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의 "판단중지(epoché)"에 관한 선별된 언급들과 그 주석 (1)

차례
서문

  1. 전-후설적 판단중지들 - 『위기』2부

  2. 현상학적 판단중지 - 『이념들 I』 2부

  3. 현상학적 판단중지 - 『위기』 3.A/B부

  4. 판단중지의 숨겨진 측면들

  5. 결론


서문
후설의 "판단중지(epoché)"라는 개념은 이론 철학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윤리적 측면에서도 매우 탁월한 개념이다. 그것이 단순히 글자 그대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더 그러하다. 그러나 '판단중지'라는 개념은 종종 그 의미가 단순화되어 마모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후설 현상학에 대한 근본적 오해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물론 그 판단중지가 설명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그 의미가 명료해졌고, 더하여 유고 작업을 통해서 그 숨겨진 측면들도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단순히 설명에 의해서만 알아듣는 것보다는, 오히려 후설의 텍스트 자체 속에 들어가 그 안에서 '판단중지'라는 중요한 보고를 "현상학적 태도 속에서" 발견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물론 이것은 문헌에 기반하지 않고 제멋대로 해석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텍스트를 중심점로 두고 그 아래에 타 문헌들을 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미리 제시된 원문을 먼저 꼼꼼히 읽은 후에 해설을 읽기 바란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후설이 그 자신의 저작에서의 판단중지에 대한 언급들을 임의적으로 선별하고, 그에 따른 서술적 주해를 붙일 것이다. 이 글은 판단중지에 대한 일반적 설명 없이 시작된다. 판단중지 개념 및 후설 현상학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글 「『이념들 I』에서 "현상학적 잔여"에 관한 오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1. 전-후설적 판단중지들 - 『위기』2부
후설의 판단중지는 현상학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된 형태를 보이지만, 그것의 계기(Moment)들 내지 포텐츠는 이미 철학사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후설은 특히나 데카르트와 흄을 판단중지의 역사의 선조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불완전한 판단중지는 현상학이라는 '종점'(『위기』 15절)에서야 완전한 형태에 도달한다.***

a) 데카르트적 판단중지

후설이 데카르트를 논하는 것은 그의 저술들의 여러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데카르트에 대한 그의 비판적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유럽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 제 2부의 17~19절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그 일부를 발췌하고자 한다. 불필요한 내용 이외에는 최대한 원문을 삭제하지 않고 실었다.

