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자를 위한 대륙철학 입문 (from Reddit)

레딧에서 우연히 "분석철학자를 위한 대륙철학 입문"이라는 제목의 질문에 대한 답변글을 봤습니다. 본문에서 볼드체 쳐진 것들 위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출처: https://www.reddit.com/r/askphilosophy/comments/a203o9/introduction_to_continental_philosophy_for_an/


답변자 소개말
I am a current PhD Student in the UK in a VERY analytic department. I'm from Italy though, and did my master in Germany. Most of my training is in what it is called "continental" philosophy, which is a misnomer. As Ernst Tugendhat wrote, it should really just be called "classic" or "traditional" philosophy, as opposed to analytic philosophy whose methods and aims tried in its early phases to reach a clean break from the aims and methods of philosophy proper until the 1890s. Even though my training is mostly continental, my area of work lies in both analytic and continental philosophy, and my PhD research is broadly on an analytic bent. All of this just to say that I have a huge interest in the continental/analytic divide, and I can recommend some good books for analytic philosophers who want to approach continental philosophy in a resolute fashion. (7년 전 작성)

칸트

  • Henry Allison, Kant's Transcendental Idealism
  • 피터 스트로슨의 The Bounds of Sense 는 반드시 피할 것: 칸트 철학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초월적 관념론)을 완전히 오독함.
  • 비슷한 이유로 폴 가이어도 피할 것. (답변자는 칸트 스칼라십에서 가이어의 위치는 상당히 의심스럽다고 하고 있네요. 덧붙여 누군가 칸트의 관념론을 버클리와 비교하기 시작한다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라고 합니다)

독일 관념론과 헤겔

  • 칸트에서 헤겔까지 철학적 문제들: Eckart Förster, The Twenty-Five Years of Philosophy
  • 독일 관념론에 관심이 있다면 필독: Robert Pippin, Hegel Idealism 와 Terry Pinkard, Hegel's Phenomenology.
  • Lee Braver, A Thing of This World : 지식, 인지, 형이상학 등에 관한 칸트적 성찰을 헤겔, 니체,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까지 추적
  • Braver가 대륙철학의 반실재론적 계보를 추적하는 반면, Richard Sebold, Continental Anti-Realism. A Critique은 반실재론적 논증을 비판하고 실재론적 측면을 조명

현상학 (답변자가 하이데거는 아래에서 따로 다루고 있습니다)

  • 입문: Dermot Moran, Edmund Husserl: Founder of Phenomenology, Dan Zahavi, Phenomenology: the Basics (자하비가 좀 더 분석적이라고 평합니다)
  • 심화: Steven Crowell, Normativity and Phenomenology in Husserl and Heidegger
  • 메를로-퐁티: Taylor Carman, Merleau-Ponty. (저자는 분석적 관심을 갖고 있다면 아마 메를로-퐁티가 가장 읽기 쉬운 편일 것이라고 하며 Phenomenology of Perception을 바로 읽는 것도 추천합니다.)
  • 사르트르: Sebastian Gardner, Sartre's Being and Nothingness 강추.
  •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다양한 면모: Gary Gutting, French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 (좀 더 모험적인 독자라면 Alain Badiou, The Adventures of French Philosophy 를 도전해봐도 좋지만 분석적 배경에서 바디우를 읽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입니다)

데리다

  • Simon Glendinning, On Being With Others: Heidegger, Wittgenstein, and Derrida
  • 해체주의에 관심이 있다면 Samuel C. Wheeler, Deconstruction as Analytic Philosophy도 괜찮을 것. 데리다와 데이빗슨을 하나의 틀 안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수 년째 하고 있는 학자.
  • 데리다의 글을 직접 읽고 싶다면 언어 철학과 현상학에 걸쳐져 있는 초기 저작인 Speech and Phenomena을 추천(답변자는 일상언어에 대한 성찰과 데리다의 입장을 비교하는 게 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Just don't tell Searle")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에 대한 대부분의 구별, 그리고 다양한 트렌드를 망라하는 놀라운 책이 있는데, 바로 A. W. Moore, The Evolution of Modern Metaphysics: Making Sense of Things이다. 이 책이 놀라운 까닭은 이 책이 크립키와 루이스로 대표되는 분석적 형이상학과 해체주의, 포스트-구조주의, 그리고 질 들뢰즈의 사상에 대한 견실한 개론을 하나의 책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목차를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집니다. 언젠가 읽어볼 날이 있겠죠?ㅋㅋ)

하이데거 (답변자가 하이데거 전공자인 것 같네요..)

