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주의란 무엇인가?: John McDowell, "Wittgensteinian "Quietism""

맥도웰이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쓴 논문을 꽤 많이 찾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Wittgensteinian "Quietism""(2009)이라는 논문이 있는 줄은 오늘에서야 알았네요. Mind and World 이후에 나온 맥도웰의 글들은 Having the World in ViewThe Engaged Intellect라는 논문집을 중심으로만 살폈다 보니, 그 두 책에 수록되지 않은 논문들 중에서는 제가 놓치고 있었던 논문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브랜덤은 본인 CV를 성실하게 업데이트하는데, 맥도웰은 CV가 2000년대 초반 이후로 업데이트 되지 않았거든요. '맥도웰이 나이가 들면서 적극적인 연구에서는 손을 좀 뗐나?'하고 그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논문의 내용 자체는 맥도웰이 그동안 다른 글들에서 지적했던 핵심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네요. "Wittgenstein on Following a Rule"(1984)과 "How Not to Read Philosophical Investigations"(2002)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그 두 편의 논문 속에 있는 내용들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금방 파악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특별히, "How Not to Read Philosophical Investigations"의 논의 구도와 예시를 그대로 가져와서, (a) '이정표'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떠한 활동인지, (d) '이정표를 보는 것'과 '이정표가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알려주고 있는지 아는 것'을 분리시킨 다음에 '해석(interpretation)'이라는 활동으로 그 둘 사이에 다시 다리를 놓고자 하는 시도가 왜 잘못되었는지, (c) 비트겐슈타인의 '침묵주의(quietism)'가 다른 실질적 철학을 통해 보충되어야 하는 것처럼 평가하는 입장들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순차적으로 이야기하네요.

그런데 논문의 내용 자체는 그동안 맥도웰이 했던 이야기들에서 달라진 게 없지만, 이 논문이 단 8쪽밖에 되지 않는 아주 간결한 글이라서 오히려 '맥도웰의 비트겐슈타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아주 요약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점이 추천할 만하네요. 사실, 맥도웰은 영어 문장을 어렵게 쓰는 편일 뿐만 아니라 글의 전개 방식도 아주 친절하다고 하기는 어려워서,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철학자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고 싶어하는 요지가 한 눈에 잘 안 들어올 때도 많고, '주장'이 무엇인지가 이해될 때에도 그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가 무엇인지는 잘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죠. 하지만 이 논문은 일단 분량부터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의 구조나 글에서 사용된 문장도 아주 쉬운 편이네요. 처음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공부하려는 분들, 혹은 맥도웰의 철학을 공부하려는 분들에게 굉장히 유익할 것 같습니다.

https://read.dukeupress.edu/common-knowledge/article-abstract/15/3/365/6634/Wittgensteinian-QUIETISM?redirectedFrom=full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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