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 MEGA판 번역 사업 후원 받네요.

기사를 보니, MEGA판 번역이 한국연구재단 사업에서 탈락하면서 자본 조달에 차질이 생겼다고하네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후원은 marxengels.donga.ac.kr 여기서 받는다고하네요.

해당 기사입니다.

MEGA 및 MEW판 관련 정보 기사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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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대로 어떤 책이든 번역하면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의 좋은 사례를 들자면 저는 항상 <조선왕조실록>을 드는데요. 처음 번역할 때는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예상했겠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많은 부수적인 효과들을 누리고 있죠. 전문적인 연구자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참조해야 할 많은 연구자들까지 생각해보면 의미가 없다고 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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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르면 소련과 동독의 국가적 지원 사업으로 추진되어 1975년에 출판이 시작되고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 후 발행처가 암스테르담 소재 Internationale Marx-Engels-Stiftung (IMES)로 넘어간 새 마르크스-엥겔스 전집본, 이른바 MEGA2 출간사업은 총 114권으로 기획되어 있으며 2018년 현재까지 65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중 3부에 해당하는 서신들과 4부에 해당하는 노트들, 발췌들, 난외주들의 4분의 3 정도가 이전에 출간된 적이 없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4부는 총 32권에 달합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모순과 위기의 심화와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향후 몇 십년간 '새로운' 마르크스 연구서들이 쏟아져 나오리라는 것입니다. 2020년에 국역 출간된 다음 두 권이 이 새로운 연구서들의 첫 주자들입니다.

Kevin B. Anderson - Marx at the Margins_On Nationalism, Ethnicity, and Non-Western Societies (2016)

Kohei Saito - Karl Marx’s Ecosocialism: Capital, Nature, and the Unfinished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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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혹시 짧게나마 그 대표적인 오독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워볼 수 있을까요? 너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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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W 의 제3권에 수록된 "독일 이데올로기"의 판본의 문제점을 말하기 전에 이 "독일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간행되었는지를 일단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파란만장한 판본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 "독일 이데올로기"는 상당히 많은 양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데, 마르크스의 생전에는 아주 적은 분량만 출판이 되죠. 즉, 막스 슈타르너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은 원래 전체 분량의 2/3 정도였는데, 1903~4년에야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에 의해 출판이 되고요,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를 비판하는 부분은 1926년 다비트 랴자노프에 의해 MEGA1의 일부로 출판이 됩니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모든 내용은 1932년 베를린에서 MEGA1의 I/5권으로 (하지만 preprint로) 간행됩니다. 원래 MEGA1을 기획한 랴자노프가 체포되고 블라디미르 아도라츠키가 편집자가 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죠.

하지만 같은 1932년 지크프리트 란트슈트와 야콥 마이어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의 일부를 간행하면서 이 "독일 이데올로기"를 엄청나게 축약시켜서 출간해버리죠. 위에서 전체 분량의 2/3을 차지하는 막스 슈티르너에 대한 부분을 빼버리기도 했고요. 최초로 완전한 형태로 출간되는 것은 1933년 러시아어판 마르크스-엥겔스 작품집 제IV권에서였어요. (이 판본을 Сочинения 1이라고 합니다) 소련에서 "독일 이데올로기"는 1933년 5월 마르크스의 115번째 탄생일을 맞아서 50000부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하죠.

독일어로 된 MEW에서 "독일 이데올로기"는 마침내 1958년판의 제3권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이 판본의 수정본이 1965년 모스크바에서 다시 출간되었고요.

두번째로 시도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2)을 간행하는 중에 샘플본이 1972년 출판됩니다. 여기에는 포이에르바흐에 대한 챕터가 추가되고 최신 연구결과에 따라 편집이 이루어졌죠. 그런데 이것을 바탕으로 와타루 히로마츠가 본문 배열을 바꾸어서 1974년 도쿄에서 또다른 판본을 출간해버려요.

"독일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MEGA2의 제I/5권은 1972년 새로 간행될거라는 발표가 있긴 했는데, 2017년 11월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총 1894페이지로 선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아직 완전한 형태가 아니고, 새로운 연구 결과가 다 반영되지 않은 거였어요.