  • William J. Richardson, Heidegger's Ways of Being : 초기 영미권 하이데거 연구
  • Thomas Sheehan Making Sense of Heidegger: a Paradigm Shift : 하이데거의 전후기 철학을 (종교적, 신학적 독해를 피하고) 현상학적 틀 안에서 이해
  • Hubert Dreyfus, Being-in-the-World, Taylor Carman, Heidegger's Analytic, Mark Wrathall, Heidegger and Unconcealment, Denis McManus, Heidegger and the Measure of Truth, Sacha Golob, Heidegger on Concepts, Freedom, and Normativity and John Haugeland, Dasein Disclosed: Sein und Zeit와 전기 철학에 대한 분석적 독해를 대표하는 저작들. (문제는 이들이 하이데거를 읽을 때 언어, 지식, 심리 철학 등 분석적 관심을 가지고 보며 하이데거를 일종의 실용주의(pragmatism), 이해가능성에 관한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itution of intelligibility)를 취하는 것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는 점)
  • William Blattner, Heidegger Temporal Idealism: 좀 더 스칼라십에 가까운 영미권 저서
  • Crowell and Malpas, Transcendental Heidegger : 하이데거에 관한 여러 독해 방식을 균형있게 수록한 논문집

"하이데거를 읽어보려 하다 그의 특이한 용어와 문장에 나가떨어지는 분석철학자들에게 내가 늘 추천하는 방식이 있다. 그것을 소개하겠다.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존재와 시간』을 읽어라. 이 책은 20세기 대륙철학의 근간이자, 언어, 이해, 존재 등에 관한 하이데거적인 주제를 더 매끄럽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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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영역만 놓고 보면 이세계의 @YOUN 님이 작성한 글 같네요 :ro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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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 글쓴이분이 추천해 주시는 목록들이 좋네요! 실제로, 저 저작들 중 상당수가 대륙/분석철학 비교 연구 분야에서는 거의 '고전적'인 저작들이기도 하고, 그 중에서는 저도 서강올빼미에서 인용하거나 추천했던 것들이 눈에 많이 보여서 반갑네요! 몇 가지 단상을 남기자면,

(1) 스트로슨을 좀 너무 내려치기하는 것 아닌가?

이건 좀 글쓴이분의 편향이나 취향이 많이 반영된 평가가 아닐까 해요. 물론, 스트로슨은 엄격한 칸트 전공자가 아니기도 하고, 앨리슨을 비롯한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강력한 비판을 많이 받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트로슨의 독해가 "완전히 오독"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오히려 칸트의 관념론이 버클리의 관념론과 과연 크게 다른지에 대한 비판은 칸트 시기부터도 칸트에게 직접 제기된 비판이었기도 하고, '사물 자체'에 대한 비판 역시 독일 관념론 시기에 핵심적으로 제기된 비판이었으니, 사실 따지자면 스트로슨이 지지하는 독법이 더욱 '고전적'이고 '표준적'인 독법에 가깝지 않은가 해요.

더군다나, 레딧 원글에도 나와 있지만, 맥도웰처럼 오늘날 주요한 칸트주의적 철학자들 중에서도 스트로슨의 독법을 지지하는 인물들도 여전히 꽤 많고요. (오히려 맥도웰은 스트로슨의 입장에서 앨리슨의 독법을 비판하죠.)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 보아도, 저는 칸트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아마 스트로슨보다는 앨리슨이 맞겠지. 다른 칸트 연구자들이 대개 그렇게 말하니까.'라고 사유를 남에게 위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작 제 주변에는 앨리슨의 해석을 지지하는 칸트 전공자들조차도 여전히 스트로슨의 해석이 충분히 흥미롭다고 평가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2) 하이데거가 어렵다고 해서, 가다머가 마냥 쉽지는 않다!

사실, 이 이야기는 레딧 글쓴이분만의 조언이 아니라, 원래 위르겐 하버마스의 조언이에요. 하버마스는 가다머가 "하이데거적인 지역을 도시화(urbanizing the Heideggerian province)"한 인물이라는 유명한 논평을 하거든요.

