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상상력 (2019)(미완성)

(-) SEP의 "상상력"( Imagination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에 대한 번역입니다. 또 다른 번역인 "도덕 비인지주의" 번역이 짜증날 때마다(...) 번역할 예정입니다.

(0) 개요

무엇을 "상상한다"는 것은 대상이 실제로/현재에/주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재현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실제로 그러하지 않은 가능성을 재현하는데,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을 재현하는데,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을 재현하는데 상상력을 쓸 수 있다. 지각이나 믿음과는 달리, 상상은 그 대상이 사실이라 여길(something to be the case) 필요가 없다. 욕망이나 기대와 달리, 상상력은 그 대상이 일어나길 원하거나 기대할 필요가 없다.

상상력은 인간 활동의 많은 영역과 연관되며, 다양한 철학적 관점에서 탐구되었다. 심리철학자들은 마인드 리딩(mindreading,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연기/가식/척하기(pretense)에서의 상상력의 역할을 논의했다. 철학적 미학은 다양한 종류의 예술 작품에 참여/창조에서의 상상력의 역할을 논의했다. 인식론 학자들은 이론적 사고 실험과 실천적인 선택 과정(decision making)에서의, 언어 철학자들은 아이러니(irony)/비유(metaphor)에서의 상상력의 역할을 논의했다.

주제의 광범위함 때문에, 이 글은 동시대 영미권 철학적 전통에서의 상상력에 대한 논의를 주로 다룰 것이다. 상상력에 대한 역사적 개괄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하라. 20세기 전과 20세기 초반에 대한 논의로는 심적 이미지/심상(mental imagery). 상상력에 대한 역사적인 주장들은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홉스, 데이비드 흄, 임마누엘 칸트, 길버트 라일에 대한 글을 참조하라.

(1) 상상력의 본질

다양한 종류의 인간 이해와 활동에서 상상력의 역할이 논의되었다. [3절] 따라서 놀랍지 않게도, (상상력에 부여된) 이 모든 역할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심적 능력/마음의 구성 요소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할에 대한 주장에 근거해, 철학자들은 상상력의 본질을 세 가지 방식으로 명료화했다. 첫째, 철학자들은 "상상력"이라는 용어가 가진 다양한 의미들의 다의성을 제거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몇 경우. 각기 다른 명료화 속에 있는 핵심적인 공통점을 짚을 수 있다. [1-1절]. 둘째, 철학자들은 다른 종류의 상상력을 구분하기 위한 부분적인 계통 분류를 제시했다. [1-2절] 셋째, 철학자들은 특징적인 상상력 활동을 규제하는 규범(norms)을 위치 지으려 했다. [1-3절]

(1-1) 다양한 상상력들

이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상상력"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넓게 사용되기에 단순한 분류 형태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사실 스트로슨(P.F Strawson)이 <상상력과 지각>이라는 논문에서 한 호소로 개요를 시작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미지", "상상(하다)", "상상력" 등의 용어를 사용/적용하는 것은 매우 다양하고 흩어진 가족(유사적) 관계를 형성한다. 비록 이 가족에 대한 이미지가 확고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 가족 관계의 구성원 명단을 작성하고 규명하는 일은 커녕, 부모/사촌관계를 규명하는 일조차 단순한 어려움 이상이다. (스트로슨)

이러한 분류학적 도전은 (상상력의) 특징을 규명하는 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마도 상상력에 관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저서인) 켄달 월튼(Kendall Walton)의 <미메시스 ; 믿는 체하기로서의 예술>의 서두에서, 월튼은 상상력이라는 관념을 정확히 기술하는 일이 가망이 없다 선언한다. 상상력의 특징적인 예들을 구분/나열한 뒤, 그는 묻는다.

그래서 상상이 무엇인가? 우리는 상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다수의 경우를 보았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지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난 그럴 수 없지만 말이다. (월튼)

Leslie Stevenson은 상상력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폭넓은 경우를 제시하는 (아마도) 유일한 시도를 했다. 여기에서는 심리 철학/미학/윤리학/시학/종교 등의 담론에서 찾을 수 있는 상상력에 대한 갖아 영향력 있는 개념들을 목록화한다.

