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리즈물을 연재할 때 편의상 낮춤말을 쓰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불교학 전공 수업 중에 <초기불교의 사상>이라는 수업이 있다. 어학을(산스크리트어, 한문) 제외하면 제일 빡센 전공. 이 수업에서 내가 배운 것을 해석적으로 정리해보겠다.
수업에서 이름 그대로 초기불교의 사상을 사상사적, 지성사적으로 공부하는데, 초기불교사상 연구의 의의는 불교 연구에서 "그래서 해탈이 원래 뭔데?"를 밝히는 발생학적 관심사와 "해탈이 뭔지도 모르는데 대승 불교의 논리로 어떻게 도약하겠는가?"라는 정당한 사상사적 이행을 위한 불교철학적(혹은 대승불교적) 명분의 획득에 있다. 이때 명분이란 말을 엄밀하게 새겨두자면, '진정한 불교는 대승불교이다.'라는 잠정적 정의에 대해, (학술적으로는 아직 자의적이게) 선취한 내포적 개념이 진술 집합의 후보(적절한 외연)과 '화해'하여 정당한 정의임을 학술적으로 승인받는 것이 곧 (학술적) 명분이다. (이는 결국 대승불교가 대승불교로서 확고한 논증 지위를 담지하려면 "소승 불교"의 해탈 개념을 재구성한 것을 내포에 반영하여 대승의 해탈 개념을 만족스럽게 규정해야 함을 가리킨다.)
불교는 붓다를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거나 붓다 숭배만으로 온전하게 정의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다('불교는 붓다를 믿는 종교이다'라는 것은 기독교식 종교 정의를 무차별적으로 불교에 이식하는 일종의 범주 착오의 오류다). 앞서 언급한 초기불교의 발생학적 관심사란 해탈의 개념을 정확하게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탈을 하지 않고는 붓다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주류 불교의 발생학적 문제). 심지어 해탈을 잘못(‘소승’처럼) 이해하면 중생을 구제할 수도 없다. 즉, 보살의 이념이 실현되지 못한다(대승불교의 핵심 문제). 그렇다면 어떻게 해탈을 하는가? 통념에 따르면 붓다는 4정려를 거쳐 4제를 통찰함으로써 해탈에 이르렀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결함 있는 주장이다. 이 결함은 크게 불교 지성사에 대한 역사적, 실증적 몰이해의 층위와 해탈의 원형적 의미에 대한 연구 미비의 층위로 이루어진다. 특히 후자의 문제에 천착하여 24년도 실제 논문 발표를 비롯하여 본 수업의 강의자이신 필자의 교수님이, “심리학적 차원의 해탈과 그 의의”에 포커싱하여 강의 커리큘럼을 구성하였다.
첫번째 결함 - 불교 지성사에 대한 역사적, 실증적 몰이해란 무엇에 관한 것인가?
: 결론부터 말하자면 "붓다는 4정려를 거쳐 4제를 통찰함으로써 해탈에 이르렀다"는 진술은 문헌학적 검토를 거치고 나면 결정될 수 없는 진술임이 드러난다. 통설에서 붓다의 해탈 경험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뉘어 각각 주장된다: 1) 붓다는 4정려를 거쳐, 제4정려에서 4제를 통찰함으로써 해탈했다는 주장 유형. 2) 붓다는 4정려와 4무색정을 거쳐 멸진정을 얻음으로써 해탈했다는 주장 유형. 3) 붓다가 5온을 무상-고-무아로 관찰함으로써 해탈했다는 주장 유형.
먼저 두 번째 유형부터 살펴보자. 단적으로 이는 후대에 '가필'된 것임이 이미 드러났다. 붓다가 수행한 방법은 학술적 검증을 거치고 나면 다음처럼 열거된다: 37보리분법(참고로 이를 후대 편집 산물로 보는 주장도 있다)-4념처-4정근-4신족-5근-5력-7각지-8정도. 강의에서 이것은 "가장 오래된 수행 목록"에 대한 학술적 합의(교집합)로 말해진다. 이렇듯 가장 오래된 수행 목록의 정당한 가능 범위에서 4무색정이라는 수행 방법은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학계가 "정당한 가능 범위"를 좁힌 기준을 대강 소개하겠다: 먼저, 붓다가 출가 후 두 바라문에게 4무색정의 마지막 두 선정을 배웠다는 것은 설화로 전해질 뿐, 역사적 사실임이 의심스럽다. 나아가 두 선정의 방식은 공인된 기록에 따르면 붓다에게 (불교적, 즉 붓다의 열반 수행론적 관점에서) 외도의 것이라고 배척받는다. 그래서 해탈 경험의 두 번째 주장 유형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음으로 첫 번째 유형을 살펴보자. 사실 이는 매력적인 주장이다. 왜냐하면 첫째로는 불교사상사에 대한 교과서적 이해에 부합하며, 둘째로는 실제로도 우리가 '저렇게 수행하면 정말로 해탈할 수 있을' 것 같은 수행론적 직관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형에는 '비개념적 심리 상태에서 어떻게 개념적 통찰이 가능한가?'라는 언어철학과 심리철학의 교량에 맞닿아 있는 심각한 개연성 문제점이 있다. 이 다음은 (허리가 많이 아프므로) 빠른 시일 내에 ②편에서 이어나가겠다. (죄송합니다ㅠㅠ)
(슬슬 허리가 아파서, 나중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To be continued toward 2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