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서적 및 독서에 관하여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 휴학생입니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동서양 철학의 개요만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이제 시간적 여유가 생겨 철학 도서를 읽으려고 합니다.
솔직히 제가 철학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가장 첫번째 목표는 전공 학점을 수월하게 따기 위함이며, 다음으로야 철학사 전반에 관한 지식을 얻어, 타인에게 설명해주고 싶은 그러한 욕심이 두번째 목표입니다.
음.. 사실 제가 궁금한 건, 여러가지인데, 글 아래 부분에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다음은 제가 가진 책 목록입니다.

이정우 - 개념 뿌리들
이진경 - 철학과 굴뚝 청소부, 철학의 모험
러셀- 서양철학사, 철학의 문제들
워버턴- 한권으로 읽는 철학 고전
데카르트- 성찰
한국 강좌 철학
처음읽는 현대철학 독일, 영미, 프랑스
슈워츠 - 분석철학의 역사
쉽게 읽는 언어 철학
철학의 주요 문제에 대한 논쟁

등등 입니다.

지금 현재 제 수준은, <철학과 굴뚝 청소부> 와 <철학의 모험> 책을 통하여 근대 철학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으나, (1) 한달 내내 이 책을 읽으니 지겹기도 하고, (2) 헤겔, 그리고 구조주의 파트에서 너무 어려워 막히게 되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기호논리학은 재밌게 공부하였는데, 이와 관련된 철학흐름을 보니 분석철학이 있더군요.
얼른 근대 철학을 해치우고, 분석철학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기본기(고대-중세-근대 철학)를 잘 잡아야 이후 현대 철학도 잘 이해될거라는 일종의 멍에 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1) 지금 제 수준에서 앞서 설정했던 두 가지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철학을 다시 공부해야할까요? 다시 해야한다면 어떤 책 순서로 읽어나가면 좋을까요...

(2) 지금 수준에서 분석철학과 관련된 서적들을 읽는다면, 또 다시 실패하려나요?

(3) 철학 책을 읽어나갈 때 철학자들의 사상을 메모하는 것을 추천하시나요?

(4) 철학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닌지라 앞으로 스스로 어떻게 공부를 해나가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휴학기간동안)

(5) 개인적으로 철학 고전들 - 당장 떠오르는 건 스피노자의 에티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등등... 이러한 책들을 독파하기위해선 얼마나 큰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데카르트 성찰을 읽어보았는데, 진짜 겨우겨우 1회독을 했었는데, 후반갈수록 내용이 어려워 난립으로 읽게 되더군요. 이런 철학 고전을 읽어내려면, 인내심과 철학적 어휘의 이해, 그리고 문해력이 필요하겠지요? 이에 대한 아무 조언 부탁드립니다.

되게 막막한 상태라 제가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지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써 죄송합니다. 이러한 철학 커뮤니티를 인터넷 서칭하다 알게 되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철학 공부와 독서에 대한 조언을 주신다면, 열심히 읽고 또 카페 활동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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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대학 저학년 수준에서 읽을 수 있는 유명한 혹은 유용한 철학서적들을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가지고 계신 책들 중에서는 워버턴의 책 두 권과 『철학의 문제들』이 입문용으로 좋다고 봅니다. 철학사 책도 좋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행해지는 작업인지를 잘 캐치하고 가는 게 흥미를 위해서나 앞으로 공부의 방향을 위해서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사 책들은 다양한 철학 사조들을 역사적으로 일별하기에 좋지만, 그 안의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는 심정으로 읽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개괄을 위해 작성된 책이기 때문에 그 책으로 어떤 사조의 핵심 주장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은 어렵고(아마 분량도 분량일 테고요), 대략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흐름을 잡는 게 좋은 활용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꼭 순서를 정해서 읽어나갈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가지고 계신 책 중에서 굳이 순서를 정해보자면 『철학의 주요 문제에 대한 논쟁』-『한 권으로 읽는 철학 고전』-『철학의 문제들』-철학사 책들 또는 분석철학 입문서들-... 이런 식으로 가면 어떨까요?