(1-2) 상상력의 분류

다양한 종류의 상상력을 기술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부분적인/전반적인 분류 체계를 제시하였다.

몇 분류 체계는 단지 기술만 하기에, 큰 논점이 없다. 예컨대 켄달 월튼은 자발적(spontaneous)/능동적(deliberate) 상상 [인지자의 의식적인 지시와 연관되거나/되지 않는 상상], 현재적(occurrent)/비현재적 상상 [인지자가 명백히 지각하는/그러지 않은 상상], 사회적(social)/개인적(solitary) 상상 (여러 사람들이 같이 하는/그러지 않는 상상]을 구분한다.

다른 유명한 기술적 분류 체계는 내적 관점(from the inside)/외적 관점(from the outside) 상상의 구분이다. 내가 나폴레옹이라는 외적 관점의 상상은, 내가 나폴레옹인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이다. 내가 나폴레옹이라는 내적 관점의 상상은 여기에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누군가가 나폴레옹의 관점(perspetive)를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내적 관점의 상상은 본질적으로 1인칭이며, 외적 관점의 상상은 그러지 않다. 이 두 종류의 구분은 개인의 정체성(personal identity)의 형이상학과 관련된 사고 실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몇 분류 체계는 체계성을 의도한다. 그러므로 보다 논쟁적이다.

Gregory Currie/Ian Ravenscroft는 창조적(creative) 상상 [예상하지 못한/전형적이지 않은 형태로 아이디어들을 결합시키는 것]과 지각적(sensory) 상상 [합당한 자극이 없는 지각과 비슷한 경험] 그리고 재창조적(recreative ) 상상 [경험이 제공하는 인지자 본인의 관점과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경험/생각하는 능력]을 구분한다. 위의 관점과 흡사하게, Neil Van Leeuwen은 "상상력"(과 이와 유사한 단어)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이들 단어들은 심적 재현물을 생성할 수 있는 과정과 연관된 구성적(constructive) 상상력을 의미할 수 있다. 둘째, 이들 단어들은 심적 재현물에 대한 명제 태도와 연관된 태도적(attitude) 상상력을 의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심적 재현물의 감각 지각과 같은 형태(format)과 연관된 이미지적(imagistic) 상상력을 의미할 수 있다.

Amy Kind/Peter Kung은 상상력의 사용이 가진 수수께끼를 제기한다. 이 수수께끼는 세상을 넘어선 것/벗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의 초월적(transcendent) 사용과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게 해주는 상상력의 도구적(instructive) 사용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이다. Kind/Kung은 궁극적으로 겉보기에는 꽤 다른 사용처럼 보이는 이 둘을 같은 태도라 볼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서 수수께끼를 해결한다. 왜냐하면 (둘이 보기에) 이 두 사용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 (특히, 상상력을 어느정도 제약하는지)라 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상상력은 그들의 구조와 내용을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다. 예시와 함께 제시된 세 종류의 상상력을 고려해보자. 우리가 명제적(prepositionally) 상상한다 할 때, 이 내용은 우리에게 그 형태[즉, 명제로] 재현된다. 예컨대, 줄리엣이 '로미오가 그녀 곁에 있다' 상상한다 해보자. 이러한 상상은, 특정한 명제와 심적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objectively) 상상한다 할 때, 이 속성/상황은 우리에게 실제/믿는 체(make-beleive)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예컨대, 프로스페로가 도토리/님프/도시 나폴리/결혼식을 상상한다 해보자. 이들을 상상한다는 것은, (상상적이거나 실제) 속성 혹은 사태(state of affairs)의 재현물과 어떠한 심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우리가 'X를 상상한다'할 때, 이는 어떠한 활동/경험을 인지자에게 시뮬레이션으로(simulatively) 재현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필리아는 햄릿을 보는 것/그녀 스스로 수도원에 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상상은 어떠한 행동/감각 지각과 (상상적인 혹은 실제의) 1인칭 시점의 심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1-3) 상상에 대한 규범

상상력의 작동을 규제하는 일반적인 규범이 있다.

