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genstand'와 'Objekt'의 차이

제목이 곧 내용입니다. 'Gegenstand'와 'Objekt' 간의 차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차이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 두 단어와 영어 단어 'object'의 관계도 궁금합니다.

특정 철학자에 대한 질문은 아니고, 일상 독일어에서도 이 두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는지가 궁금해져서 글을 남겨봅니다. 칸트도 뭔가 다르게 썼다고 들은 것 같은데 칸트는 제가 잘 모르고, 마이농의 'Gegenstand'를 'object'로 번역하고 있지만, 또 ('Objektiv'에서의 'Objekt'의 뜻으로) 다른 방식으로 'Objekt'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Routley는 그래서 'item'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게 'Gegenstand'를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구분이, 철학자들이 논의를 편하게 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만든 구분인지, 아니면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텍스트를 읽음에 있어서 (모호할지언정) 이런 구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후자가 아니라면, 왜 많은 경우에서 'Gegenstand'를 ('Objekt'도 'Object'로 번역하는데)'Object'로 번역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뭔가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냐'같은 반응이 돌아올 것 같기도 한데, 독일어 독학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된 차라 물어볼 곳이 마땅히 없습니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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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비슷한 질문을 독일어 교수님께 했었는데, 일상 독일어에서는 같게 쓴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일부 철학자 (칸트, 헤겔) 등에서는 Gegenstand/Objekt에 구분을 둔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잘 모르겠고요. 이런 구분이 있는데도 왜 번역을 둘 다 object로 하는가?란 질문은 영어의 한계인 것 같기도 하고, 이 구분이 비교적 최근에 화두로 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칸트 교수님이 헨리 앨리슨이 이 구분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던 것 같네요. 칸트는 잘 몰라서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 번역했다면 그 구분을 엄밀히 두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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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태생이셨던 제 지도교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었습니다. Gegenstand는 글자 그대로 풀자면 '~에 대하여 (Gegen) 서 있는 것 (stand)' 입니다, 한마디로 그냥 있기만 하면 Gegenstand입니다. 반대로 Objekt는 Subjekt와 반의 관계에 놓여있는 단어이고 그래서 주체(sub)에 대해 그 바깥에 (ob)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대상이라고 말씀해주셨었네요. 한마디로 모든 대상은 당연 Gegenstand이지만, 그것이 주체에 의해 인식된 것으로서의 대상이라는 측면이 강조될 떄에는 Objekt 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저도 마찬가지로 칸트를 전공한 것이 아니라서 이런 해석이 학계에서 얼마나 타당하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제가 지도교수님의 의도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했는지도 의문스럽지만) 우선 맥락 자체는 굉장히 명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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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은 인간이 어떻게 하려는 것과 그 하려함을 통해 내 앞에/우리 앞에 놓여 있게 된 것입니다. 인식하려는 것, 이해하려는 것, 생산하려는 것, 변형시키려는 것, 비판하려는 것, 다루려는 것 등등이 대상입니다. 따라서 철학이 다루려는 테마들도 대상입니다. 철학의 그 테마들을 보통 철학의 대상들이라고 하지 철학의 객체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하려함을 통해 내 앞에/우리 앞에 놓여 있게 된 것을 대상이라고 부르고 놓여있게 하는 것을 대상화라 부릅니다. 놓여 있게 하는 것을 객관화나 객체화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대상화라고 부를 때와 객관화나 객체화라고 부를 때의 뉘앙스가 다를 수 있습니다. 대상화라고 부를 때는 '주체의 대상화'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때 대상은 주체의 '작'품입니다. 객관화나 객체화라고 부를 때는 자립적인 것 됨, 지속적이고 견고한 것이 됨, 진리적이 됨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너는 너무 주관적이야. 좀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객체/객관은 아도르노같은 어떤 철학자들에게는 주체가 전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닌 것, 주체에게 내외적으로 주어진 것, 주체가 주체이기 위해 먼저 이어야 하는 것, 주체에 대해 우선적인 것, 주체가 억누르기만 하면 오히려 주체성을 잃는 것, 주체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것 등입니다. 확실히, 객체를 인식의 대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대상을 인식의 객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객체화를 사물화나 소외라는 부정적 의미(주체의 대상화인 것들이 주체에게 적대적으로 자립화되는 것) 로 쓰는 경우와 "나와 다른 사람이나 모임, 종족 등의 집단이 가진 사람됨을 부정하고, 물건으로 취급하는 의도를 가지고 이를 실천하는 행위"라는 의미로 쓸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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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기에 칸트는 두 단어를 항상 아주 엄밀하게 구분해서 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명시적으로 구별해 쓰는 대목이 있긴 있습니다.

지성은 인식들의 능력이다. 인식들은 주어진 표상들이 한 객관과 일정하게 관계 맺는 데서 성립한다. 그런데 객관(Objekt)이란 주어지는 직관의 잡다가 그 개념 안에 통합되어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표상들의 모든 결합은 표상들의 종합에서 의식의 통일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의식의 통일은 표상들이 한 대상(Gegenstand)과 관계맺음을, 그러니까 표상들의 객관적 타당성을, 따라서 표상들이 인식이 되는 것을 결정하는 바로 그것이며, 그 위에 따라서 지성의 가능성조차도 의거한다.(B137)

의식의 종합적 통일은 모든 인식의 객관적 조건이다. 나는 한 객관을 인식하기 위해서 이 조건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 객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직관도 이 조건 아래에 종속해야 한다.(B138)

이런 서술에서 Gegenstand는 감성과 지성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엄격한 의미의 ‘인식’에 속하지 않는 것들, 즉 ‘공허한 사고’와 ‘맹목적 직관’까지 포함할 수 있는 것인 반면, Objekt는 감성의 표상이 지성적 자기의식(통각)의 통일 아래 결합되어 ‘인식’을 이룬 상태를 가리킬 때 쓰입니다.

Cambridge Kant Lexicon의 표제어도 ‘object (Gegenstand, Objekt)’로 되어 있고, 두 독일어에 대응하는 영단어가 하나 뿐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Gegenstand가 직관이나 개념 같은 표상의 종류와 함께 주로 언급되고, Objekt는 주관과 객관의 관계를 서술할 때 주로 쓰인다는 정도로만 설명하네요.

제 결론은 위 인용처럼 일부 구별해 쓰는 듯한 대목이 있지만, 칸트 저작 전반에 걸쳐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용어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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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렴풋이 갖고 있었던 인상을 굉장히 논리적으로 말씀해주셨네요. 덕분에 지식이 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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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명보다 밑에 Cedar님께서 달아주신 설명을 읽어보시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동의어라고 보셔도 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Gegenstand는 게르만 어족의 고유어이고 Objekt는 라틴어를 그대로 쓴 것입니다. 한국어로 치면 고유어와 한자어의 차이입니다. 둘의 어근 구성 역시 거의 비슷합니다 (~에 대해 서 있다/놓여 있다).

다만 독일어의 뉘앙스를 민감하게 사용하는 일부 철학자들(예컨대 헤겔, 하이데거)은 "~에 대해 서 있다"라는 이분법적 함축을 좀 더 직접적으로 가진 Gegen-stand를 예민하게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헤겔과 하이데거가 그렇다고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가설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칸트가 이 구별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입니다. H. Allison의 경우 "Kant's transcendental Idealism"의 초판에서 칸트가 Gegenstand/Objekt를 구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문헌학적 비판을 받고 재판에서 이 구별을 철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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