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알게 된 사실인데, 철학자 알빈 플란팅가와 신학자 코넬리우스 플란팅가 Jr.가 형제였군요. 사실, 한국에는 알빈 플란팅가의 저작들보다도 코넬리우스 플란팅가의 저작들이 더 많이 번역되어 있는데, 그동안 그 두 사람이 단순히 성만 같을 뿐 아무 상관이 없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백석신학대학원 류호준 은퇴교수님의 페이스북 글(Redirecting...)을 여기도 가져와 봅니다.
“플랜팅가 형님과 동생의 만사형통 이야기”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1982년 무렵 미국 캘빈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이다. 목회학 석사(M.Div.) 2학년 조직신학 시간이었고, 담당 교수는 코넬리우스 플랜팅가(Cornelius “Neal” Plantinga Jr. 1946년생)였다. 젊고 명석하며, 언어 구사력이 탁월해 학생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던 분이었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날 무렵, 교수님이 “다음 시간에는 제가 출타해야 해서 다른 Plantinga가 와서 강의할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플랜팅가라고?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일주일 후, 같은 시간. 교실 문이 열리고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출장이 취소되셨나?’ 하고 생각했다. 늘 맨 앞자리에서 강의를 듣던 나는 교수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너무 닮았지만 분명 내가 아는 분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큰형님, 앨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 1932년생)였다. 당시 캘빈 대학교 철학과 교수였던 형님을 신학교로 모신 것이었다. (캘빈 신학교와 캘빈 대학교는 같은 캠퍼스 안에 있다.)
그때에도 이미 앨빈 플랜팅가는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1978년 미국기독교철학자회(The Society of Christian Philosophers)를 창설해 기독교 철학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로, 그는 “미국 최고의 정통 개신교 철학자,”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하나님의 철학자”라는 찬사를 듣고 있었다.
형님 플랜팅가의 강의를 눈앞에서 듣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차분하고 명료하게, ‘하나님’을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풀어갔다. 나는 넋을 잃고 그의 말과 표정을 따라갔다. 그날의 강의는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같은 캠퍼스라는 이점을 살려 그의 강의를 종종 청강했고, 도서관과 대학서점에서 그가 쓴 책들과 그를 다룬 여러 철학서를 찾아 읽곤 했다.
며칠 전, 앨빈 플랜팅가는 11월 15일부로 93세가 되었다. 그의 철학은 주로 인식론에 초점을 두었는데, 특별히 ‘개혁 신학적 인식론’(Reformed epistemology)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 초기 대표작인 God and Other Minds(1967)는 당시 우리 수업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그 책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믿는 것과 인식론적으로 유사하다—논증으로 입증할 수는 없어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직접 접근할 수 없다. 귀납이나 연역으로도 완전히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성과 경험을 통해 추론하면, 사람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로봇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생한 생각과 감정, 경험을 지닌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마음’(mind)은 철학적 의미의 오성(悟性), 즉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플랜팅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믿는 것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동일한 인식론적 위치에 있다고 결론한다. … 전자는 분명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후자도 합리적이다.”
그는 일상의 단순한 예를 통해 그 주장을 펼친다. “누군가는 아침을 먹었다고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묻다 보면 실제로 콘플레이크를 먹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아침 식사가 자명하거나 반드시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가 아침을 먹었다고 믿는 데 아무런 무리를 느끼지 않는다.”
앨빈 플랜팅가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학문 세계에서는 설득력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그것이 결코 비합리적인 믿음이 아님을 명쾌하게 보여준 개혁 신학 전통의 걸출한 기독교 철학자이다.
93세의 연세라 곧 이별의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하고 찡해진다. 아, 그 옛날이여…. 형님과 동생, 두 사람을 함께 생각하니, 이 집안은 정말 ‘만사형통’한 집안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은 “모든 일이 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라는 뜻이다! 우리 집안도 그렇고! ㅎㅎㅎ
신학자 로널드 사이더의 아들이 철학자 테드 사이더였다는 것만큼 저에게는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로널드 사이더는 상당히 실천적인 기독교인인데, 아들 테드 사이더도 기독교인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종교철학 관련 논문을 쓴 것이 하나 있기는 하던데, 딱히 본인의 종교적 믿음이 무엇인지를 드러낸 글 같지는 않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