모방하기(mirroring, 여기서는 엄격한 심리학적 용어로 쓰입니다.)은 명확히 약속하지 않은 상상적 상황의 특징을 (상상적 상황과) 유비적인 실제 세상의 특징에서 가져올 때를 말한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상상적 내용(content)이 믿는 내용을 규제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제약에 의해 규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Alan Leslie에 의해 수행된 널리 논의되는 실험을 예시삼아 말해보자. 아이들에게 상상의 티 파티에 참여하도록 요청했다. 실험자가 하나의 빈 잔을 가리킨 다음에 쏟아붓는 시늉을 한다면, 아이들은 가리키지 않은 잔은 (가식/척하기의 맥락에서) 차 있다고 여겼으며, 가리킨 잔은 (척하기의 맥락과 그렇지 않은 맥락 모두에서) 비어있다 여겼다. 사실, 믿는 척하기 게임(make-believe game)과 보다 복잡한 형태로 예술에 참여하는 것은, (연기에 대한) 지시(prompts)나 소품(props)이 명령하는 특정한 상상에 따르는 "발생의 원칙(principles of generation)"에 의해 규제되는 것이다.

격리(Quarantining)는 상상된/가정된 에피소드의 사건들은 오직 연관성이 있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영향을 미칠 때를 말한다. 예컨대, 아이들이 믿은 체 하는 티파티에 참여할 때, 그들은 (상상으로) 차를 흘리는 것이 책상을 정말로 젖게 만든다고 예상하지 않는다. 또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을 상상한 사람 역시 자신이 ATM에 갔을 때, 자신의 계좌에 당첨금이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보다 일반적으로, 격리는 상상된 사태에 대한 원-믿음(proto-belief)/원-태도가 실제 세상의 행동을 추동하는 믿음/태도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상상된 에피소드들이 모방하기/격리에 의해 일반적으로 규제될지라도, 이 둘은 모두 체계적인 방식으로 위반될 수 있다.

모방은 상상된 내용(에 대한 취급)이 믿어지는 내용과 달라질 때 차이(disparity)에 자리를 내준다. 상상된 내용은 불완전할 수 있다. (incomplete)(예컨대, [척하기에서] 책상 위에 얼마나 많은 차를 흘렸는지에 관한 사실에 대한 내용이 없을 수 있다.) 아니면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 (incoherent)(예컨대 [척하기에서] 토스트기가 논리값 인버터[logical-truth inverter]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상된 내용은 '모순된 반응'(discrepant responses)을 불러올 수 있다. 가장 특징적인 예시는 모든 인간의 임박한 절명은 무섭다기보다 즐거운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

격리는 상상된 내용이 실제 태도/행동에 직접적인 역할을 할 경우, 감염(contagion)에 자리를 내어준다. 이는 '정서적 전달'(affective transmission)의 사례가 흔한데, 이 사례는 상상된 상황으로 발생한 감정적 반응이 그 후의 행동을 야기하는 경우다. 예컨대, (부엌에 있는 호랑이처럼) 무언가 무서운 것을 상상하면, (방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은) 실제 주저함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인지적 전달'(cognitive transmission)의 사례에서도 일어난다. 이는 상상된 내용이 그 후의 지각/경험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인지자를 (그 내용에) "취하거나"(prime) 접근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어떠한 개체를 상상하면 (양처럼), 인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있는 개체를 그렇게 지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위를 양으로 잘못 보는 것처럼)