[17절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ego cogito)로 되돌아감. 데카르트적 판단중지(epoche)의 의미를
해석함.]
(......)
데카르트에 따르면 철학적 인식은 절대적으로 정초된 인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증성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의심을 배제한 직접적인 필증적 인식의 토대에 근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간접적 인식의 각 단계는 참으로 이러한 명증성을 획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획득거나 전수된, 이제까지 확신한 것들을 개괄해봄으로써 그는 언제 어디에서나 회의 또는 회의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철학자가 되려는 모든 사람이 철저한 회의적 판단중지(radikaler skeptischer Epoche)와 더불어 시작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판단중지는 이제까지 그가 지닌 모든 확신 전체를 문제시하고, 그러한 확신에 관한 어떠한 판단을 사용하는 것도 미리 막으며, 그 타당성이나 부당성에 대한 어떠한 태도결정도 금지하는 것이다.모든 철학자는 그의 생애에 한번은 이러한 절차를 밟아야만 하고, 만약 그가 이러한 절차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비록 그가 이미 자신의 철학을 실제로 가졌더라도, 그는 그와 같은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따라서 자신의 철학도 판단중지 앞에서는 그 밖의 다른 편견들과 마찬가지로 취급되어야만 한다.
사실 이러한 '데카르트적 판단중지'야말로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근본주의(Radikalismus)라는 성격을 띤다. 왜냐하면 이 판단중지는 명백하게 이제까지의 모든 학문—여기에는 심지어 필증적 명증성을 요구하는 수학조차 예외가 될 수 없다—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더구나 학문 이전의 그리고 학문 이외의 생활세계—따라서 항상 아무런 문제도 없는 자명한 사실로 미리 주어져 있는 감각적 경험의 세계와 이 감각적 경험에서 양분을 얻는 모든 사고의 삶, 즉 비학문적 사고의 삶과 결국에는 학문적 사고의 삶의 세계도 포함하는 생활세계—의 타당성도 포괄한다.
여기에서 모든 객관적 인식, 즉 이제까지의 모든 학문, 이 세계에 관한 학문들이 인식하는 토대의 가장 낮은 단계가 인식비판적으로 처음 문제시된다. 즉 일상적 의미의 경험, 감각적 경험과 그 상관자인 세계 자체가 문제시된다. 이 세계는 우리에 대해 이러한 경험 속에 그리고 이러한 경험에서 의미(Sinn)와 존재(Sein)를 지닌 것으로서, 그 세계는 개별적인 실재적 대상들에서 그러그러한 내실을 갖고 항상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하게 우리에 대해 단적으로 현존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단지 개별적인 것에서만 그때그때 의심스러운 것 또는 가상(象)으로서 그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점에서 경험에 기초한 모든 의미의 작업수행과 타당성의 작업수행도 함께 문제시된다. 사실상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이것이 인식비판 특히 객관적 인식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 역사적 출발이다.
(......)
또한 비록 내가 어느 정도까지 회의를 하더라도, 그리고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거나 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나 스스로 시도하더라도, 어쨌든 나는 의심하는 자로서, 즉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자로서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은 절대적으로 명증적이다. 보편적 회의는 자신을 폐기한다. 따라서 보편적 판단중지를 하는 동안 '나는 존재한다'라는 절대적으로 필증적인 명증성은 나의 재량권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증성에는 매우 다양한 것도 포함된다. '나는 사유하는 존재이다**'** (Sum cogitans)라는 명증적 언표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사유한 것들을 사유한 것들로서 사유한다' (ego cogito — cogitataqua cogitata)는 것이다. 이 사실은 개별적 사유작용들뿐만 아니라 이것들의 흐름(Ström)을 하나의 사유작용의 보편적 통일로 종합하는 모든 사유작용—이 속에서 세계와 내가 그때그때 세계에 속한다고 생각한 것이 사유된 것으로 나에 대해 존재의 타당성을 지니며, 계속 지닐 것이다―을 포괄한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지금 철학을 하는 자로서 이러한 존재타당성들을 자연적 방식에서 단적으로 성취하거나 인식에 적합하게 활용할 필요는 더 이상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타당성 모두에 대해 판단중지를 하는 나의 견해에서 보면, 나는 그러한 타당성을 성취하는 작업에 더 이상 참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경험하고 사유하고 가치를 평가하며 그 밖의 행위를 하는 나의 삶 전체는 나에게 남고, 이것도 계속 경과하지만, 그 삶에서 바로 '' 세계로서, 즉 나에 대해 존재하고 타당성을 갖는 세계로서 나의 눈에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단순한 현상(Phänomen)이 되었고, 게다가 이것은 세계에 속한 모든 규정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이 판단중지에서는 모든 규정과 세계 자체가 나의 관념(ideae)으로 변화되었고, 이것들은 곧 그것이 사유된 것들로서 나의 사유작용에서 분리할 수 없는 존립요소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자아(ego)라는 명칭 아래 함께 포함된 절대적인 필증적 존재의 영**을 갖게 되며, 가령 단순히 '나는 생각한다'라는 명제 또는 '나는 생각하는 존재이다'라는 하나의 공리적 명제만 갖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밖에 특히 주목해야만 할 것을 더 첨부해야만 한다. 판단중지를 통해, 나는 원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나에 대해 존재하는 것들과 이들의 존재의 영역을 그들의 절대적인 필증적 전제로서 이끌어가는 존재의 영역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게 된다. 요컨대 데카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타당한 것이지만, 자아, 즉 판단중지를 하는 자아는 유일하게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것, 모든 회의의 가능성을 원리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그밖에 필중적으로 나타나는 것, 예를 들면 수학적 공리들과 같은 것도 매우 분명히 회의의 가능성에 개방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들을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이러한 회의의 가능성은—이것을 상술한 것과 같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근원적 명증성으로 환원하는 그리고 만약 어떤 철학이 가능해지려면 곧바로 모든 인식을 그 근원적 명증성으로 환원해야만 할ㅡ간접적이지만 절대적인 필증적 정초지음(Begründung)이 성공할 때에만 비로소 배제되고 필증성의 요구가 정당화된다.

