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iavelli, Niccolò, Il Principe (군주론) 4장 요약+견해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대에, 공국의 통치 형태는 양분되었다:

  1. 한 군주와, 그의 호의와 약속을 통해 왕국 통치를 돕는 minister인 다른 servants에 의해1
  2. 한 군주와, 혈통의 오래됨(antiquity)으로 계급을 유지하는 barons2에 의해3

왜 Turk 같은 곳을 획득하기 어려운가?

  1. 그 왕국의 군주들이 외세의 도움을 구할 가능성이 없고 4;
  2. 그의 주변의 반란을 통해 과업(impresa)이 가능해지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 5이다.
  • 일단 [기존 국가나 왕가가] 군대를 결집할 수 없는 식으로 정복했다면, [기존] 군주의 혈통만 주의하면 된다. 이것이 제거되면 두려워할 대상은 없게 된다. 승자가 승리하기도 전에 희망을 걸 수 없었듯이, 승리한 뒤에 그들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그럴 필요가 없다).

=> 당신6이 다리우스 [3세]의 정부의 본성을 숙려하면, Turk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것이다.

France처럼 통치되는 곳은 어떠한가?

  1. 불만인 사람7과 혁신을 꿈꾸는 자는 늘 발견된다. 그들은 당신이 승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2. 승리의 유지는 당신을 도운 자와 당신으로 고통받은 자 모두로부터 무한한 난점을 남긴다.

로마인들에 저항하여 빈번했던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에서의 반란들:

  • 해당 국가에 있던 수많은 공국이 원인이다.
  • 공국에 대한 기억이 유지되는 동안, 지배권을 확신할 수 없었다.
  • 공국에 대한 기억이 제거된 뒤에는, 안정적인 소유자[지배자]일 수 있었다.
  • 후일 로마인들이 서로 싸울 때도, 왕가가 제거되어 로마인들에게만 acknowledge했다.

결론: 알렉산더 대왕이 국가를 (쉽게) 유지한 것에 놀랄 만한 것은 없다8. 다른 [힘들인] 군주와의 차이는, 승자의 virtù의 양9이 아니라 정복 지역의 차이에서 온다.


1 e. g. Turk

2 이 barons는 그들 자신의 stato를, 그리고 그들을 군주(signore)로 여기고 자연스러운 친밀감을 유지하는 신민을 갖는다.

3 1에서 군주의 권위가 더 크다. 그 지방에서 군주 외에는 (그보다 또는 그만큼) 우월하게 인식되는 사람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e. g. (king of) France

4 Mansfield (trans.) p.18. "... that one cannot be called in by the princes in that kingdom"; Skinner & Price (trans.) p. 16. "... there is no possibility that princes of the kingdom will seek aid from a foreigner". 다시 말해 외국인일 것이고 외부인인 정복자는, 그 왕국의 군주들이 별로 외세의 도움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로 인해 그 왕국으로 불러들여질 일이 없다. Skinner & Price p. 16. 각주 a에 의하면, '군주들'은 군주의 servants를 의미한다.

5 마키아벨리가 단수와 복수를 혼용하기는 하지만(앞문장에서 단수로 칭한 것을 뒷문장에서는 복수로 칭하는 식으로, 1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장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그 왕국의 군주들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반란을 취해(take advantage) 정복의 과업이 가능하기를(성공하기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6 이전에도 나온, formal한 형태 내지 복수형.

7 Einaudi 판본 p. 14. "malicontenti"

8 뒷문장과 함께 고려할 때, 알렉산더의 장기 통치가 virtù의 양보다 영토에 더 많은 빚을 졌는지 물을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이것이 virtù의 무관함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렉산더에게 virtù가 없었다면, 지역의 정복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영토에 더 많은 빚을 졌다" 이상의 commitment는 없다. 나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어떤 군주(정확히는 signore일 것인데)가 통치를 시작하는 데까지는 virtù의 양이 좌우한다; 그러나 통치를 시작하자마자, virtù의 양에 "앞서" 영토의 차이가 장기 정복(통치)에 영향을 준다. 나는 영토의 차이가 virtù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fortuna에게만 돌려져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영토의 상태(지리적 조건)는 우연-결정적 fortuna에 가깝다: 정복자가 완전히 지리를 꿰고 있을 수는 없는데, 갑작스러운 국경 변경이나 판의 이동 따위가 아니면 상태는 불변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완전히 무지하면 그는 정복에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영토가 어떻게 다스려졌는지, 즉 영토의 사회/정치적 상태(또한, 신민이라는 조건)는 virtù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즉 우연-미결적 fortuna이다. 정복자는 해당 국가의 수장을 많이 만나봤을 것이다. 정복자는 그 나라의 수장이 어떻게 선출되는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역사서 등으로) 알 것이다. 정복자는 신민들이 군주에게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봤을 것이다: 예를 들면, 혁명을 했는가? 폭정에도 저항하지 않았는가? 기타 등등. 그러므로 자유를 향유하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외치는 영토에, 군림이나 영역 확장을 위해 정복을 시도한다면, 장기 집권은커녕 좋게 끝날 리 만무하다.

9 "Virtù의 양"이라는 말은 virtù에 정도성을 허용하는 것처럼 이해되었다. 처음에는 virtù에 정도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경쟁적이고, 호승심과 과단성이 있다는 점; 반대로 어떤 종류의 virtù는 가지고, 다른 종류는 갖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토대로 정도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첫째 경우의 예시는 체사레 보르자일 것이다. 그는 예를 들면 우유부단했던 역사적인 다른 군주들이나, 심지어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에게 귀속하는 수준에 비해 훨씬 과격했다. 둘째 경우의 예시로는 두 가지가 떠오르는데, 하나는 (virtù를 넓게 사용할 때) 아가토클레스이고, 다른 하나는 (마키아벨리가 동의하지 못할 것 같지만)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아가토클레스는 마키아벨리의 가장 좁은 의미로서의 virtù 중에서도 모종의 과격함은 가졌지만 도덕이라는 일상적 의미의 virtù는 갖지 못했다. 또, 마키아벨리의 용법으로서의 virtù 중에서도 "필요에 의해 악을 저지르는 과단성"을 갖지는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에게는 악을 저지를 필요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8장에서 다시 설명한다. 카이사르는 (루비콘 도하는 물론 각종 전쟁에서) 과격했지만, 마찬가지로 "필요에 의해 악행하는 과단성"을 결여했다. 그는 달력을 포함해 여러 가지를 개혁했는데 이것이 신민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동등한 수준에서 그는 독재로 신민의 증오를 자초하고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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