(2) 인지 구조에서의 상상력

상상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방법은 구분을 하고, 분류 체계를 제시하며, 상상력을 규제하는 규범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본질을 탐구하는 다른 (아마도 더 유명한) 방법은, 넓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통속 심리학/과학적 심리학에서 더 잘 이해된 심적 요소와 상상력이 어떻게 들어맞어 작동하는지 밝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연관된 과제가 있다. 첫째는 철학자들은 다른 심적 요소들과 상상력을 대조시킴으로서, 상상력을 정의하고자 했다. 매우 간략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많은 철학자들은 상상이 믿는 것과 같지만, 직접적으로 행동를 추동(motivate)하지는 않는 것으로 여겼다. 두번째는 상상력에 입력되는 것/출력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심적 요소들을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매우 간략한 예를 들어보자면, 많은 철학자들은 상상은 행동을 발생시키는 시스템으로 무엇을 내보내지/출력하지 않는다 여긴다.

오늘날 상상력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널리 언급되는 심적 요소는 믿음 [2-1], 욕망 [2-2], 심적 이미지 [2-3], 기억 [2-4] 그리고 가정(supposition)[2-5]이다. 이 논의는 제시된 어떠한 상상하는 태도가 인간 이해/활동의 여러 분야에서 상상력의 역할이라 상정된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궁극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3]

(2-1) 상상력과 믿음

'믿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사실이라 여기거나, 참이라 여기는 것이다. 누군가가 "저 거짓말쟁이는 자기 팬티가 불에 탄다 믿는다."할 때, 화자는 주체(저 거짓말쟁이)에 명제(자기 팬티가 불에 탄다)에 대한 태도(믿음)을 귀속시키는 셈이다. 유사하게, 누군가가 '저 거짓말쟁이는 자기 팬티가 불에 탄타 상상한다."할 때도, 화자는 주체(저 거짓말쟁이)에 명제(자기 팬티가 불에 탄다)에 대한 태도(상상)을 귀속시키는 셈이다. 믿음 귀속과 상상력 귀속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상상과 믿음의 공통점/차이점을 가리킨다.

상상과 믿음은 둘 다 재현적인 인지적 태도다. 이 둘은 같은 종류의 내용(content)을 가진다. (그 내용이란) 재현물로, 다른 재현물들과 추론적 관계(inferential relationship)가 성립한다. 단일 코드 가설(single code hypothesis)에 따르면, 재현적 구성방식(format)의 동일성이 상상과 믿음 사이의 기능성 유사성을 근거짓는다. 상상/믿음의 차이에 관해서는, 이 둘을 구분하는 두 가지 다른 입장이 있다.

첫번째 입장은 두 능력의 차이는 규범적 용어로 정의한다. 믿음이 참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상상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거짓말쟁이가 자신이 팬티가 불타고 있다는 것을 참이라 여기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자기 팬티가 불에 탄다고 진정으로 믿는다 볼 수 없을 것이다. 대조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자기 팬티가 불타고 있다는 것을 참이라 여기지 않았더라도, 그 사람음 여전히 자기 팬티가 불에 탄다고 상상할 수 있다. 참의 규범이 믿음의 태도를 규제하는 반면, 상상력의 태도는 규제하지 않는다. 이에 반대하며, Neil Sinhababu는 참의 규범이 상상과 믿음을 구분하는 필요 조건도 충분 조건도 아니라 주장한다.

두번째 입장은 두 능력의 차이는 기능적 용어로 정의한다. 믿음/상상력에 대해 제기된 기능적 차이는, 각자가 행동과 관련된 차이다. 만약 거짓말쟁이가 정말로 자기 팬티가 불에 탄다 믿는다면, 그는 전형적으로 불을 끄려 할 것이다. (예컨대, 자기 자신에게 물을 끼얹으면서 말이다.) 대조적으로, 거짓말쟁이가 그저 자기 팬티가 불에 탄다 그저 상상하는 것이라면, 그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이 행동을 일으키는 시스템에 무언가를 집어넣는다면, 상상은 그러하지 않는다. Velleman/Dogget-Egan은 이렇게 상상력/믿음을 구분하는 관점에 도전하기 위해, 특정한 가식(pretense) 행동을 지목한다. Velleman은 아동의 가식 행동을 믿음-욕망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동을 "절망적으로 아동적이지 않게" 보이게 한다 말한다. Doggett-Egan은 (인지자가) 몰입한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와중에서는, 가식 행동은 상상력에 의해 직접적으로 동기 부여될 수 있다 주장한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해서, 철학자들은 상상력이 행동을 동기부여할 수 있는 이정표(guidance)나 배경이 되는 역할(stage-setting)을 할지라도, 행동-발생 시스템에 직접적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는 주장은 거부한다.