하이데거는 바로 자신 주변에 협곡을 파낸 급진적 사상가였다. 가다머의 철학적 성취가 위대한 점은 바로 이 협곡을 다리로 연결했다는 데 있다. 물론 다리라는 이미지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함의를 동반한다. 마치 누군가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접근하기 위해 교육적 지팡이를 제공받는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차라리 가다머가 하이데거의 지방을 도시화한다고 말하고 싶다. 독일어에서 '지방(Provinz)'은 단순히 제한된 요소뿐 아니라 두터운 독특함과 독창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Now, Heidegger was just such a radical thinker who has dug a gorge about himself. I see the greatness of Gadamer's philosophic achievement in this, that he has bridged over this gorge. The image of the bridge, of course, brings along with it misleading connotations; it awakens the impression that here someone is furnished with a pedagogical crutch for the purpose of getting closer to an unreachable place. I do not intend it in this way. Hence, I would rather say that Gadamer urbanizes the Heideggerian province. One has to bear in mind that in German we associate with "the provinces" not only the confining element but also a thick-skinned uniqueness and originality.

J. Habermas, "Hans-Georg Gadamer: Urbanizing the Heideggerian Province", Philosophical-Political Profiles, F. C. Lawrence (trans.),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1985, p. 192, DeepL 번역.

그래서 수많은 입문자분들이 울퉁불퉁한 하이데거의 시골길을 걷다가 힘이 들면, 가다머의 도움을 받아서 잘 닦인 아스팔트길을 걷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글쎄요, 이게 얼마나 실제로 유익한 방법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물론, 가다머의 글들이 분명히 하이데거의 글들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논점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존재사유'니 '철학적 해석학'이니 하는 것들을 명료하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특별히,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은 미학, 존재론, 윤리학, 과학철학, 언어철학 같은 온갖 주제를 담고 있어서 그 자체가 일종의 철학 백과사전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기도 하고, 그 속에 이미 슐라이어마허부터 가다머 자신에게 이르는 해석학의 역사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수아레즈, 칸트, 헤겔 같은 고전적 철학자들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어서 그 자체가 일종의 철학사 책으로서도 함의가 크긴 한데, 오히려 바로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담론을 다루는 책이기 때문에 읽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지점도 분명히 있거든요. 온갖 배경 지식들을 요구할 뿐더러, 그 배경 지식들이 어떻게 하나로 종합되는지에 대한 거시적 관점도 요구해서요. 주변에서 『진리와 방법』을 읽는 것을 힘들어 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고, 저 역시도 처음 공부할 때 이 책만 정말 20-30번은 반복해서 읽었던 고난의 시절이 있었다 보니, 차마 이 책을 『존재와 시간』의 입문서인 것처럼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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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 글쓴이의 취향이 저와 비슷한 것 같네요.

가이어는 앨리슨과 함께 칸트에 대한 주석적 권위로는 거의 2황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 가이어가 제시한 해석이나 논변들은 제 경험상 의심스러운 것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저는 "칸트의 이 부분에 대한 대표적인 오독/오해가 뭐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 가이어부터 보는 편입니다 :joy:

스트로슨의 책은 "의미의 원리" (principle of significance; 어떤 개념을 사용할 때, 그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경험상황을 특정할 수 없다면, 그 개념은 적절한 사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원리) 라는 언어철학적 원리를 통해 칸트를 독해하는 데 있어서 독창성과 통찰을 주고 있습니다만, 결정적으로 칸트에게 있어 알파이자 오메가인 "선험적 관념론" (인식은 대상 뿐만 아니라 주체에 의해 함께 구성된다는 이론)을 칸트의 오류로 간단히 치부하고 탈각시키는 바람에, 빛을 바랜 책입니다. 이 점에서 스트로슨을 통해 칸트에 입문한다면, 칸트로부터 얻을 수 있는 큰 영감의 한 축을 놓칠 가능성이 커지겠죠.

이러한 배경에서, 옥스포드에서 스트로슨을 통해 칸트에 입문한 맥도웰 역시 <마음과 세계>에서 선험적 관념론에 대한 스트로슨적 비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맥도웰은 몇년 후 인터뷰와 여러 논문들에서 <마음과 세계>에서의 칸트 해석이 스트로슨의 오독/오해를 재생산한 오류였음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스트로슨을 통한 칸트입문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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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읽고서 찾아봤더니, Having the World in View 42쪽 30번 각주에 정말로 맥도웰이 '두 세계 독법'에 대한 자신의 이전 관점을 수정한 내용이 있었군요!

