀속시킨다는 점에서 해석상으로 부적절하며, 헤겔이 비판한 바로 그 이유에서 철학적으로 부적절하다.”(김주용, 2020: 90)

(3) 대용어 이론 독법에 따르면, 헤겔은 지표사가 과거에 사용된 선행표현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다시 인용하는 대용어와 함께 사용될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가령, A가 “곰이 나를 공격하려 한다.”라고 말하고 B가 “A는 곰이 그녀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A가 사용한 ‘나’라는 지표사는 B가 사용한 ‘그녀 자신’이라는 대용어를 통해 인용된다. 즉, ‘나’라는 지표사로 A를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전세계에서 A가 유일하다. 그러나 A가 사용한 ‘나’의 의미가 A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B 역시 ‘그녀 자신’이라는 대용어를 통해 A가 사용한 ‘나’를 대체하는 새로운 문장을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지표사는 우리가 대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의사소통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지표사를 성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지표사 개항의 일회적인 내용을 보존하여 필요할 때 언어를 통해 불러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나간 것을 회상하는 정신의 활동에 언어적으로 해당하는 표현은 대용어(anaphora)이다.”(김주용, 2020: 92) 한 마디로, 대용어가 없이는 지표사가 의사소통에서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다. “직시어(deixis)는 대용어를 전제한다.”(Brandom, 2019: 125) ‘지금’과 ‘여기’ 같은 지표사로 순수한 개별적 대상을 지시할 수 없다는 헤겔의 주장이란 지표사가 항상 대용어에 매개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주용은 바로 이러한 입장이야 말로 회의론과 이원론을 극복하면서도 「감각적 확실성」에 대한 주석적으로 올바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Ⅱ. 헤겔의 철학과 오늘날의 언어철학

김주용의 논문은 헤겔의 철학과 오늘날의 언어철학을 서로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두 철학 사이의 비교는 단순히 “헤겔의 철학은 ……라고 주장하고, 오늘날의 언어철학은 ……라고 주장한다.”라는 병렬적 정보 나열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비교는 오늘날의 언어철학을 통해 헤겔의 철학에서 해석상 쟁점이 되는 부분에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고, 헤겔의 철학을 통해 오늘날의 언어철학이 고민하는 철학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매우 건설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헤겔의 철학과 오늘날의 언어철학 중 어느 한 쪽에라도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은 김주용의 논문을 통해 자신들의 주제를 새롭게 바라볼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분석적 헤겔주의(analytic Hegelianism)’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은 김주용의 논문을 통해 헤겔의 철학과 오늘날 분석철학 사이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드러내는 모범적 사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즉,

(1) 김주용은 분석철학에서 사용되는 현대적 개념과 방법이 헤겔에 대한 연구를 현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가 강조하듯이, “분석적 헤겔주의는 ‘분석철학 내의 헤겔주의적 흐름’뿐만 아니라 ‘헤겔 연구 내의 분석철학적 흐름’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지닌다. 헤겔 연구에서 등장하는 분석적 헤겔주의는 언어와 마음에 관한 정교한 개념적 분석 등 분석철학적인 기법들을 동원하여 헤겔이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그의 주장을 재구성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김주용, 2020: 97) 즉, 헤겔에 대한 연구는 우리 시대의 분석철학에 (특별히, 의미론과 화용론 같은 현대의 언어철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헤겔이 18-19세기의 언어로 고민한 문제들은 우리가 21세기에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얼마든지 재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재해석은 헤겔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헤겔을 우선 우리 자신의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우리가 헤겔을 올바르게 이해하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평가할 수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김주용은 크립키, 카플란, 도넬란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의 주류 지시 이론에 대해 헤겔주의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는 비판을 제시한다. 즉, 지시 이론은 세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이 의미를 지니는 ‘순수한 언어’와 언어와 아무런 관련이 없이 존재하는 ‘초감성적 세계’를 각각 상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언어와 초감성적 세계는 우리가 도대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조차 없다. 그 둘 사이를 연결한다고 상정된 ‘지시’ 역시 단순히 언어적 체계 내에서 성립하는 ‘공허한’ 관계인지 초감성적 대상에 대해 성립하는 ‘마술적’ 관계인지가 불분명해지고 만다. (어느 쪽을 주장하든지 지시 이론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김주용이 해석하는 헤겔은 정확히 이러한 이유로 인식 도구설을 비판하였다, “지시 이론은 언어와 실재의 괴리를 사전에 가정한 다음 양자를 지시라는 연관 속에서 해명하려고 한다. 헤겔은 이런 종류의 입장이 매우 의심스러운 가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정확히 겨냥한다.”(김주용, 2020: 87) 따라서 김주용의 논문에서 헤겔은 단순히 헤겔 전공자나 독일철학 전공자만 전유할 수 있는 인물로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헤겔은 오늘날의 영미권 주류 언어철학에 대해서까지 (더 나아가, 그 언어철학 위에 세워져 있는 수많은 다른 철학적 입장에 대해서까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철학자로 부각된다.