믿음과 상상력의 기능적 차이에 대한 또다른 제안은, 이 둘이 감정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고려한다. 만약 거짓말쟁이가 정말로 자기의 팬티가 불에 탄다고 믿는다면, 그는 대체로 그 불을 무서워할 것이다. 반면 그렇다 상상만 한다면,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실제

(2-2) 상상력과 욕망(desire)

욕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원한다는 사실/사건을 의미한다. 표준적으로, 욕망의 능동적인 태도(conative attitude)는 들어맞는 방향에 있어서, 믿음의 인지적 태도와 대조된다. 믿음은 인지자의 심적 재현물이 세상이 그러한 형태와 정합적이게 만들고, 욕망은 세상을 인지자의 심적 상태에 맞게 바꾼다. 앞선 "단일 코드 가설"(single code hypothesis)에 따르면, 믿음과 구조적으로 흡사한 인지적 상상의 태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욕망과 구조적으로 흡사한 (욕망-같은 상상력[desire-like imagination], 욕망하는 척하기[make-desire], i-욕망 등으로 불리는) 능동적인/의욕적인 상상의 태도가 존재하는가?

상상력과 욕망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상상력과 믿음의 관계에 대한 논쟁과 엮여있다.

(2-3) 상상력, 이미지 그리고 지각
(2-4) 상상력과 기억
(2-5) 상상력과 가정

(3) 상상력의 역할

상상력에 대한 오늘날 연구들은 주로 다양한 범위의 인간 이해 능력/행동에서 하는 (가정된) 특정한 역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장 널리 연구된 상상력의 역할은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3-1], 가식/척하는 것을 수행/인지하는 것 [3-2], 정신병을 특징짓는 것 [3-3], 예술에 참여하는 것 [3-4],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것 [3-5], 가능성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 [3-6], 표현적 언어를 해석하는 것 [3-7] 등이다.

상상력에 귀속된 다양한 역할은 상상력의 본질에 관한 논의 [1]나 인지 구조에서의 그 위치에 관한 논의 [2]에 이정표가 된다.

(3-1) 마인드리딩

마인드리딩(mindreading)은 심적 상태를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귀속시키거나, 이런 귀속에 기반해 행동을 예상/설명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90년대 이루어진 마인드리딩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이론-이론"(theory-theory)(타인에게 어떠한 심적 상태를 귀속시키는 것이 암묵적인[tacit] 통속 심리학 이론[folk psychological theory, 누구에게나 있는 타인/자신의 심리를 알 수 있는 선-이해적 능력]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시뮬레이션 이론"(simulation theory)(심적 상태를 귀속하는 것이 대상의 [명백한] 심적 상태에 대한 모방(replicate/emulate)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아마도 이 과정에 상상력에 개입할 것이다) 사이의 논쟁으로 요약된다. 요즘에는 각 입장의 옹호자들이 공통 지점에 도달하는 경우가 늘었으며, 이론/시뮬레이션이 모두 타인에게 심적 상태를 귀속시킬 때 어떠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수용한다. 이러한 다수의 혼합 이론은 상상력의 역할 또한 포함한다.