역사비평판은 마르크스가 익명으로 Gesellschaftsspiegel 에 발표한 기사와 요제프 바이데마이어가 마르크스와 함께 작성한 기사, 이렇게 두 편의 원고를 포함시켰습니다. 이로서 수십년에 걸친 편집이 끝나게 되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MEGA1의 I/5권(아도라츠키 판) 및 이를 토대로 하여 편집된 MEW 3권에 수록된 "독일이데올로기"에 텍스트 왜곡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르크스 연구자들은 이 판본을 주로 이용하여 왔던 것이고요.

(이상 독일어판 위키피디아와 독일 이데올로기에 대한 몇가지 논문들을 참고로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여기에 대해서 또 아주 자세한 스토리가 있는데요, 아래를 참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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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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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독일 이데올로기’를 완성된 글이나 책으로 이해하고 인용했었는데, 만일 원고의 원래 형태가 MEW 편집본과 전혀 다르다면 새로운 편집본을 봐야 할 이유가 생기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철학에서 엄밀하고 비판적인 편집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헤겔과 니체의 경우가 이를 잘 말해주죠. MEGA의 국역판이 계속 나온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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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12517442 선생님 설명으로 이해의 문질빈빈에 이르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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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엔치클로패디 자연철학과 정신철학을 번역하셨던 박병기 선생님 주도로 초벌 완료했다는 걸 2020년 하반기에 들었습니다. 그 즈음 이병창 선생님의 완역본이 나왔기에 기억이 선명합니다. 지금 편집과정 중일테니 늦어도 1년 내에 MEGA판 독일이데올로기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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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박병기 선생님이 직접 쓴 <독일 이데올로기>의 MEGA 2017판을 번역할 필요성에 대한 언급 덧붙여봅니다.


나는 철학사에 3대 신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했다는 신화, 토마스 홉즈가 성악설을 주장했다는 신화, 헤겔이 자신의 변증법을 정반합으로 설명했다는 신화가 그것입니다. 이제 하나를 덧붙여야겠습니다. 다름 아니라 󰡔독일 이데올로기󰡕의 신화입니다. 이 신화는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겹은 “이 저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으로 완전히 성숙했을 때 작성한 가장 선구적인 저서”라는 형식 규정입니다. 또 한 겹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역사적 유물론을 완성하는 일이다.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적 명제는 이 저서의 1장에서 처음으로 상세하게 서술”되었다는 내용 규정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일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천재적인 싹을 내린” 새로운 세계관을 엥겔스와 협력하여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저술한 통일적인 체제를 갖춘 한 권의 저작이 아닙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당시 소장헤겔학파 철학자들이나 참된 사회주의자들과 논쟁하고 공격할 무기로 이용하기 위해 발간을 추진했던 계간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독일 이데올로기󰡕라고 알고 있는 것은 거기에 실을 기고문 초고 및 인쇄물의 복합체(Komplex=2017판 편집자들의 표현)를 말합니다. 물론 이 복합체 대부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각자 혹은 둘이 협력해서 작성한 초고입니다만,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거나 한 때 같이 했던 동료들의 기고문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재정 사정으로 계간지 발간 기획은 좌절합니다.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출간을 포기하지 않고 두 권으로 된 간행물로 출판하려고 시도도 하고 아예 다른 사람들의 기고문을 제외하고 자신들의 글만 모아 한 권으로 책으로 출간하려고 시도도 하지요. 그러다가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이 용어에 대한 시비도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연구에 몰입하고 엥겔스는 파리로 떠나게 되어 󰡔독일 이데올로기󰡕 초고들은 “쥐새끼들이 쏠아 먹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상세한 것은 둘째 주에 이 초고들이 생성되는 과정을 살펴볼 계획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Ⅰ. 포이어바흐」뿐 아니라 󰡔독일 이데올로기󰡕를 통틀어 “역사적 유물론”이든 “변증법적 유물론”이든 자신들의 세계관, 혹은 새로운 철학 이론에 대한 논의는 단 한 구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점에 이르러 적어도 마르크스는 유물론이니 관념론이니 하는 철학적 세계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세계와 인간 삶의 혁명적 변혁에만 관심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엥겔스 역시 이 시점에는 마르크스에 동의합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의 실천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정치경제학’이라는 과학적 무기이지 새로운 철학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특히 포이어바흐와 논쟁하면서 자신들의 역사이해를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구별해서 무엇이든 새로운 유물론의 기초 위에 세우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철학을 떠나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내가 이 강좌의 제목을 「철학을 실천하러 철학을 떠나다」로 잡은 것은 바로 이 까닭에서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독일 이데올로기󰡕가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새로운 철학 이론을 완성했다니요. 실로 엄청난 신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셋째 주 󰡔독일 이데올로기󰡕 편집의 정치사에서 살펴보겠습니다만, 여기서는 그 일단을 맛보는 데 그치기로 하겠습니다.

