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준적 맥락주의 (캐플란)
표준적 맥락주의: 진리치는 가능 세계와 사용 맥락—화자, 시간, 장소 등—에 의해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예) 문장 A: 나는 존재한다.
이상의 문장은 ‘나’라는 지표어를 포함하는데, 고유 명사와 달리 지표어는 사용 맥락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카리나가 맥락 C1에서 문장 A를 발화한 경우, 문장 A는 <카리나는 존재한다>를 내용으로 갖는다. 반면, 이센스가 맥락 C2에서 문장 A를 발화한 경우, 문장 A는 <이센스는 존재한다>를 내용으로 갖는다.
이상 문장 A의 진리치는 사용 맥락에서는 언제나 참이지만, 평가 상황에서는 참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카리나가 문장 A를 발화했을 때, 언표하는 명제 <카리나는 존재한다>는 모든 사용 맥락에서는 참이다. 하지만 평가 상황이 1926년일 경우, 거짓이다.
2. 내용 상대주의 (혹은 지표적 맥락주의)
내용 상대주의: ‘나’와 같은 대표적인 지표어 뿐 아니라 ‘맛있다’와 같은 취향에 관한 표현 또한 사용 맥락에 따라 내용이 변한다. 예를 들어, ‘맛있다’라는 술어는 ‘x의 입맛에’라는 숨겨진 지표성을 갖고 있는 사용-지표적 표현이다.
x는 사용-지표적이다 =df. x의 **내용(내포)**은 사용 맥락에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예) 문장 B: 에스프레소는 맛있다.
철수가 맥락 C1에서 문장 B를 발화했다면, C1에서 B는 <에스프레소는 철수의 입맛에 맛있다>라는 명제를 언표한다. 반면, 영희가 맥락 C2에서 문장 B를 발화했다면, C2에서 B는 <에스프레소는 영희의 입맛에 맛있다>라는 명제를 언표한다.
그리고 내용 상대주의에 따르면, 문장 B는 사용 맥락에 따라 문장의 내용이 바뀌므로, 진리값 또한 맥락에 따라 바뀐다. 이상의 예의 맥락 C1에서 철수의 입맛에 실제로 에스프레소가 맞으면 문장 B는 참이지만, 맥락 C2에서 영희의 입맛에 에스프레소가 맞지 않으면 문장 B는 거짓이다.
2.1. 내용 상대주의의 문제
내용 상대주의는 이하와 같은 의견의 불일치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예) 대화 A
철수: 에스프레소는 맛있다.
영희: 아니야. 에스프레소는 맛이 없다.
내용 상대주의에 따르면 철수가 에스프레소가 맛있다고 발언했을 때, 그 내용은 <에스프레소는 나, 철수의 입맛에 맛있다>이다. 그리고 영희가 에스프레소가 맛이 없다고 발언했을 때, 그 내용은 <에스프레소는 나, 영희의 입맛에 맛이 없다>이다. 그렇다면 내용 상대주의에 따르면, 철수와 영희는 사실상 의견 불일치 상태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사용 맥락에 따라 사용-지표적 표현을 담은 문장의 명제 내용은 달라지기에, 둘은 서로 다른 명제에 관해서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의견의 불일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용 맥락에 따라 문장의 명제적 내용이 변하지 않아야만 한다.
3. 비지표적 맥락주의
비지표적 맥락주의에 따르면 ‘맛있다’와 같은 취향에 관한 표현은 사용 맥락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사용-지표적 표현이 아니라, 사용-민감적 표현이다.
x는 사용에 민감한 표현이다 =df. x의 외연은 사용 맥락에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사용 맥락은 캐플란이 제시한 가능 세계 및 화자, 시간, 장소와 같은 객관적 맥락 변수에 더해, 취향이나 지식 상태와 같은 주관적 맥락 변수가 포함됨)
예) 문장 B: 에스프레소는 맛있다.
철수가 맥락 C1에서 문장 B를 발화했을 때, 문장 B의 진리치는 사용 맥락 C1을 구성하는 가능 세계와 시간 및 C1에서의 철수의 취향에 의해 결정된다. 반면, 영희가가 맥락 C2에서 문장 B를 발화했을 때, 문장 B의 진리치는 사용 맥락 C2을 구성하는 가능 세계와 시간 및 C1에서의 영희의 취향에 의해 결정된다.