'이론-이론'의 관점에 따르면, 마인드리딩은 암묵적(tacit) 통속 심리학적 이론(folk psychological theory)의 적용이 이루어져서, 인지자가 상대의 믿음/행동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입장 중 순수한 입장에 따르면, 상상력은 타인에게 심적 상태를 귀속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시뮬레이션 이론'의 관점을 따르면, 마인드리딩은 상대의 심적 상태를, 인지자와 상대의 생각하는(processing) 능력이 동일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이 시뮬레이션이 인지자로 하여금 상대의 믿음-행동을 예측-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고전적인 버전의 시뮬레이션 이론은 전형적으로 시뮬레이션을 "자기 자신을 상상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자리에 놓는다." 등의 표현을 통해 전형적으로 묘사한다. 이 비유가 어떻게 이해되는지는 특정한 설명에 달려있다. 많은 설명에서,

(3-2) 연기/가식
(3-3) 정신 병리학

자폐증(autism)과 망상(delusion)은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상상력의 오작동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각각의 정신병과 연관된 이례적인 패턴의 인지와 행동을 상상력의 이례적인 활동의 결과로 본다는 것이다.

자폐증은 "Wing의 삼단항"으로 불리는 세 가지 이례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전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능숙함, 의사소통 그리고 상상력에 있어서의 문제다. 자폐증이 가진 상상력에서의 문제는, 마인드리딩, 척하기, 예술에의 참여처럼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른 부분과 상호 작용한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는 전형적인 발달 과정의 아이들과 달리, 자발적으로 척하기 놀이(pretend play)에 참여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적이며 (때로는) 강박적인 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자폐증을 가진 성인은 픽션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폐증이 어느 정도의 상상력의 결핍을 함축하는지는 큰 논쟁 사항이다. 가장 급진적으로 Currie/Ravenscroft는, Wing의 삼단항을 따라, 전형적인 사회적 능숙함-의사소통에서의 문제나 상상력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되었기에 그렇다 본다.

망상(delusion)은 실제와 일상적이지 않는 정도로 연결되지 않은 형태인, 믿음과 같은 심적 재현물로 특징지어진다. 특히 특징적인 사례로는 Capgras - Cotard 망상이다. 전자는 환자가 자신의 친구/가족이 침입자들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믿는다. 후자는 환자가 자기 자신이 죽었다 여긴다. 가장 일상적인 예시는 자기 기만(self-deception)의 일반적인 사례들이 포함될 수 있다.

망상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은, 이를 믿음이 내용이나 형식(formation)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접근은 망상을 상상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 본다. Currie/Ravenscroft는 망상

(3-4) 예술 작품에의 참여

상상력과 예술 사이에는 견고한 역사적 관계가 있다. 흄과 칸트는 둘 다 미학적 현상에 대한 탐구에 상상력을 핵심으로 언급한다. 콜링우드(R.G. Collingwood)은 느낌(feeling)의 상상적 표현으로 예술을 정의했다. Roger Scruton은 상상력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적 해석을 발전시켰고, 이 이론은 미학적 경험/미학적 판단의 중심적 역할을 상상력이 차지한다.

오늘날 철학에서, 예술에 참여하는 상상력의 역할에 대한 주도적인 이론은 켄달 월튼의 <미메시스>에 나온다. (비록 월튼이 예술 작품을 지칭하기 위한 기술적 용어로, "픽션"을 사용했지만, 그의 예술 개념은 폭이 넓다. 이는 고급/저급 예술, 대중/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시나 비디오 게임 같은 다양한 특정 예술 형태, [나아가 Stacie Friend가 명확히 했듯] 픽션과 논픽션 작업을 아우른다.) 월튼의 핵심적인 통찰은 예술에 참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아이가 "척하기"(make-believe) 놀이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예술에 참여한다면, 누군가는 예술을 척하기 놀이의 소품으로 활용한다. 소품으로서, 예술 작품은 상상력을 위한 처방
이러한 기술은 예술 작품의 재현적 내용을 또한 결정한다. (이는 "픽션적인 것"으로, 픽션적 세계에서 참인 것이다.) 누군가가 예술작품에 올바르게 참여한다면,

(3-5) 창조성

상상력이 창조/창작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생각은 임마누엘 칸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칸트는 예술적 천재가 창조성의 전형적인 예시라 여긴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미학을 목표로 상상을 한다면, 인지자에게 허용된 이해를 넘어선 자유로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된다 한다. 그러므로 제한되지 않은 상상은, 원재료를 가지고 (인지자가 가진) 개념을 초월한 개념을 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셈이다.