앞에서 내가 인용구로 소개한 표현들은 다 MEW(마르크스-엥겔스-저작집) 3권(=󰡔독일 이데올로기󰡕) 편집자 서문에서 따온 것들입니다. MEW는 마르크스주의 관련 문헌 중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계급성이 강한(?) 교육용 판입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전설의 판이지요. MEW 3권은 1958년 베를린 디츠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그 책 표지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서지사항이 적시되어있습니다.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 독일어판[독일 통일사회당 부설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 편집]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설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가 주관한 두 번째 러시아판[GAI, 1932년 아도라츠키 편집]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텍스트는 수고에 따라 즉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존하고 있을 때 이루어진 출판 기획을 재생하였다.”(이병창 옮김. 󰡔독일 이데올로기 1권󰡕(먼빛으로, 2019), 2쪽)

여기서 우리는 1958년 MEW판이 1932년의 아도라츠키판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아도라츠키판은 두 번째 러시아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 러시아판이 MEGA①(마르크스-엥겔스-전집①)입니다. 이건 교육 판이 아니라 역사비평 판입니다. 대중서가 아니라 연구용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에 흥미로운 정치사가 숨어 있습니다. 1932년은 우연히도 스탈린의 폭정이 절정에 올라 그의 두 번째 아내 알릴루예바가 자살한 해입니다. 아도라츠키는 자타가 공인하는 스탈린주의자입니다. 그는 원래 레닌에게 요청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수집하여 전집을 편집하고 있던 리야자노프를 멘셰비키로 몰아 시베리아로 유형 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독일 이데올로기󰡕 편집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서지사항 맨 마지막에 보면 1958년 독일어본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전에 기획한 대로 텍스트를 재생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언명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1958년 MEW판을 번역한 한국어본과 2017년판을 번역한 한국어본 초고를 비교하며 텍스트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독일 이데올로기󰡕가 스탈린 시대의 위작인지 아닌지도 대답할 수 있겠지요. 암튼 2017년 판이 나온 지 2년 후에야 1958년 독일어본을 번역한 한국어본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 이 강의안에서 인용하실 때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는 박병기. 「시민자유대학 2020 여름학기 “서양고전읽기: 철학을 실천하러 철학을 떠나다 제1강 󰡔독일 이데올로기󰡕의 신화” 강의안」으로 표기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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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올려주신 기사를 보며 또 든 생각이지만, 사이토 코헤이가 MEGA 편집위원으로 있다는 걸 듣고, 일본 사회가 (혹은 일본 학계는) 맑시즘에 대해 가진 사회 분위기와 수용력이 한국과는 사뭇 다른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일본에서 프로젝트를 지원했을 때는, 이 전집의 학술적 가치만을 중점적으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여타 이유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예컨대, 일본 현실 정치 풍토에서 맑시즘이 우리나라 에서처럼 무턱되고 터부시되는 단어는 아닌건지.. 잘 몰라서 그런 부분도 궁금하네요.
여튼, 한국어 전집 번역 사업이 잘 진행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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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바를 짧게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a) 일본은 일본 공산당이 정식 정당으로 있거 소수지만 의회 의석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가 1922년도부터 시작해서 오래되기도 했죠.
나아가, 55년도경 일본 공산당은 무장투쟁 노선을 버리고 의회 정치 노선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전까지는 천황제 일본 정부와 미군정에 반대하는 극렬한 시위를 주도했었죠.)

