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Dahl, 「Democratic Theory and Democratic Experience」

번역입니다. 첫 번째 문장에서 등장하는 로티의 문제 제기는 로티의 <거울> 8장에서 등장합니다.


Democratic Theory and Democratic Experience(Robert A. Dahl, 1996)

민주주의는 토대를 필요로 하는가? 토대에 관한 철학자의 논변에 대한 로티의 유명한 도전은 한동안 민주주의 이론과 실천에 관심을 가져온 정치학자인 나를 그 질문에 대답하도록 고취한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우리가 이 문제 제기에서 사용된 주된 용어들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질문을 매우 많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토대’, ‘민주주의’, ‘필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용어와 관련해 [위] 물음은 세 가지 매우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민주주의 체계, 체제, 정부가 존재하거나 적절히 기능하기 위해는 토대를 필요로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혹은
  2. 민주주의 이론에 토대가 필요한가? 혹은
  3. 민주주의 체계가 민주주의 이론을 그 토대로 필요로 하는가?

이 중 첫 번째 질문은 내가 철학적 질문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경험적(실증적) 질문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게다가 이 경험적 문제가 제기하는 것은 지옥처럼 어려운 것이다. 우선, 우리는 이 물음을 역사 전체에 걸친 모든 민주주의 체계로 확장할 것인지 혹은 현대 민주주의 체계로 한정할지 결정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고대 그리스, 로마 공화국, 중세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포함한 모든 다소 민주적인 체계를 다루고자 한다면, 합리적인 답변은 아마 언제나 우리를 떠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민주주의 체계의 토대 중 하나가 지도자와 시민 사이에 특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는 특정한 실질적 내용을 가진 일련의 믿음이라면, 나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위한 증거가 어떻게 가능해질지 알기 힘들다. 물론 비록 우리는 다소간 그럴듯한 추측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관심 사안을 현대 민주주의 체계, 우리가 일상적 용례로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18세기 이래의 민주주의 체계로 제한한다고 가정하자. 완곡히 표현하자면, 이에 대해서도 제시될 만족할 만한 대답에 도달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문제를 다루기 위해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 같은 나라가 민주주의 정치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을 우리가 개발한다고 가정하자. 비록 이러한 나라들이 완전히 이상적 의미에서 민주적이지는 않지만, 일상적 언어와 언론 그리고 학술적 용어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도록 허용한다. 그것들과 비견해서 민주주의의 문턱에 도달한 어떤 국가더라도 민주주의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가 동의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1950년 또는 그 이전에 21개의 나라가 그 문턱에 도달했고, 끊임없이 민주주의 정치 체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집합을 오래된 민주주의로 부르도록 하자. 비록 이 오래된 민주주의는 분명 인간 역사에 있었던 그 어떤 정치 체계보다 체계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연구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상당히 엄격한 답변을 허용할 만큼의 충분한 비교 가능한 자료가 있는지 의문이다.
문제는 1993에 적어도 30개 이상의, 어떤 경우에는 40개의 나라가 다소간 임의적이지만 [민주주의]의 문턱에 도달했다는 사실로 인해 더 복잡해졌다. 비록 이러한 국가들 대부분이 그들의 민주주의적 제도를 처음엔 획득했지만, 아르헨티나, 칠레, 우르과이 같은 몇몇 경우엔 권위주의적 통치 시기를 겪고 나서 민주주의적 제도를 다시 획득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수의 엄청난 증가는 –말하자면, 연구를 위한 많은 사례의 수- 언젠가는 우리의 질문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답변을 제공할지도 모를 비교 연구를 위한 역사적으로 비교 불가능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러한 비교 작업은 거의 시작되지 않았다. 비교 작업은 의심의 여지 없이 흥미롭고, 도전적이고, 재밌고, 중요하고, 빠르게 전진하고 있으나, 사실 작업 완료까지는 많이 멀었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만족할 만한 답변은 아마 민주주의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비교 분석을 요구한다. 내가 아는 한 가장 풍부한 계산에 따르면, 1900년에서 1985년 사이 비민주주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를 52번이나 대체했다(민주주의 정부가 외세 침략의 결과로 대체된 경우는 제외한다). 의학과 수술과 마찬가지로 정치학 내에서도 질병, 기능 장애, 병듦, 비극은 우리에게 얼마나 건강한 체계가 유지될 수 있고, 또 병든 체계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유용한 증거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예전의 민주주의 붕괴에 관한 연구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웠다. 불행히도, 아직 오지 않은 붕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긴 관점에서 봐서, 중심 문제에 관한 첫 번째 해석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답변은 언제쯤 제공될 수 있을까? 우리 추측해 볼까? 20년? 50년?