(2) 분석철학이 방대한 철학사적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잘 알면 좋기야 하죠). 낯선 개념과 기호들이 많이 도입되기 때문에 그게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만, 사실 다른 철학사조도 그건 마찬가지라... 여하간 분석철학 서적을 읽는 데 적어도 철학사는 그렇게 큰 방해물이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3) 메모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나아가 요약이나 정리가 가능하다면 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안 읽으면 철학책에서 주장하는 요점이나 논증이 머릿속에 제대로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물론 제가 아둔해서 그런 것일 수 있고, 그런 거 없이 명약관화하게 글의 요지를 읽어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4) 철학공부를 계속 하실 게 아니라 소일거리로 하실 거라면 크게 부담 갖지 않으시고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가벼운 철학 서적을 읽는 방식으로 접근하시고 계신데, 저는 좋은 방식이라고 봅니다. 조금 더 관심이 있으시면 KOCW나 K-MOOC의 강좌들, 더 관심이 있으시면 대안연이나 말과 활,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여는 사설 인문학 강좌들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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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철학에 관심도 많으시고, 기본적인 내용들도 많이 공부하신 것 같습니다. 흥미를 느끼시는 분야나 철학자를 중심으로 자료를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2) 어떤 분석철학 책을 읽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목록에서 적으신 『쉽게 읽는 언어 철학』 정도의 수준으로 구성된 책이라면 별다른 배경 지식 없이도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읽는 영미 현대철학』이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3) 저는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주변에 추천드리기도 하는 편입니다. 특히, 블로그 같은 곳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두면, 시간이 지나서 내용을 잊어버렸을 때도 예전에 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시 찾아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게다가 공부가 누적된다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고요.

(4) "철학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닌지라"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쓰신 내용을 보면 이미 '일반인(?)'의 범위는 넘어서 '오타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휴덕은 있지만 탈덕은 없다고 하는 것처럼, 흥미를 느끼실 때마다 그때그때 책을 찾아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5) 여러 번 읽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박사과정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저에게 생소한 분야의 글들을 읽을 때는 한 번만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반복해서 꾸준히 읽다 보면, (그 글이 엉터리가 아닌 이상) 어느 순간에는 내용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곤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정말 어려운 글들은 보통 세 번 이상은 읽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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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공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저도 공부할 때 "다시 시작"이라는 말을 참 많이 고민했었는데요, 다시 시작한다는 건 약간 이상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미 해오신 게 있으니, 거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2) 기호논리학을 잘한다고 분석철학이 쉬워지지는 않습니다. 슈워츠의 분석철학의 역사에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나요? 아마 일상언어철학 파트였던 것 같은데,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호화한 문장들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섬세한 철학적 분석이라는 그런 뉘앙스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논리학은 모든 철학적 사유의 기초기 때문에 탄탄하면 좋죠 ㅎㅎ
본인의 수준이 정확히 어느 수준인지는 저로써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러셀의 나 에이어의 <Language, Truth, Logic>에 도전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둘 다 번역이 있지만, 원문으로 읽는 걸 권합니다.(오역이 꽤 있다는 얘길 들어서요)
그리고 <옥스포드식 개념 사고법>이라는 책도 추천드려요. 저는 이 책을 왜 좀 일찍 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네요. 20세기 중반 옥스포드학파의 스타일을 일반논술에 활용하는 식으로 쉽게 쓰여진 책인데 생각 연습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1독하고 다시 꼼꼼히 읽어보려합니다ㅎㅎ

(3) 메모는 아마 불가피할 겁니다. YOUN님도 말씀하셨지만, "독파"라고 말하려면 미니멈이 3회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Jim Pryor라는 철학자가 "나도 철학을 꽤 오래했지만 아직도 3번 읽으니까 너무 좌절하지 마라"라고 리딩 가이드에 써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저도 대체로 그 철학자의 가이드를 따르려고 노력하는데, 방법은 이렇습니다.
1회독은 슥슥 넘기면서 대략적인 내용 파악(서문과 결론, 중심내용),
2회독은 논증파악,
3회독은 평가하면서 읽기
아마 정석적인 읽기 방식이 아닐까 해요.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되기도 하구요 ㅎㅎ..

(4) 본인의 목표가 학점을 잘 받는 것이고 후배들한테 시험기간마다 콜 받는 선배가 되고 싶으시다면, 그 수준에 맞게 하시면 됩니다.
후배들이나 다른 사람들(예컨대 독서모임 같은)과 자주 얘기하면서 스터디 기획도 하다보면 본인이 원하는 수준이 잡히실 거라고 믿습니다.
학점과 남들 앞에 서는 것들에 대해 제가 경험한 바는,
(ㄱ) 철학 공부를 잘 하는 것은 학점을 잘 받는 것의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충분조건이긴 하다.
(ㄴ) 남들 앞에서 잘 가르치거나 리드하려면 가르치는 내용의 최소 2~3배는 더 알아야 한다.
였습니다!

(5) 이정우 선생님의 개념뿌리들도 사전류였던가요? Oxford Dictionary of Philosophy 같은 사전 하나 끼고 공부하시는 거 추천합니다.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강박보다 지금은 천천히 글에 익숙해지는 게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ㅎㅎ
제 추천은 위에 적었던 러셀이나 에이어, 아니면 <에우튀프론>이나 <크리톤>처럼 짧은 대화편부터 천천히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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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최소한 3번은 읽어야 하지 않나?'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저 말고도 많이 있었군요!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는 분을 알게 되어서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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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ㅠㅠ 특히 1- 전체 틀을 잡듯 읽기 2. 논증 구조 파악하며 읽기 3. 평가하며 읽기 이 부분이 되게 큰 도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 복습을 싫어하는 타입이라 책을 두번 이상 읽는 건 진짜 따분하고 지루한 일로 여겨왔는데, 역시나 제대로 독파하고 싶고 그 책의 논리성이나 구조를 이해하려면 적어도 3번은 읽어야겠네요 ㅎㅎ
마침 오늘 중으로 <쉽게 읽는 언어철학> 을 다 읽을 것 같은데, 다시 읽으면서 논증구조를 한번 파악해보겠습니다.