[18절 데카르트의 잘못된 자기해석: 판단중지를 통해 획득된 자아를 심리학주의적으로 왜곡한 점]

여기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해석하는 가운데 의도적으로 침묵했던 몇 가지 사실을 언급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데카르트의 사상에는 은폐된 두 가지 의의가 있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즉 데카르트의 사상을 파악하고 발전시키며 학문적 과제들을 제시하는 일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나타나는데, 데카르트에서는 이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오직 하나만 처음부터 자명했다. 그러므로 그가 서술한 것의 의미는 사실상 (그 자신의 의미로서는) 일의적(eindeutig)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일의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유래한다. 즉 그가 그의 사상에서 독창적인 근본주의를 실제로 관철하지 않았다는 점, 그가 실제로 그의 모든 예측하는 사념(Vormeinung) 특히 세계를 통째로 판단증지에 예속시키지(괄호치지) 않았다는 점, 그가 자신의 목표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판단중지를 수행하는 '자아(ego)'를 통해 획득한 가장 중요한 의의를—이 자아와 관련해 순수한 철학적 경탄(thoumazein)을 전개하기 위해—곧바로 이끌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철학적 경탄을 밝히는 작업이 실로 곧바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데카르트가 새로운 사상에서 실제로 명확하게 드러냈던 모든 것은 비록 독창적이며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더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피상적이었으며, 게다가 그것에 대한 그 자신의 해석 때문에 그 가치를 상실했다. 즉 데카르트는 판단중지에서 비로소 발견된 이 자아에 대해 경탄하면서 '그것은 어떤 종류의 자아인가. 가령 그것은 인간—일상의 삶에서 감각적으로 직관할 수 있는 인간—인지 아닌지' 하는 물음을 스스로 묻고 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신체(Leib)를 배제한다. [하지만] 감각적 세계 일반과 마찬가지로 신체 역시 판단중지에 속한다. 그래서 데카르트에게 자아는 '마음, 즉 혼, 즉 지성'(mens sive animus sive intellectus)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 점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판단중지는 (철학하고 있는) 나에게 미리 주어져 있는 모든 것에 관계되는 것은 아닌가? 따라서 판단중지는 모든 인간을 포함한 세계 전체에 그리고 인간의 단순한 육체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관계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자연적으로 세계를 소유하는 경우 항상 나 자신을 전체 인간으로 간주하듯이 판단중지는 전체 인간으로서 나 자신에 관계되는 것은 아닌가? 이 경우 데카르트는 "단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과 수학적인 것으로서 순수 사유의 문제인 것을 구별하면서 보편적이며 절대적으로 순수한 물체의 세계에 대해 갈릴레이가 지닌 확신으로서 앞서 이미 지배되지 않았나? 감성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의 영역을 지시하지만 우리를 기만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기만을 해결하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수학적 합리성에서 인식하는 합리적 길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 데카르트에게는 실로 이미 자명한 것이 아니었나?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판단중지에 의해, 즉 실로 어떤 가능성으로서조차 한꺼번에 괄호 속에 묶이는 것은 아닌가?
데카르트는 무전제성(無前提性)이라는 근본주의를 요구하지만, 이러한 자아로 돌파해가는 작업이 당연히 그 수단이 될 목표미리 갖고 있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데카르트는 그 목표와 이것에 이르는 수단의 가능성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가 이미 근본주의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판단중지, 즉 미리 주어진 모든 것—세계속에 존재하는 것에 관한 그 모든 전제된 타당성(Vorgeltung)—을 철저하게 억제하는 것을 단순히 결심하는 일로써 작업이 다 수행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판단중지는 진지하게 수행되어야만 하며, 사실상 그렇게 수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아는 세계의 어떤 잔여(Residuum)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증적으로 정립된 것인데, 이것은 판단중지를 통해서만 즉 세계의 타당성 전체를 '괄호침'으로써만 가능하며, 또한 유일한 정립으로서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영혼(Seele)은 순수한 물체를 이전에 추상함의 잔여이며, 이 추상에 따라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 물체를 보충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주목해야만 하듯이) 이러한 추상은 판단중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미리 주어진 세계, 즉 자명하게 존재하는 세계의 자연적 토대 위에 자연탐구자나 심리학자가 사물을 고찰하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추상들과 이것들이 자명하다고 주장하는 가상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즉 판단중지와 이것을 하는 자아를 소개하는 성찰의 기초를 세우는 [이] 고찰에서는 자아와 순수한 영혼을 동일시함으로써 논리적 일관성이 단절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찰의 전체적인 성과, 즉 자아의 위대한 발견은 이치에 어긋나버린 오해에 의해 그 가치를 상실한다. 요컨대 순수한 영혼은 도대체 괄호 속의 영혼, 즉 단순한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판단중지에서는 결코 어떠한 의미도 갖지 않으며, 이 점에서는 신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현상(Phänomen)'이라는 새로운 개념, 즉 데카르트적 판단중지와 더불어 비로소 처음 발생한 그 개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자아로 되돌아가는 이러한 새로운 사상의 동기는 일단 역사 속에 나타나자마자, 그 이후로 즉시—왜곡되거나 모호해진데도— 철학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고, 철학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목적(Telos)을 심었다는 점에서 그것의 내적인 강력한 힘을 계시했다.

