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썰 현상학에 대한 Dagfinn Føllesdal의 해석

Dagfinn Føllesdal은 노르웨이 출신의 분석철학자입니다. W.V.O. 콰인의 제자이고, 스탠포드와 오슬로 대학에서 가르쳤고 분석철학자이지만 현상학과 관련된 간(間)학문적 저술을 꽤 남긴 학자입니다. 아래에서 제가 소개하고 의견을 여쭙고자 하는 내용은 푈레스달이 후썰 현상학의 노에마 개념에 대해 설명한 것입니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현상학에 대한 배경이 거의 없이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현상학을 전공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틀렸다고 여기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참고 텍스트는 두 개입니다.
[1] “An Introduction to Phenomenology for Analytic Philosophers”, (1972), Raymond E. Olson and Anthony M. Paul, eds., Contemporary Philosophy in Scandinavia, Baltimore: Johns Hopkins Press, pp. 417-30.
[2] “Husserl’s Notion of Noema”, (1969), The Jorunal of Philosophy 66, pp. 680-87.
( [1]에는 후썰 현상학의 기본 개념들에 대한 푈레스달의 간략한 설명들이, [2]에는 후썰 현상학에 대한 12개의 주장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Main Thesis : Noema는 프레게의 뜻(Sinn) 개념의 확장이다.

푈레스달 본인도 이 주장이 일반적인 해석과 배치된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문헌 근거로 일단 Ideen 3권의 89쪽(Husserliana 판본으로 보입니다.)의 “노에마는 뜻 개념을 모든 행위 영역으로 일반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The noema is nothing but a generalization of the idea of meaning(Sinn) to the field of all acts.)”를 인용합니다.([2], p.681)

푈레스달이 이 주장에 접근하는 방식은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대상/(심적)행위의 지향적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 프레게와 후썰이 각각 도입하는 “뜻”과 “노에마”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프레게는 언어에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고유명은 지시체는 갖지 않지만 뜻은 갖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이름을 유의미하게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푈레스달은 후썰의 노에마가 (심적)행위의 지향적 대상의 부재 문제에 대한 브렌타노의 해결책(배경이 없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의식 대상이 내재적이라고 보는 해결책인 듯합니다.)을 프레게와 유사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봅니다.([1], p.421)
즉, 푈레스달이 그리는 프레게의 도식은
name - meaning(Sinn) - reference(Bedeutung) 이고
후썰의 도식은 act - noema - object입니다.

“각각의 행위는 노에마를 가진다. 이 노에마를 통해 행위는 그것의 대상을 지향한다. 모든 행위가 대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켄타우르스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우리의 행위는 대상이 없는 노에마를 가질 뿐이다.”([1], p.422)

이 정도가 대략의 핵심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제가 참조한 글이 짧은 글인지라 엄밀한 문헌적 접근이나 저런 해석을 받아들여야 할만한 이유가 충분친 않아 보입니다.(대신 『Husserl und Frege』라는 단행본을 낸 적이 있더군요.)
전공자분들께선 이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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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 제안 감사합니다.

#1_Dagfinn Føllesdal의 후설연구자로서의 Credential 문제

Dagfinn Føllesdal은 특히 후설의 Logical Investigations (Hua. XIX)과 관련된 쟁점들을 다룰 때 자주 거론되고는 하는 학자입니다. 가령 6th Logical Investigation의 Categorial Intuition과 관련해 후설이 Conceptualist인지 non-conceptualist인지 여부와 관련된 논쟁에서 Føllesdal의 연구가 자주 거론 및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고는 합니다. 요컨대 Føllesdal은 후설 철학의 중요한 제문제를 다룰 때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연구자로서 크게 (a) 분석적 방법론을 도입한 후설 철학 연구 (b) 분석철학 및 현상학적 기획 간 유사성 및 차이점을 분석하는 연구에 있어 기념비적 업적을 남긴 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_Føllesdal 해석과 관련된 후설철학의 문헉학적 전거들

2.1. 문헌학적 전거에 관하여

Racoon님께서 언급하신 주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후설의 문헌을 제시한다면, 주제 자체는 Logical Inevstigations(Hua XIX)의 5th, 6th Investigation을 들 수 있을테고, Noema라는 용어 해석의 기준점과 관련해서는 Ideas I (Hua III)의 Part 3 Ch.3 §87-95이 해당할 것입니다.

Racoon님의 발제는 연구주제상으로 "논리학의 근본을 정초하는 문제에 관한 프레게와 후설의 공통의 문제 의식과 방법론 상의 유사성 및 차이점을 비교 및 분석"에 해당되고, 이 주제와 연결되어 자주 거론되는 Hua XIX의 기획의도와 관련 맥락에 대한 배경을 잠시 제시하겠습니다.

