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Rorty, 『PMN』 - 3.2장

설명과 정당화에 대한 로크의 혼동(PMN: 139-148; 번역본: 157-167)

로티는 근대의 <인식론>이라는 철학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설명한다. 설명에 따르면 우선 로크가 <믿음의 획득 과정(방식)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그 믿음의 정당화 표식>이라고 혼동했기 때문에 형성됐다.

로티는 로크의 혼동에 관한 설명을 제공하기 전에 고대의 회의주의와 데카르트의 회의주의를 구분한다. 고대의 회의주의는 기본적으로 <순환성이나 독단주의를 피하면서도 믿음 획득에 합당한 탐구 과정은 무엇인가>를 따졌다. 그렇기에 외부세계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며 <정신> 개념을 만들고 <우리의 내적 표상은 정확한 것인가>를 따진 데카르트의 회의론과 사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로티는 데카르트가 새로운 회의론을 펼쳤다는 사실이 근대 인식론이 발전한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데카르트를 이어받은 로크에 대해서 논한다.

로티가 보기에 로크는 <믿음의 획득 과정(방식)에 대한 인과적 설명>에 관한 문제와 <믿음에 대한 정당화>에 관한 문제를 구분하지 못했다. 이는 <생리학적인 문제>와 <형이상학적 문제>를 구분하지 못한 것과 같다. 로티가 인용하는 셀라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크는 인식적 사실을 비인식적 사실로 분석하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한 셈이다.

이어 로티는 로크가 두 가지 분리된 문제를 하나로 혼동한 이유에 대해 살핀다. 로티가 보기에 로크의 혼동은 <지식(앎)을 정당화된 참인 믿음>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는 지식을 <개인과 명제 사이의 관계>가 아닌 <개인과 대상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에게 지식은 <~라는 지식(knowledge that)>이 아니라 <~의 지식(knowledge of)>였다. 이는 그가 <지성의 능력을 대상에 의해서 인상이 만들어지는 밀랍판과 같은 어떤 것>으로 확신하고, 또 <‘인상을 가진다’는 것이 지식에 선행하는 인과적 요건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티는 로크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비물질적인 판이 물질적인 세계에 의해 눌리는 방식을 설명하는 유사-기계적인 설명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정당하게 믿을 수 있는가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로티는 리드, 셀라스 등의 주장을 빌려 로크의 생각에 반대한다.

로크의 설명을 따라가면 <지식을 알려진 대상과 정신의 동일성>이라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그에게 인상은 표상이기에 표상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그의 설명은 <인상에 의해 각인 되는 백지의 밀납판을 응시하는 ‘정신의 눈’>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필요에 부합하는 순간 기계적인 방식을 취한 그의 설명에 일종의 <유령>이 도입된다. 그리고 로크의 주장에서는 <각인>보다는 <각인에 대한 관찰>이, <각인이 발생하는 밀납판>보다는 <밀납판을 보는 눈>이 부각되게 된다. 로크는 설명의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둘을 애매하게 두어야 했다. 그에겐 선명한 방식이 없었다.

로티에 따르면 칸트는 로크와 달리 지식을 ‘~에 대한 지식’에서 ‘~라는 지식’으로 이해했고, 앎을 지각에 근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기에 로크를 극복한다. 하지만 칸트의 설명 방법은 여전히 <어떻게 우리가 내적 공간에서 외적 공간에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으로 제시된 것이었기에, 그는 데카르트의 준거틀 속에 머물러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20세기가 물려받은 인식론이라는 학문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에 대해 알아야 한다. 특히, <어떤 대상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말하는 ‘서술’>과 <표상들을 내적 공간 속으로 함께 밀어넣으려는 ‘종합’>을 혼동한 칸트의 생각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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