나는 여기서 『마음과 세계』에서 내가 전제했던 칸트에 대한 두 세계 그림을 수정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칸트가 Bxxvii와 같은 구절들에서 주장하는 것이, 우리의 지식 속에 나타나는 사물들과 “사물 그 자체로서의 그 동일한 사물(those same things as things in themselves)”의 동일성이지, “사물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그 동일한 사물(those same things as they are in themselves)”의 동일성은 아니라는 점이다. (후자의 표현은, 예를 들어 헨리 E. 앨리슨의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에서 볼 수 있듯, 비-두 세계 독법에도 스며들어 있다.) 사물 자체란, 우리의 지식 속에 나타나는 바로 그 동일한 사물이지만, 사물이 우리의 지식 속에서 나타나는 방식으로부터 추상적으로 고려된 사물이다. 이러한 것은, 사물이 그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서 소유하고 있는 속성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 다른 속성들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물 자체에 대한 이러한 후자의 해석을 통해, 비-두 세계 독법은 두 세계 독법이나 다름 없어진다. 그 그림은 여전히 두 영역의 사실들을, 즉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과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영역에 같은 사물들이 모두 등장한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이러한 구도가 초래하는 해악을 조금도 약화시키지 못한다.

I here correct the two-worlds picture of Kant that I presupposed in Mind and World. But note that what Kant insists on, in passages like Bxxvii, is an identity of things as theyappear in our knowledge and "those same things as things in themselves"; not "those same things as they are in themselves". (This latter wording pervades! e.g., Henry E. Allison's non-two-worlds reading, in Kant's Transcendental Idealism.) Things in themselves are the very things that figure in our knowledge, but considered in abstraction from how they figure in our knowledge. That is not to say: considered as possessing, unknowably to us, other properties than those they appear as possessing in our knowledge of them. With this latter construal of things in themselves, the non-two-worlds reading might as well be a two-worlds reading. The picture still involves two realms of fact, one knowable by us and one unknowable by us; it does not undermine the damage this does to say that the same objects figure in both.

John McDowell, "The Logical Form of Intuition", Having the World in View,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p. 42n, ChatGPT 번역 후 인용자 수정 & 인용자 강조.

하지만 강조 표기에서도 나타나듯이, 맥도웰이 두 세계 독법을 포기하였다고 해서 앨리슨의 칸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군요. 결국 앨리슨의 '비-두 세계 독법'도 기존의 '두 세계 독법'으로 다시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 맥도웰의 입장이었네요. 전에 말씀하신

도 맥도웰의 수정된 입장을 고려하셨던 거였군요.

하지만 맥도웰이 The Engaged Intellect 같은 저작에서

스트로슨이 칸트에 대한 독법으로 제시하는 내용에서 그의 창조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의 사상이 정신적으로 깊이 칸트적이라는 점을 논박하려는 것은 아니다.)

We should not underestimate Strawson's own creativity in what he offers as a reading of Kant. (I do not mean to dispute that his thought is deeply Kantian in spirit.)

John McDowell, "Referring to Onself", The Engaged Intellect,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p. 193.

라고도 하잖아요. 우리 스트로슨 할아버지 너무 때리지 말아주세요ㅠㅠ 그래도 영어권에 칸트 보급한 훌륭한 인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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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번역을 한 학자들이 의심스러운 해석을 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현상학을 번역한 핑카드라던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번역한 컬리라던가 말이에요. 번역했다고 하면 말 그대로 정석적인 해석을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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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짝에 못을 마저 박자면 ... 스트로슨의 칸트 해석에 대한 맥도웰의 직접적 언급은 다음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SXw2mJTF-Y (2분 37초)
인터뷰 전문: O’Shea, James & McDowell, John (2023). An Interview with John McDowell on his 2013 Agnes Cuming Lectures (UCD), ‘Two Questions About Percep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31 (1):1-17.