[19절 데카르트가 자신의 발견을 잘못 해석한 근거인 객관주의에 대한 지나친 관심]

데카르트의 저술 『성찰』은 자신의 심리적 자아(Ich)를 자아(ego)로 대체하고, 심리학적 내재(Immenenz)를 자아론적 내재로, 심리적 내적 지각 또는 자기지각을 자아론적 자기지각으로 대체하는 불행한 숙명적 형식으로 결과가 나타났으며,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영향을 계속 끼치고 있다. 데카르트 자신은 자신의 영혼적인 것을 초월하는 것으로 추론하는 길을 따라 (신의 초월성에 대한 첫 번째 추론으로 매개되어) 유한한 실체의 이원론을 증명할 수 있다고 실제로 믿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는 자신의 이치에 어긋난 태도에 대해 중요한 문제—이 문제는 그 이후 칸트가 변화된 형식으로 다시 반복한다—즉 '어떻게 수학이나 수학적 자연과학의 형성물이라는 나의 이성 속에 창출된 이성의 형성물(나 자신의 '명석하고 판명한 지각')이 객관적으로 참된,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초월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에 이르러 오성 또는 이성의 이론, 즉 정확한 의미에서 이성비판이 선험적 문제제기라고 부르는 것은 그 의미의 원천이 데카르트의 성찰에 있다. 고대는 이러한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고대에는 데카르트적 판단중지와 이것을 수행하는 자아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관적인 것 속에서 그것을 최종적으로 정초하고자 추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철학을 함은 사실상 데카르트와 더불어 시작한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그것을 주관적으로 정초하면서도 순수한 객관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무엇보다 판단중지에서 그 자체로 존립하며 객관적 학문들(보편적으로 말하면, 철학)을 정하는 것에 대해 절대적 인식의 토대들로 기능했던 마음(mens)이 그 밖의 주제와 함께 동시에 이러한 학문들, 즉 심리학에서도 정당한 주제로 정초된 것으로 보임으로써만 가능하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판단중지를 통해 '세계’라는 성격을 상실해버린 그의 자기인 자아, 즉 기능하는 사유작용에서 이제까지 세계가 자신에 대해 가질 수 있었던 모든 존재의 의미를 지닌 자아는 세계 속에 주제로 등장할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명백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세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곧바로 이 자아의 기능에서 그것의 의미를, 따라서 자신의 영혼적 존재. 또한 일상적 의미에서 자아(Ich)도 포함해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하물며 데카르트는 자아—이것이 판단중지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지듯이—가 타인이나 자신을 제외한 자기와 같은 수많은 자기(Mit-Iche)를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자기는 아니라는 점을 당연히 고려할 수 없었다. 나와 너, 내부와 외부 같은 이 모든 구별은 절대적 자아 속에서 비로소 '구성된다' (sich konstituieren)는 점이 데카르트에서는 은폐된 채 남아 있다.
그래서 왜 데카르트가 객관주의와 정밀한 과학을 형이상학적-절대적 인식을 보장하는 학문으로 정초하려고 서두른 나머지, 그 작용들이나 능력에서 자신에 고유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순수자아가 이러한 작용들과 능력을 통해 지향적 작업수행으로서 성취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순수자아—판단중지 속에 일관되게 남아 있는 것—를 체계적으로 물어보는 과제를 자신에게 부과하지 않았는지가 이해된다. 데카르트가 이것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자아 속의 '현상'인 세계에서 시작해 체계적으로 되돌아가 묻는 문제, 즉 실제로 증명될 수 있는 자아의 어떠한 내재적 작업수행에서 세계는 그 존재의 의미를 유지해왔는가 하는 강력한 문제제기가 천명될 수 없었다. 마음으로서 자아에 대한 분석론은 데카르트에게는 분명히 미래의 객관적 심리학의 문젯거리였던 것이다.
(『위기』169~182쪽 중. 고딕체는 저자의, 기울임체는 필자의 강조, 번역어 일부 수정.)