이제 문제에 관한 두 번째 해석으로 넘어가자. 민주주의 이론은 토대를 필요로 하는가?
‘필요로 하다’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무시하자(특히, 우리는 그것을 통해 필요한, 충분한, 혹은 필요충분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이미 민주주의 이론이 토대를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첫째, 토대 없는 이론은 아주 좋은 이론 혹은 적절한 이론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를 더 나아가게 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좋은 이론이라는 말로 우리가 뜻하는 바를 정의하는 방법에는 하나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우리가 그러한 정의를 순수히 미학적 근거에서 승인하는지 아닌지, 또는 그러한 이론이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토론 종결의 느낌을 제공하기 때문인지 아닌지 합리적으로 물을 것이다. 혹은 미적 쾌감이나 다른 정신적 만족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걸려있는지 아닌지? [물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 이론에 대한 만족스러운 토대를 개발하려는 시도에 대한 더 나은 이유는 토대를 가지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결과와 관련된다.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토대라는 말은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고 믿을 토대, 주어진 체계가 민주적인지 여부와 그 정도를 판단할 토대를 제공하는 일련의 합리적 가설을, 그리고 이 가설을 충족하기 위해 어떤 정치적 실천[관행]이나 제도가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한 일련의 합리적 가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이론을 위해 우리가 토대를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계는 민주주의 이론을 필요로 할까? 민주주의 이론을 토대로써 필요로 할까? 고백하자면 이에 대한 답변은 전혀 명확하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만족스러운 답변은 민주주의 체제와 지적 엘리트, 정치적 지도자, 중간 여론 지도자, 대중 사이의 관계를 역사적 그리고 비교하여 다루는 매우 어려운 경험적 판단에 달려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관계들이 완전히 잘 이해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게다가, 그러한 관계는 아마 나라마다, 한 나라 내에서도 시대별로 다를 것이다.
하지만 지적 엘리트들이 대체로 민주주의가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근거를 통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갖춘 국가를 상상해 보자. 민주주의 체계가 비-민주적 대안 체계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만한 지적으로 훌륭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팽배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제도가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적당히 잘 굴러가고 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지식인들의 불평스러운 반대 의견을 단순히 묵살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와 영향력 있는 여론 조성자는 대체로 호의적인 대중의 관점에 따라갈 것이다. 하지만 모든 나라는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은 나아갈 길을 찾는 데 훨씬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비-민주주의적 대안을 촉진하는 사람들은 더 쉽게 찾을 것이다.
또는 비-민주주의 제도를 가졌으나 민주주의로 전환할 유리한 조건이 있는, 그러나 야당 지식인을 포함해 지식인들이 민주주의를 위한 어떤 심각한 지적 정당화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라를 떠올려 보라.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해 과도한 영향력을 부여하거나 지식인의 정치적 신념과 이데올로기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더 합리적으로 근거 지어져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겠지만, 이러한 성찰을 통해 나는 이하의 결론을 얻는다. 민주주의의 안정, 붕괴, 이행에 기여하는 복잡한 역사적 요소들 중 합리적인 추정에 기초한 민주주의 이론 체계는 결코 사소한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결론을.


출처: 벤하비브, 1996, Democracy and Difference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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