여전히, 창조성의 정확한 특성은 논쟁으로 남아있지만, 오늘날 철학자들은 칸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은 의미로 받아드리고 있다. 미학적 영역에서의 창조 과정뿐 아니라, 과학/공예/사업/기술/조직 생활/일상적 활동 등에 있어서의 창조 과정도 고려한다. 예컨대, Michael Polanyi는 과학적 발견이라는 창의적/창조적 시도에, 무한정 열린 과학적 문제에서 해결 공간을 정제하고-좁히는,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보았다. 나아가, 천재들의 창조적 과정뿐 아니라, 오늘날 철학자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창조적 과정 역시 고려한다.

이렇게 확장된 범위에서, 오늘날 철학자들은 창조성에 있어서 상상력의 역할을 탐구한 칸트의 방향을 따라간다. Bery Guts/Dustin Stokes는 상상력의 두 가지 특징 (참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이 (상상력이) 그토록 창조적 과정에 적합한 이유라 말한다. Peter Carruthers는 상상력을 포함해, 동일한 인지적 자원들이 어린이들의 척하기 놀이와 어른들의 창조적 생각에 사용된다 주장한다. 특히 Carruthers는 어린이들의 놀이가 어른들의 창조적 생각의 선구자이자 연습으로서 진화적으로 발전한한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창조적 과정에서의 상상력의 역할에 대해, 두 가지 지점에서의 불일치가 있다. 첫째, 철학자들은 상상력과 창조성 사이의 본질과 연결 강도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다. 칸트는 상상력이 창조성을 구성한다 보았다. 이는 창조적 과정을 '창의적/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 미학의 목표로 한 상상력의 개입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대조적으로 Gaut/Stokes는 상상력과 창조성 사이에는 불완전한 '인과적' 연결만이 존재한다 여긴다. 상상력이 창조적 과정에 유용할지라도, 상상력이 없는 창조적 과정이나 창조적이지 않은 상상력도 있다 본다. 둘째, 철학자들은 창조 과정에 개입하는 상상력의 '종류'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공통의 진화론적 원인을 가정하면서, Carruthers는 창조성과 가식(pretense)에 동일한 상상력 능력이 개입한다 본다. 대조적으로 (아마 칸트의 생산적[productive]/재생산적[reproductive] 상상력 구분의 영향을 받아) Currie/Ravernscroft는 가식/마인드리딩에 개입하는 재창조적 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3-6) 지식

상상력은 지식의 습득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 [다음이 그 예시들이다.] (i) 형이상학적 양상적 지식에 대해 말할 때, 많은 철학적 담론들은 상상력에 호소한다. (ii) 과학의 이론화에 반복적으로 쓰이는 사고 실험도, 상상력의 작동을 전제한다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iii) 이미 말했듯,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상상력을 사용한다. (3-1) (iv) 나아가, 사람들은 때로 반사실성(counterfactual, If ~하지 않았다면, ~했을 것이다 형태의 논증)이나 만약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 것과 달랐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결정을 내리곤 한다. 한편, (v) 변화의 경험(transformative experience, '이 경험을 하고 내 가치관이 바뀌었어'라고 할 때의 경험) 현상에서 어떤 종류의 상상적 시나리오가 진정으로 인식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가 질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고 실험은 (이상적으로) 가능성에 대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보증하는 반응을 산출하기 위한, 상상된 시나리오다. 철학에서 특별한/주된 사고 실험의 종류는 상상력과 상상가능성(conceivability), 형이상학적 가능성(metaphysical possibility) 간의 관계를 고려한다.

(3-7) 표현적 언어

11개의 좋아요

이러다가 전기가오리에 취직하시겠는데요?

4개의 좋아요

(1) 취직보다는 그쪽에서 저한테 이 번역을 사가겠다고 하면 좋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

4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