"근대철학 전체를 근원적으로 건설한 천재"(『위기』 167쪽)인 데카르트는 실로 현상학적 판단중지의 첫 번째 계기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외부 세계의 대상들과 진리들은 의문의 대상, 의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성찰』에서 수학적 진리들과 같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반적 진리들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사악한 악마 또는 전능한 신이 인간(나)의 모든 감각과 인식, 경험을 속이고 조작한다면, 결국 그러한 것의 진리의 확실성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외부 세계의 '진리'들과 달리 절대적으로 의심할 여지 없는 하나의 진리가 있으니 그것이 자아로서의 자신의 존재,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다. 그렇게 해서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철학의 출발점은 바로 '자아(ego)'이다.
후설은 이러한 데카르트적 태도, 즉 철학을 필증적 명증성(으로서의 자아)에서 시작하려는 근본주의(Radikalismus)적 태도, 즉 "진정한 학문적 인식을 그 타당성의 원천으로까지 환원시키고 이것에 입각해 인식을 절대적으로 정초하려는 목적을 지닌 데카르트적 근본주의"(『위기』 192쪽)를 계승한다. 그러나 그러는 한편 그에게 있어서 데카르트는 초월론철학(Transzendentalphilosophie)을 발견하는 데 실패한 철학자다. 데카르트는 철학적 회의를 통해 참된 초월론철학, 즉 현상학의 학문적 영역이자 '절대적/근본적 영역'인 '자아(ego)'의 영역을 처음으로 발견했지만, 곧 그 근본주의적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것을 '영혼(mens)' 곧 마음, 즉 혼, 즉 지성'(mens sive animus sive intellectus)으로 해석함으로써 일을 그르치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무전제성의 태도와 판단중지의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후설은 말한다.) 그렇게 그의 성찰은 교조적 철학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으며, 이것은 철학이 합리론과 경험론이라는 '단지 일면적인' 철학적 입장들로 분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때 데카르트처럼 절대적 영역에 대한 오해석은 그의 후대의 로크와 이어서 서술할 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짧게 언급하자면 로크는 데카르트의 자아(ego)를 그의 깊은 철학적 의미를 알아내지 못한 채 마음(human mind)으로 간주해 버리고 말았다. 또한 그는 '지식'을 내적 경험과 관련시켜 다루었지만 그 내적 경험을 심리학적 경험으로 잘못 파악함으로써 그 참된 초월론적 의미를 그르쳐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데카르트의 근본적인, 그러나 실패한 판단중지는 후설에 의해 철저하게 되물어지고 수정되고 정정되는 학문적 도정을 거쳐 마침내 진정한 현상학적 판단중지에 이르게 된다.