또 다른 질문이 생겼는데, 철학과 관련된 (철학이 아니더래도) 책을 읽을 때, 저는 그냥 그 철학자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읽는 편이고(아~ 그렇구나..) 그래왔는데, 그 주제에 대해 사고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부족합니다. 혹시 이에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스피노자의 인식론에 관해 책을 읽으면, 책을 덮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한다던가 글로 써보면 될까요?

옥스포드식 개념 사고법 < 책 추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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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주신 진심어린 조언들 읽어보았습니다. 역시 메모하기와 복습(여러 번 읽기) 가 되게 중요하군요.
혹시 책을 읽고 간단한 서평 작성하시나요? 어떤 식으로 작성하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블로그나 공책에 쓴다던지 등등 글쓰기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오늘 언어철학 다 읽을 것 같은데 이 책 몇번 더 보고, 영미철학으로 넘어가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자세하고 친절한 조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해주신 말씀에 따라 실천하는 철학도가 되겠습니다,,,!!!! 너무 깊게 들어간다기 보다 흐름 위주로 우선은 공부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제가 아직 원문 읽을 수준이 아닙니다. 학창시절 때 영어가 젤 발목을 잡았고 아직도 못하며 공부할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학생이 된 지금, 수능 영어를 고부하기도 좀 그럴 것 같은데 혹시 영어는 어떻게 공부하셨는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얼른 스탠포드 철학 사전이나 원문을 읽고싶네요

(1) 스스로 생각하는 걸 배우는 게 철학이라고 생각하시면, 급하게 가실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석사논문을 마쳤지만 아직 철학적 분석이라는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일 수도 있겠네요.)
다만 그런 의식을 가지고 "이 사람이 뭘 말하려 하는 걸까",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있는가? 없으면 왜 동의할 수 없는가?" 이런 의문을 꾸준히 붙들어보시면 또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글쓰는 연습은 꾸준히 하셔야 합니다!

(2) 저도 지금 시점에선 영어를 어떻게 공부했는가 말하기가 어렵네요. 솔직히 말하면 시험 준비하는 게 실력이 제일 많이 늘긴 합니다..!ㅋㅋ

오 3회 독서법... 훌륭하네요. 적용이 잘 될진 모르겠지만 저도 앞으로 습관을 들여보는게 좋겠다 싶어요. 덕분에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저도 태어나서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영어에 인생의 발목을 붙잡히고 있습니다. 반갑네요 ㅠㅠ 전 특히 사람들 중에서도 외국어 습득 능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자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찌저찌 영어 논문을 소화할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요, 정말 무식한 방법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만. 비슷한 상황에서의 제 경험을 조금 말씀드려보자면.

저는 어쨌건 독해는 양치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철학 처음 공부할 때 영어도 필요할테고 또 철학사적인 지식도 적고 하니, 러셀의 서양철학사 원문을 구해서 읽어보고자 했고 방학 내내 약 600페이지 가까이 읽었던 것 같아요. 읽는 동안에도 조금씩 독해력이 늘어가는게 느껴졌었는데, 여튼 그러고부터는 독해 자체도 조금씩 되어갔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영문 문헌에 대한 공포감과 거리낌(혹은 혐오감)이 사라지더라구요. 일단 당장 원문이나 SEP를 읽는 정도의 독해력을 기르고 싶으시다면, 원하시는 아티클을 뽑아서 사전 뒤져가면서 쭉 읽어가보시는 것도 어떨까 합니다. 비슷하게 저는 독어를 처음 배웠을 때에도, 문법책을 조금 뗀 후에는 바로 텍스트로 돌입해서 읽어나가려고 했었어요. 소기의 성과가 조금 있었다고 자평...은 하고 있구요.

헌데 저는 또 궁금한게 독해는 그렇다치고, LC를 비롯한 다른 부분들은 어떻게들 해결하셨는지 궁금해요. 전 수능 준비할 때도, 영어시험 준비할 때도 늘 듣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스피킹-라이팅에 대한 공포는 아직 떨쳐버리기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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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가 제 개인 블로그 주소입니다. 여기에 글들을 정리해두었어요.

https://blog.naver.com/1019milk

서평 형식으로 글을 쓸 때도 있고, 공부한 텍스트에서 일부분을 발췌해서 코멘트를 남기는 형식으로 글을 쓸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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