질문자: 스트로슨이 해석한 칸트에서, 이른바 ‘좋은 칸트’, 즉 경험 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그리고 당신의 유명한 저서 『Mind and World』에서, 당신은 물자체를 가리키는 ‘초월론적 이야기’와, 칸트의 좋은 부분인 ‘경험 이론’을 구분합니다. 경험 이론은 우리와 독립한 세계에서 사물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 잠재적 자기의식, 그리고 개념화 등을 포함합니다. 당신은 이후의 글들에서 『Mind and World』에서 초월론적 이야기를 좋지 않은 생각으로 보았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분명 스트로슨의 『The Bounds of Sense』와도 맥이 닿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당신의 견향은 어떠합니까? 초월론적 이야기를 경험 이론과 통합하여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맥도웰: 음, 그때 내가 이른바 ‘초월론적 이야기’를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에서 내가 마치 칸트를 아는 사람인 양 행동했다는 건 사실 꽤나 부끄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칸트를 몰랐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칸트는 스트로슨을 통해서였거든요. 막상 칸트의 원문을 들여다보니, 그것들은 대단히 수수께끼 같았습니다. 그래도—그러니까, 지금은 더 나은 설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월론적 이야기’라는 그 라벨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한 ‘좋은 부분’, 즉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적 인식에 대한 설명을—조금 기술적으로 말하자면—초월론적 변증법에서 일어나는 것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예전보다는 약간 더 감을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 생각도 거의 모든 목적에 있어서 초월론적 변증법을 옆으로 제쳐둘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경험에 관한 칸트에 집중하고, 인간의 인식 가능성 범위를 넘어서는 것에 관한 칸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Chat GPT 번역 수정]

Well, I think I got the transcendental story – so-called – just completely wrong back then. It’s actually rather appalling that in that work I made as if to be a person who knew about Kant, but I didn’t know about Kant; I had Kant from Strawson. And when I looked at actual Kant texts, they were deeply mysterious. But yes – I mean, I think I do have a better account. That label, ‘the transcendental story’, is off. I have a slightly better sense of how to link, as you put it, ‘the good bit’—the account of our experiential knowledge of the world – with what happens in the transcendental dialectic, to get a bit technical. What I think about that now still leaves me, I think, able to push that aside for almost all purposes; so we should focus on Kant on experience and not bother too much about Kant on what’s beyond the scope of human possibilities of kn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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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카드나 (아마도) 컬리는 그래도 해당 철학자에서 긍정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철학적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에 반해, 가이어는 칸트에 대한 그의 방대한 주석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unsympathetic reader를 자처하고 그에 기대어 자꾸 이상한 해석을 하다보니 영 정이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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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저자는

The first thing I would recommend you is to have a good, extensive knowledge with Kantian philosophy. Continental philosophy, from German Idealism, to its rejection (Kierkegaard, Marx, Nietzsche, Schopenhauer), to Phenomenology, to Post-Heideggerian philosophy, is a debate and reaction with most ideas that are already contained within the kind of reflection engendered by the Kantian revolution.

라고 말했지만 아쉽게도 "rejection [to German idealism] (Kierkegaard, Marx, Nietzsche, Schopenhauer)"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네요.

Reddit의 시스템에 무지해서 원저자의 댓글인지 모르겠다만, 니체에 대해서는 Richardson의 Nietzsche's System을 추천하는 댓글이 있네요. Richardson은 분명 영미권 니체 학계에서 인정받는 권위자이고, 그의 저서 Nietzsche's System도 Oxford bibliographies에서 니체의 전체적인 이론을 이해하기에 좋다고 언급되는 상당히 인정받는 책입니다.

Kierkegaard와 Richardson의 Nietzsche's System을 제외하고, 분석철학 전공자를 위한 Nietzsche, Marx, Schopenhauer 입문서 한 권씩을 꼽자면 다음 정도가 생각나네요.

  1. Clark, Maudemarie. Nietzsche on truth and philosophy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2. Elster, Jon. Making sense of Marx . Vol. 4.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3. Janaway, Christopher. Schopenhauer: A Very Short Introduction . OUP Oxford, 2002.

1번 책은 사실 입문서라고 하기엔 굉장히 하드하고, 2번과 3번 책은 한국어로 번역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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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쇼펜하우어 논문 쓸 때 Wicks - Schopenhauer을 많이 봤습니다. VSI보다 조금 더 심도 있는 논의를 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Wicks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써의 세계> 를 섹션별로 써놓은 코멘터리도 있고 꽤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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