b) 흄(Hume)적 판단중지

이러한 방향에서 흄은 끝까지 철저하게 추구해간다. 객관성의 모든 범주, 즉 학문적 삶에서 객관적 세계가 사유되는 학문 이전의 범주는 모두 허구(Fiktion)이다. 무엇보다 수ㆍ양ㆍ연속체ㆍ기하학적 형태 등과 같은 수학적 개념이 그러하다. 흄의 의미에서 이것들은 허구이며, 더 나아가 필증적이라고 추정된 수학 전체도 허구이다. 이 허구의 근원은 심리학적으로 (즉 내재적 감각론의 토대 위에서) 요컨데 관념들 사이의 연상과 관계라는 법칙성에 근거해 매우 잘 설명될 수 있다. (......) [그러나] 흄은 근본적으로 결국 독아론(Solipsismus)으로 끝난다. 도대체 어떻게 감각자료에서 다른 감각자료를 추론하는 것이 내재적 영역을 넘어설 수 있는가? 물론 흄은 '이러한 이론을 진리로 정초하고, 이러한 심리분석을 수행하고, 이러한 연상법칙을 증명했던 흄 자신의 이성인 바로 이성은 그 경우 사정이 어떠한가'와 같은 문제는 제기하지 않았고, 결코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연상적으로 함께 정돈하는 규칙들은 도대체 어떻게 결합하는가? 비록 우리가 그 규칙들에 관해 알고 있더라도, 또다시 그 앎 자체도 마음의 서판 위에 씌어진 다른 하나의 감각자료는 아닌가? 모든 회의론이나 모든 비합리주의와 마찬가지로 흄의 회의론이나 비합리주의 역시 자신을 폐기하는 자기모순이다.
(......)
[24절 흄의 회의가 지닌 이치에 어긋난 것 속에 은폐된, 객관주의를 동요시키는 진정한 철학적 동기]
(......)
흄에 의해 데카르트의 근본적 문제가 다시 소생되고 철저하게 전개됨으로써 '독단적' 객관주의는 그 가장 깊은 근본에서 동요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열중한 수학화하는 객관주의 또는 세계 자체가 본래 수학적-합리적인 그 자체의 존재—우리는 이것을 이른바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완전한 이론으로, 그리고 항상 더 개선된 이론으로 묘사한다—로 전가하는 객관주의뿐만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지배해왔던 객관주의 일반이 그 가장 깊은 근본에서 동요되었다.
(『위기』 189~195쪽 중.)

흄 또한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객관적 인식에 회의를 가진다. 그러나 그는 인간 인식을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하는 해석을 하고, 심지어 모든 객관적 인식을 허구(fiction)로 간주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에게는 수학은 물론 인과율까지도 허구이며, 그것들은 곧 습관 내지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곧 "객관적 인식의 파산"을 의미한다. 이것은 현상학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객관'주의'가 주관성 철학에 의해서 흔들리게 되는 사건을 야기했다. 그러나 흄의 이러한 회의적 태도는 근본적으로 자기모순이다. 흄에 따르면 우리의 앎은 감각자료에 대한 연상적 작용이다. 그러나 그 연상적 작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연상적 작용이 '초월론적(여기서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의 의미에서)' 인식작용인 한, 그것은 어떠한 규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흄이 이 연상작용에 대해 말할 수 있으려면 그는 이 규칙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하나, 그것은 그 규칙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앎도 흄에 따르면 감각자료의 연상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앎에 대한 앎도 결국 감각자료에 의한 연상, 즉 허구가 될 것이다. 그렇게 결국 흄은 "진부한 회의론의 느긋한, 그리고 매우 인상 깊은 역할에 머물고 말았다." 그러나 흄은 데카르트의 근본적 문제제기, 즉 "세계 인식이라는 수수께끼"를 다시 소생시켰고 그것이 철저히 전개됨으로써 독단적/교조적 객관주의, 예컨대 세계 자체를 수학적-합리적인 그 자체의 존재(Ansichsein)라고 믿는 부당한 객관주의는 그 근본에서부터 동요될 수 있게 되었다.


*) 필자의 글「『이념들 I』에서 "현상학적 잔여"에 관한 오해」 참조.

** 에포케(εποχη)는 그리스로부터 유래했으나, 후설에게서 에포케는 주로 이 둘의 영향 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설에 대한 데카르트의 영향은 이것 이상이다. 실제로 후설이 사용하는 transzendental[초월론적]이라는 근본개념마저 칸트적이라기보다는 데카르트적인 것이었다(『위기』 26절 참조).
후설은 고대의 소피스트적 판단중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다음과 같은 점도 다시 기억해야만 한다. 즉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에서 시작된 고대의 회의주의는 객관적 인식(episteme), 즉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An-sich-seiend)의 학문적 인식을 문제로 삼아 그것을 부정했다는 점, 그러나 이 회의주의는 그들의 추정적 진리를 그 자체와 더불어 합리적인 그 자체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것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철학을 합리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불가지론을 넘어서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이 세계는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의 인식은 주관적-상대적 현상들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근본주의를 계속 추구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 (예를 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르기아스의 두 가지 뜻을 지닌 명제와 같이)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근본주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부정적 견해에서 실천적-윤리적(정치적) 태도를 취하는 고대의 회의주의에는 물론 그 이후의 모든 시대에서도 본래의 데카르트적 동기가 없다. 즉 이 동기는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유사-회의주의적 판단중지(quasi-skeptische Epoche)의 지옥을 통과해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철학의 천국에 이르는 입구로 밀고 나가 이 철학 자체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려는 것이다." (『위기』 172쪽, 필자의 강조)