Ⅲ. 대용어 이론 독법에 대한 비판적 의문

김주용의 논문은 개별자 지시 불가능성 독법과 지시 이론적 독법을 비판하고 브랜덤의 대용어 이론 독법을 옹호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정합적으로 잘 전개하고 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에서 김주용의 논문은 추가적 설명을 통해 보충되거나 해명되어야 하는 사안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대용어 이론 독법은 헤겔의 텍스트에서 해석상 난점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 얼마만큼의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가? 대용어 이론 독법을 통해 「감각적 확실성」에서 「오성」으로의 변증법적 이행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 가능한가? 대용어 이론은 자신에게 제기되는 철학적 비판에 대답할 수 있는가?

(1) 김주용의 논문은 매 장마다 「감각적 확실성」에서 몇몇 구절을 발췌한 다음 그 구절에 근거한 독법들을 제시한다. 각각의 독법들은 해당 구절로부터 자신들의 독법이 도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용어 이론 독법 역시 (1986년에 출판된 주어캄프 헤겔전집 기준) 『정신현상학』 89쪽에 대한 해석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특정한 구절이 대용어 이론 독법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대용어 이론 독법이 주석적으로 설득력을 지닌다는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감각적 확실성」의 몇몇 구절을 대용어 이론 독법에 따라 해석하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해당 구절을 대용어 이론 독법에 따라 해석하는 작업이 필연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용어 이론 독법이 지닌 설명력이란 기존 독법들이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감각적 확실성」의 구절들을 대용어 이론 독법이 충실하게 해석해 낼 때에야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 따라서 김주용의 논문이 자신의 목적을 더욱 완성적으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구절들로부터 대용어 이론 독법을 도출해내는 전략을 넘어서 대용어 이론 독법으로부터 특정한 구절들을 해석해내는 전략을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대용어 이론 독법은 헤겔의 텍스트에서 해석상 난점이 되는 부분들에 대한 얼마만큼의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가?

(2) 특별히, 이러한 ‘해석상 난점’으로 제시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감각적 확실성」에서 「오성」으로의 이행 과정이다. 헤겔은 자신의 전체 체계가 소위 ‘변증법(Dialektik)’이라는 방법에 따라 이전의 논의에서 이후의 논의로 점차 이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행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다. 만일 대용어 이론 독법이 헤겔의 텍스트에 대한 주석적으로 설득력 있는 독법이라면, 대용어 이론 독법은 「감각적 확실성」에서 「오성」으로의 이행 과정을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변증법에 대한 논의 속에서 대용어 이론 독법이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는지가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대용어 이론 독법이 지표사의 의미를 설명하는 하나의 강력한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대용어 이론 독법 속에 ‘감각적 확실성’이라는 의식 경험에서 ‘지각’이라는 의식 경험으로의 이행이 담겨 있는지가 매우 의문스럽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용어 이론 독법을 통해 「감각적 확실성」에서 「오성」으로의 변증법적 이행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 가능한가?

(3) 더 나아가, 대용어 이론 자체에 제기될 수 있는 철학적 비판에 대한 해명 역시 필요하다. 가령, 포더와 르포어는 브랜덤이 전제하고 있는 (따라서 대용어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소위 ‘추론주의적(inferentialist)’ 의미론이 대화자들 사이의 상호적 이해의 가능성을 과연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스러워한다(Fodor and Lepore, 2001: 468-471 참고). 즉, 브랜덤은 대화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언어 바깥의 실재를 상정하지 않는다. 대화자들은 의사소통 상황에서 상대가 사용한 선행표현을 대용어를 통해 가리켜 보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화자 A가 발화한 내용(“곰이 나를 공격하려 한다.”)을 대화자 B가 대용어를 사용하여 재구성(“A는 곰이 그녀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고 믿는다.”)하는 과정에서 B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미리 상정하고 있는 부차적 전제(collateral premise) 혹은 보조적 가설(auxiliary hypothesis)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B가 대용어를 통해 재구성한 문장이 실제로 A가 지표사를 통해 지시한 사태와 적절한 대응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B가 재구성한 문장이 표현하는 내용이란 B의 관점에서 해석된 A의 발화 내용이지 A의 발화 내용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주용은 A가 발화한 내용과 B가 재구성한 내용 사이에 “뜻 혹은 내용의 동일성”이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김주용, 2020: 94 참고). 그렇다면 과연 대용어 이론은 자신에게 제기되는 철학적 비판에 대답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비판적 의문들이 김주용의 논문이 지닌 내적 완결성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김주용의 논문이 대용어 이론 독법과 관련된 모든 주제에 대해 상세한 해명을 제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학술논문은 그 특성상 제한된 분량 내에서 제한된 주제만을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주용의 논문은 이미 그 자체로 자신이 제시한 주장을 충실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김주용의 논문에서 제시된 세 가지 독법 중에서는 대용어 이론 독법이 헤겔의 텍스트와 주석적으로 가장 잘 조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입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본고에서 제기된 비판적 의문들은 대용어 이론 독법에 근거하여 수행되는 앞으로의 연구에서 상세하게 대답되길 기대한다.

참고

김주용, 「감각적 확실성과 지표적 표현의 문제」, 『헤겔연구』, 제48호, 한국헤겔학회, 2020, 73-100.

Brandom, R., A Spirit of Trust: A Reading of Hegel’s Phenomenology, Cambridge, MA: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19.

Fodor J. and Lepore E., “Brandom’s Burdens: Compositionality and Inferentialism”,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 Vol. 63(2), 2001, 465-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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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확실성과 지표적 표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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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김주용 선생님은 서강올빼미 멤버 중 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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