후설은 1st Investigation에서 우리는 어떻게 의미부여Sinngebung를 하고 또 의미를 파악하는가?라는 문제의식 아래 Zeichen/Anzeichen/Ausdruck, Sinn/Bedutung의 관계를 다룬 이후, 5th, 6th Logical Investigation에 걸쳐 이를 Objectifying act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1st Investigation에서 예비작업격으로 언어적 표현과 의미체계를 구성하는 성분들elements의 관계를 다룬 이후 5th, 6th Investigation에서는 의식적 작용이 이러한 의미체계 구성에 어떻게 관여하는가?라는 문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지요. 후설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은 일차적으로 심리주의 및 경험적 환원주의empiricist reductionism을 극복하는데 있습니다. 철학사적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칸트류의 표상주의 철학과 자연주의적 심리학이 가지는 심리주의적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표상 작용re-presentation을 거치지 않고 의식이 세계와 관계하며 의미내용과 인식에 도달하는 원리를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을듯 합니다. 위와 같은 <논리연구>의 장구한 과정을 거쳐 "현상학은 의식이 세계를 접촉할 때 표상을 경유한 간접적 접촉이 아니라 직접적인 접촉을 기술하는 철학이다"라는 metaphorical or representative statement가 수립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설의 의미론의 큰 뼈대를 제공하는 도식을 든다면, 의미지향(Meaning intention) ㅡ 의미충족(Meaning fulfillment)도식을 들 수 있습니다. 의미지향이란 지향적 의식이 어떤 대상을 의식의 주제적 대상으로 삼는 의식적 작용act을 말합니다. 의미충족은 이러한 지향적 작용이 참Truth 내지 지식Episteme이 되기 위해서 경험적으로 증거evidence하는 대상을 찾는 작용을 말합니다. 후설은 의미지향을 '빈 지향'이라고 자주 말하고는 합니다. 어떤 대상이든 지향적 의식의 대상이 될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식episteme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반드시 경험적 대상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빈 지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해당 의미지향-의미충족 도식은 최초로 Hua XIX에서 제시되기는 하지만, 후설의 내적 비판을 거쳐 여러 문제점을 인정하고 Noema - noesis관계를 바탕으로 한 파악작용-감각내용 도식(Schema Auffassung-Inhalt)으로 정교화 및 수정을 거치게 됩니다.

2.2. 답변자 LeCroissant의 견해

위와 같은 문헌학적 맥락을 미루어볼 때 Føllesdal의 노에마 해석 자체가 큰 문제를 지닌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적이라면 후설이 이념들 1-3권 전반에 걸쳐 노에마 개념을 구성의 다양한 층위와 관련해 논구하는 복잡한 양상들을 가장 광의의 개념적 정의로 한데 뭉뚱그려버린 것으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Føllesdal의 Noema개념 해석이 후설의 텍스트를 왜곡해 전유하고 있다"고 할만큼 벗어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불어 해당 맥락에 한정하여 Føllesdal이 목표로 삼는 것은 어디까지나 프레게와 후설 기획의 유사성을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치명적인 비판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Føllesdal의 해석은 큰 맥락에서 봤을 때 기존의 후설리안 담론 안에서도 충분히 용인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쟁점을 다루는 방법과 목적이라는 구체적인 맥락의 측면에서의 validity를 묻는다면, 논구의 맥락과 과정을 자세히 분석해봐야 할 듯합니다.

P.S. 후설과 프레게의 관계를 다룬 이외의 연구서 서지정보:

  • Cobbs-Stevens, Richard. (1990) Husserl and Analytic Philosophy, Dordrecht: Kluwer Academic Publ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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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Føllesdal의 글을 읽었을 때 의문을 가졌던 부분들이 해소되었고 나아가 후썰의 논리연구에서 다뤄지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또 『Husserl und Frege』는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참고자료 추천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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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격으로 후설 <논리연구>의 문제제기와 guiding questions 그리고 expected philosophical outcomes (overarching aim)과 관련된 기술을 담은 두 문단 분량의 다소간 긴 인용을 해봅니다.

"There is accordingly as much difference of opinion in regard to the definition of logic as there is in the treatment of the science itself. [...] reflected in different definitions of logic, are still disputed, while it is still true, and perhaps more true than ever, that different writers merely employ the same words to express different thoughts. This is not merely true of expositions stemming from different philosophical ‘camps’. The side on which most life is to be found, that of psychological logic, manifests unity of conviction only in regard to the demarcation of the discipline, its essential aims and methods." (Hua XIX, §1).

"The traditionally disputed questions which concern the demarcation of logic are the following:

  1. Is logic a theoretical or a practical discipline (a ‘technology’)?
  2. Is it independent of other sciences, and, in particular, of psychology and metaphysics?
  3. Is it a formal discipline? Has it merely to do as usually conceived, with the ‘form of knowledge’, or should it also take account of its matter?
  4. Has it the character of an a priori, a demonstrative discipline or of an empirical, inductive one?
    [...]
    Since we do not really mean to become involved in these traditional disputes, but rather to clarify the differences of principle at work in them, and to work towards a clarification of the essential aims of a pure logic, we shall proceed as follows: we shall start from the almost universally accepted contemporary treatment of logic as a technology, and shall pin down its sense and its justification. This will naturally lead on to the question of the theoretical foundations of this discipline, and of its relations, in particular, to psychology. This question coincides in essence, in the main if not entirely, with the cardinal question of epistemology, that of the objectivity of knowledge. The outcome of our investigation of this point will be the delineation of a new, purely theoretical science, the all-important foundation for any techn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and itself having the character of an a priori, purely demonstrative science. This is the science intended by Kant and the other proponents of a ‘formal’ or ‘pure’ logic, but not rightly conceived and defined by them as regards its content and scope. The final outcome of these discussions is a clearly circumscribed idea of the disputed discipline’s essential content, through which a clear position in regard to the previous mentioned controversies will have been gained." (Hua XIX, §3).

Hua XIX는 분량도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자 한다면, 원전(독어본 혹은 영문 번역본)을 읽는것보다 Dermot Moran이 논리연구의 핵심내용만 모아서 편집한 The shorter Logical Investigations을 추천드립니다.

편집본과 영문번역전문본 모두 앞에 J.N. Findlay가 Logical investigations를 구성하는 각 연구의 주제와 핵심주장 및 논증을 자세히 요약해놓은 서문격 글이 있는데 후설의 논리연구의 내용에 대한 큰 그림을 직접 살펴보고자 한다면 이를 보는게 효율면에서 훨씬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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