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반테의 인용은, 헤겔의 체계가 더이상 수정이 필요하지 않은 불변적 상태(역사의 종말)에 들어섰다는 뜻이 아니라, 헤겔의 "체계"가 그 외부에 어떤 다른 경쟁하는 체계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헤겔의 체계를 수정하고 다시 해석하고 지지고 볶고 하는 과정이 체계 외부의 다른 독트린이 아니라 헤겔의 체계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이런 대담한 주장은 헤겔이 초기 시절부터 고대 회의주의 (특히 퓌론주의)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체계를 회의주의로부터 immune하게 만들기 위해 채택한 전략입니다. 흔히 회의주의 자체를 끌어안아버렸다라고 하죠. 간략히 말씀드리면, 퓌론주의자는 어떤 명제(P)를 세우든 그것의 반-명제(-P)가 가능하므로 판단중지를 해야한다는 급진적 회의주의를 펼쳤는데, 반대로 말하면 헤겔의 체계(S)가 외부(-S)를 가지지 않으면 이런 퓌론주의 및 여타 회의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자세히 보시면 이것이 변증법의 구조와도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적극 추천할만한 매우 탁월한 연구서가 있습니다: Forster, M. N. (1989). Hegel and skepticism . Harvard University Press.
제 감각에 따르면, 아마도 헤겔의 "체계"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크반테의 주장에 동의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에 크반테의 해당 글을 읽다가 솔직히 재미가 없어서 읽다가 던졌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크반테야말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혹은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장황하게 다루는 것처럼 보였어요.
- 헤겔의 체계를 받아들이냐 아니면 전면적으로 거부하냐의 문제에 놓인다는 지적에는 공감합니다. 헤겔은 자신의 체계가 외부를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all or nothing 게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죠.
- 그런데 헤겔의 체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헤겔이 써재낀 것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라고 저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크반테의 결정적인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크반테는 마치 헤겔의 체계가 스피노자의 실체처럼 절대적인 것에 대한 설명들의 "정태적 총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죠. 이 경우에는, 체계를 수정한다는 것은 "정채적 총체"를 깨뜨리는 것이 되고 따라서 헤겔의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크반테의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철학사의 종언" 해석에 가까워집니다.) 그런데 애초에 헤겔의 체계는 운동하는 "역학적 총체"이기 때문에 헤겔의 체계를 수정하고 손보는 것이 전혀 체계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의 자기이해라는 이념에 부합하는 과정이죠.
- 따라서 (전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헤겔의 체계를 받아들이는 소위 헤겔주의자(치유적 헤겔리안 포함)라면 "헤겔의 철학적 논증들을 검토하고 우리의 입장이 정말로 헤겔의 입장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 평가"하기 위해 굳이 헤겔의 체계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콰인이 즐겨 인용하듯이, 물에 뜬 채로 배 위에서 배를 수리할 수 있고, 따라서 체계가 진정 절대적인 "역학적 총체"라는 것을 인식했다면 체계 안에서 체계를 평가하고 수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헤겔 체계의 "출구"를 찾는 크반테가 별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