*** 후설은 이 절에서 '목적론적 철학사고찰'을 행하는데, 그것은 필자가 보기에 현상학적 해석학의 기초적 면모를 보여준다.

**** 대표적으로『현상학의 이념』, 『데카르트적 성찰』이 있다.

***** 후설의 나머지 데카르트의 해석들에 관해서는 『위기』 16절, 20절, 『데카르트적 성찰』, 『제일철학 I』 등을 보라. 또한 이것은 필자가 곧 집필할 글 「후설의 데카르트 수용과 비판」에서 보충될 것이다.

참고문헌
한전숙, 『현상학』 민음사, 1996
에드문트 후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한길사, 2016


추가로, (다른 부분들도 많이 부실하겠지만) 흄에 관한 설명에서 특히나 많이 부실한 것 같은데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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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에 대한 서술이 좀 모호하네요. 흄은 relations of ideas 와 matters of fact를 구분하고,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서의 수학이나 논리학은 선험적이고 필연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수학의 허구성"이 수학 자체의 명증성과 관계하는 것이라면, 흄은 "수학의 허구성"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수학적 관계(선험적/필연적 관계)를 matters of fact에 적용할 "근거"에 대해서 회의했던 것이죠.

흄의 태도가 왜 "자기모순"인지가 저로서는 불분명합니다.

  1. 연상적 작용이 초월론적 인식작용인가?
    초월론적 작용이 만약 칸트적 의미의 transzendental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초월론적 작용은 단순히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규칙"의 수준이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필연적이고 선험적인 규칙"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흄이 주장한 연상적 작용은 우연적이고 경험적인 규칙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흄의 연상적 작용은 (칸트적 의미에서의) 초월론적 작용이 아닙니다.

  2. 흄의 앎도 결국 허구인가?
    흄의 앎도 matters of fact에 속할테니 경험적이고 우연적인 영역에 속할테고 따라서 허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흄은 이에 대해서 "그래, 근데 그게 뭐"라고 답할 겁니다. 즉 흄의 앎을 포함하여 모든 객관적 앎이 경험적이고 우연적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죠. 즉 명증적인 앎을 궁극적 목표로서 지향하는 후설에게는 이것이 "자기모순"처럼 보이겠지만, 판단중지를 주장했던 퓌론주의자들과 흄은 이러한 회의주의적 결론을 자기모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자기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사람이 이미 "논리적/선험적/필연적"인 확실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뿐인 것이죠.

끝으로 흄의 회의주의를 "객관적 인식의 파산"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논쟁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의 경향에서는 (특히 비트겐슈타인 해석 전통과 연결되어) 흄을 오히려 (회의주의자에 대항하여) 인간의 자연적 믿음을 옹호한 자연주의자로 묘사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즉 설사 인간의 자연적 믿음을 근거지을 "철학적 논변"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이 관습과 정서의 자연주의적 수준과 연결되는 한에서, 그러한 회의주의가 idle할 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즉 설사 귀납의 "철학적 근거"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자연적인 수준에서 기꺼이 귀납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cf. Strawson, P. F. (1985). Skepticism and naturalism: Some varieties . Columbia University Press; Kripke, S. A. (1982). Wittgenstein on rules and private language: An elementary exposition .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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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중지에 대한 언급들의 선별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서론>에서 "판단중지에 대한 언급들을 임의적으로 선별"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선별 기준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그것이 좋은 기준이라고 독자들이 납득되지 않는다면 좀 곤란합니다. 특히 "이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그 의미가 명료해졌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1) 임의적으로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연구자들이 판단중지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 구절들을 선별하고 (2)그에 대한 연구자들 각각의 해석을 비교 검토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것 같거든요. 혹시 상기에 기재하신 언급들이 기존 연구자들이 눈여겨보는 구절들이라면 '임의적'이라는 표현을 바꾸어 글의 건전성을 높이는게 좋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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