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질서의 문제(Finlayson, 2005)

하버마스는 어떻게 사회 질서가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홉스가 그 문제를 제기했는데, 홉스에 따르면 강제력의 사용과 신뢰할 만한 처벌 위협에 뒷받침되는 전능한 통치자의 법과 권위가 사회 질서를 세운다.

그러나 홉스의 해법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 처벌의 대가가 법을 어겼을 때의 이득보다 훨씬 작을 경우, 법을 어기는 것이 합리적인 길이 된다. 둘째, 자기는 법을 어기고 타인은 법을 준수하여 개인적 이익을 얻는 경우, 즉 무임승차의 경우 법을 어기는 것이 합리적인 길이 된다.

반론을 접합 철학자들은 문제에 답하고자 사회 질서가 계약 관계의 망에 의존한다는 사회계약론으로 방향을 돌린다. 여기에도 비판이 제기됐다. 첫째,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계약했는지 설명하기 힘들다. 둘째, 계약론은 사회 규칙과 규범이 있다는 사실을 해명하지는 않고 규범, 특히 계약을 존중해야 한다는 규범이 이미 작동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뒤르켐은 행위자들이 규범을 준수하는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행위자들은 사회화를 통해 특정 제재를 규범 위반과 연결하여 자발적으로 이 제재를 피하는 법을 배우고, 또 집단적 도덕 의식에 편안함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기에 규범을 준수하려 한다. 파슨스가 이를 발전시켜, 규범과 가치 체계가 사회적 안정과 조정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는 위 이론 모두를 독창적으로 재구성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 행위 조정은 언제나 발화(speech) 또는 언어 사용(language use)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행위자는 이 과정에 들어설 때마다 자신의 행위(혹은 말)를 좋은 이유에 근거해 정당화하겠다고 찬동한다. 하버마스 용어에 따르면 이 정당화에 대한 찬동이 ‘타당성 주장(validity claims)’이다.

타당성 주장이 중요한 이유는, 근대 사회는 어떤 행위자도 자신 행위를 정당화하라고 요구받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도록 사전에 약속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당성 주장을 통해 주어지는 이유는 행위자를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고 상호작용 과정에서 따라야 할 선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행위자는 자신 행위를 규제하는 데 익숙해지고, 사회 질서는 처벌의 위협, 공유된 전통과 가치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양식을 취하게 된다. 이상의 이유로 타당성 주장은 실천적 기능을 지닌다.

이에 더해 정당화에 대한 찬동인 타당성 주장은 두 가지 지위를 지닌다. 첫째, 그것은 정당한 이유, 즉 적절한 이유 제공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 지위를 가진다. 둘째, 그것은 행위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고, 피할 수 없으며, 그리고 다른 언어 사용자들을 향한 의무를 짊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덕적 지위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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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한 가지,

이 부분이 핀레이슨의 설명인가요, sophisten님이 약간 재구성하신 것인가요? '타당성 주장'이라는 개념을 제가 이해한 것과는 약간 강조점이 다른 것 같아서요. 하버마스는 타당성 주장을 이렇게 설명하거든요.

"타당성 주장이란 한 발언의 타당성을 위한 조건들이 충족되어 있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화자가 타당성 주장을 묵시적으로 제기하든 명시적으로 제기하든 간에, 청자는 타당성 주장을 수용하든가, 거부하든가, 아니면 당분간 판단을 보류할지를 선택할 수 있을 따름이다. 허용될 수 있는 반응은 예/아니오의 입장표명, 아니면 유보적 태도다."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 장춘익 옮김, 제1권, 나남, 2007, 86쪽.)

그래서 저는 타당성 주장이라는 것이 쉽게 말해 '근거를 댈 수 있는 주장'이라는 정도의 의미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다른 말로 하자면, '정당화하겠다고 찬동한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정당화할 수 있다고 발화자가 믿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말한 것은 타당해. 내 말이 타당하다는 것을 너에게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조건들이 갖춰져 있어!"라는 게 타당성 주장이라고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 상대방은 그 주장에 대해 "그래, 너의 말은 정당화 돼."라거나 "아니야, 너의 말은 정당화되지 않아."라고 발화자의 주장에 반응하게 되면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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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재구성한 것이에요. 원전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Whenever agents use language to coordinate their actions, they enter into certain commitments to justify their actions (or words) on the basis of good reasons. He calls these commitments ‘validity claims’. We shall examine what he means by ‘validity claim’(26).

저는 '내가 찬동하고 있으며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는 주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정당화하겠다고 찬동하는 주장'이라는 표현 자체가 조금 별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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