하지만 시기로 볼 수 있듯, 격동의 60년대를 일본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장투쟁 노선을 포기한 공산당에 반발한 청년층들이 극좌 무장 투쟁을 이끌었죠. 다만 언제나 그렇듯 결과는 안 좋았습니다.
요도호 사건이나 아사미 산장 사건도 있고 일본 적군 문제도 있고...
이 이후 극렬좌파 운동에 대한 일본 대중의 반응은 환멸일겁니다. (하루키가 이 환멸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죠. 바로 5년 앞 정도에 있는 오시마 나기사 같은 영화와 비교해서 보면 분위기가 180도로 바뀐 것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는 이제 믿는 사람은 믿지만 대중에게는 뭐 그냥저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로 보일 것이고 그러다보니 보다 중립적으로 연구되고 지원될 수 있어 보입니다.

(b)

반면 한국은 북한이 있고, 80년대 NL/PD의 극좌 노선에도 주체사상이 있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괄호치고) 몇년 전에 있던 이석기와 관련된 사건도 있었죠.
그러다보니 대중에게나 정부에게나 "중립적"으로 연구되기에는 아직 이른...그런 사상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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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서구에서 발원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 비 주류 정치이념들도 일본이 우리보다 더 빨리 수용했습니다. 아마 40년대 이전에 마르크스주의 주요 저작들이 번역되었을 것입니다. 군국주의라는 불리한 조건이 있었지만 곧 자유자본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상황에서 그 수용이 계속 될 수 있었고 단순한 수용을 넘어 일본판 마르크스주의 및 마르크스학이 자리잡았죠. 그래서 한국과는 달리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거론되는 굵직한 인물들이 몇명 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그 인물 중 비교적 최근 세대일 뿐이고 사이토 고헤이는 가장 최근 세대에 속합니다. 미국의 위성 국가나 다름 없고 소련과의 관계 등 남한 이상으로 멸공주의가 기승부릴 수 있는 환경일것 같은데 그리 될 수 있었던 것은 극심하게 억압적이었던 군국주의의 기억이 낸, 관용을 강제하는 효과 덕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과 80년대 이후의 사회주의 지향 운동권은 그런, 일본에서 먼저 자리잡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죠. 현재 일본에서는, 역시 한국에서와는 달리, 그리고 서구 나라들에서보다도 더, 다시 마르크스주의 붐이 불고 있는데, 훌륭한 마르크스학자들을 배출할 수 있는 완전 자립화된 토양에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자본주의의 파괴적 효과에 대한, 일반 대중 일부에게도 생긴 문제의식이 씨앗으로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지속 불가능 자본>으로 국역되었고 서구 활동가들 및 마르스크주의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논쟁을 야기한 사이토 고헤이의 <인류세의 자본>은 2023년 8월 현재 일본에서만 50만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물론 그 사이 사이토 고헤이의 후속 저서들을 포함해 다른 마르크스(주의) 관련 책들도 많이 나오고 많이 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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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설명 정말 잘 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릴 때 하루키 책을 많이 읽었을 때, 책 날개 설명을 보면 하루키를 전공투 세대 라고 하던데, 이런 맥락이 있었군요. 그의 소설의 경향과 분위기를 이런 저자가 살아온 시대적 맥락과 연계해서 읽을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이런 저런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며, 맑시즘이 대중적으로 그런 저런 이데올로기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말은 일본만의 일은 아닌가봐요. 독일도 대학 내 학생들은 여전히 이 이론을 많이 공부하고, 관련 행사도 많고, 또 독일과 유럽이 현재 당면한 현실 문제와 이 이론을 연계해 학생들을 조직화해서 실천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있고, 또 독일 내 사민주의 전통도 살아있으니, 그래서 독일은 맑시즘에 대해 상당히 친화적이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제 친구는 LINKE Partei 지지자인데, 그 친구 말에 의하자면 독일 대중적 분위기는 공산주의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는 게 있다더라구요, 특히 동독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요. 몇 년 전에 학교에서 에른스트 블로흐 세미나가 한 번 열려서, 관련 논문집을 사려고 선생님이 알려준 지정 서점에 갔더니, 서점 주인이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요즘에도 에른스트 블로흐를 대학 내에서 읽는다는 사실이 참 소중하다는 어투였어요.

사실 저는 이것저것 관심은 많은데, 깊이 있게 파지를 못해서 사상사 쪽으로는 너무 무지해요. 만달라 님의 이런 역사적 맥락 설명 너무 좋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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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래도 역사적 원죄나 역사적 적이었던 이데올로기가 중립적으로 연구되기는 힘들죠. 유럽 전체가 극우화 되더라도, 아직 나치즘이라는 원죄가 적극적으로 살아있는 독일에서는 대중의 저항감이 강한 것처럼요. (반대로 꽤 파시즘적이었던 헝가리는 그런 대대적인 청산 과정이 없었기에, 지금은 가장 극우적인 나라가 되었고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없고,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나라라면 제 기억 상 니카라과와 인도 케릴라주 정도가 있을 것 같네요.
니카라과는 결국 미국의 온갖 개입을 이겨내고 공산 정권을 수립하고, 그 정권에 대한 평가가 꽤 좋은 편이죠. 인도 케릴라주도 공산주의를 도입해서, 인도 내에서 가장 문맹률도 낮고 여러모로 인간 발달 지수가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죠.

(2)

그와 별개로, 결국 맑시즘에 대한 연구는 전망이 좋다고 생각해요.
특히 미국 학계 내에서요.

미국 지성계를 점령하고 있는 주제가 크게 환경, 소수자(인종적, 퀴어적), 극우화 현상, 마약 중독 등등인데, 결국 소수자/극우화/마약 중독 등등의 밑바닥에는 빈곤과 양극화라는 공통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다들 자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맑시스트적 접근은 아니지만, 매튜 데스몬드 같은 학자들이 빈곤 연구를 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곧 옥스퍼드인가, 케임브리지인가에서 분석철학자가 쓴 맑시즘에 대한 해설서도 나오던데 여러모로 맑스 르네상스가 다시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찾아보니 옥스퍼드 출판사네요.) Socialism - Paperback - Scott R. Sehon - Oxford University Press (oup.com)

저자인 Scott Sehon은 처음 보는 분이긴한데, 경력을 보면 자유의지, 선택 이론 이런 (반쯤은) 전형적인 분석 철학자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흥미로워요. 분석 철학적으로 해체된 맑시즘이라...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조합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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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영어권에서 70년대 말부터 90년대까지 분석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이 한 차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대다수 구성원들이 더는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마르크스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자들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Analytical Marxism

G. A. Cohen, Jon Elster, John Roemer, Adam Przeworski, Erik Olin Wright 로 대표되는데, G. A. Cohen 의 Karl Marx's Theory of History: A Defence (1978) - 분석 마르크스주의의 문을 연 저작입니다 - 과 Jon Elster 의 Making Sense of Marx (1985) 는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마르크스 관련 저서 1, 2위 입니다.

John Roemer, Adam Przeworski, 정치철학으로 선회한 G. A. Cohen 의 저서는 국역된 것이 없는 것 같고 Jon Elster 의 더는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지 않은 시점 이후의, 상당한 호평을 받은 사회과학 철학 저서 하나가 국역되어 있고 Erik Olin Wright 의 저서는 세권 이상 국역되어 있습니다.

G. A. Cohen 과 Erik Olin Wright 는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

창비에서 1993년에 출간된 <계급으로부터의 후퇴>에는 분석 마르크스주의를 둘러싼 한 차례의 논쟁이 담겨 있습니다. 원서는 1986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미 사라진?, 하나의 학파로서의 분석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에 대한 분석적 접근 자체는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작업을 계속하는 새 세대 학자들이 있습니다. Scott R. Sehon 도 그런 인물일 수 있겠죠.

니체 전문가이자 법철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시카고 대학교 교수라는 신기한 조합의 Brian Leiter 가 제자와 같이 쓴 마르크스에 대한 책이 곧 루틀리지에서 출간됩니다. 분석 마르크스주의 학파에 상당히 비판적이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분석 마르크스주의 학파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전형적인 또는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과도 거리를 두고 있을 것같습니다. 그 점에서, 또는 넓은 의미에서 마르크스에 대해 분석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Marx (Routledge Philosophers) Paperback – 1 Aug. 2024
English edition by Brian Leiter (Autor), Jaime Edwards (Autor)
https://www.amazon.de/-/en/Brian-Leiter/dp/113893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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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헨의 책은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바가 있습니다.

(2) 라이터가 맑스에 대해 루틀리지에서 책을 쓰는게 의외이긴 합니다. 실제로 그가 맑스(주의)에 대해 몇 논문을 쓴것은 사실이나, 괄목할만한 논문이라고 인정되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가 니체 연구에서 보여준 성과와 비교하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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