비지표적 맥락주의가 내용 상대주의와 구별되는 지점은 문장 B는 동일한 명제 <에스프레소는 맛있다>를 내용으로 갖는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즉, 문장 B는 문법적으로도 의미론적으로도 동일한 문장이다.
그럼에도 동일한 문장이자 명제는 사용 맥락을 구성하는 화자의 주관적 취향에 따라 진리치가 변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맛있다’는 사용 맥락에 민감한 표현이다.
3.1. 비지표적 맥락주의의 장점
비지표적 맥락주의는 내용 상대주의와 달리 의견 불일치 상황을 잘 설명한다. 대화 A 상황에서 철수와 영희는 <에스프레소는 맛있다>라는 동일한 명제에 관해 의견 불일치를 보이고 있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진리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철수가 ‘에스프레소는 맛있다’를 발화한 맥락 C1에서 그것은 참이고, 영희가 발화한 맥락 C2에서는 거짓이다.
3.2. 비지표적 맥락주의의 문제
비지표적 맥락주의는 사용 맥락에 따라 진리치가 바뀐다는 입장이므로, 일견 상대적 진리 개념을 도입하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비지표적 맥락주의에 따르면 사용 맥락에서 진리치가 영원히 고정되기에, 해당 이론이 받아들이는 진리 개념은 상대적 진리 개념이 아닌 절대적 진리 개념이다. 따라서 비지표적 맥락주의는 진정한 상대주의 의미론이라고 할 수 없다.
4. 평가-민감적 맥락주의 (맥팔레인)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에 따르면 ‘맛있다’와 같은 취향에 관한 표현은 사용-민감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평가-민감적인 표현이다.
x는 사용에 민감한 표현이다 =df. x의 외연은 평가 맥락에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평가-민감적 맥락주의는 한편으로는 취향에 관한 한 문장이 동일한 명제를 언표한다고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내용 상대주의와 다르고, 또 한편으로는 문장/명제의 진리치가 사용 맥락을 구성하는 화자의 취향뿐 아니라 평가 맥락을 구성하는 평가자의 취향에 의해서도 결정되는 것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비지표적 맥락주의와도 다르다.
그리고 평가-민감적 맥락주의는 화자뿐만 아니라 평가자의 취향이 문장/명제의 진리치를 결정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취향에 관한 문장/명제에 상대론적인 진리값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화자와 평가자가 다른 경우에,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에서는 평가자의 취향에 의해서만 문장의 진리치가 달라진다.
4.1.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의 필요성
만일 S가 p라는 명제를 주장했다면, 해당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정당화 혹은 증명할 책임을 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주장에 대해 책임을 귀속시키는 규범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따.
진리 규칙: 맥락 C에서 오직 p가 참일 경우에만 p라고 주장하라.
화행 규칙: 맥락 C에서 오직 p가 참일 경우에만 p라고 주장해야 옳다.
마찬가지로, S가 p라는 명제를 주장했고, 해당 명제가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주장을 철회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철회 규칙: 만일 C1에서 사용한 문장 S가 C2의 관점에서 참이 아니라면, 행위자는 C1에서 했던 자신의 주장 S를 C2에서 철회해야 할 의무가 있다.
비지표적 맥락주의는 철회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평가-민감적 맥락주의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비지표적 맥락주의는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이론이다. 화자 중심적인지 평가자 중심적인지에 따라 구분되는 두 맥락주의 이론 각각이 진리를 정의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철회해야 하는 상황에서 두 이론이 어떤 입장을 내놓는지 알 수 있다.
비지표적 맥락주의: C1에서 사용되고 C2의 관점에서 평가되는 문장 S는 참이다. iff S는 <WC1, SC1>에서 참이다.
평가에 민감한 맥락주의: C1에서 사용되고 C2의 관점에서 평가되는 문장 S는 참이다. iff S는 <WC2, SC2>에서 참이다.
예) 대화 B
(C1) 철수: 에스프레소는 맛있다.
(C2) 2년 후 철수: 나이가 드니까 입맛이 바뀌었다. 에스프레소는 맛이 없다.
비지표적 맥락주의에 따르면 문장 <에스프레소는 맛있다>의 진리치는 언제나 사용 맥락(화자)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따라서 철수는 자신이 C1에서 사용한 문장 <에스프레소는 맛있다>을 평가할 때, C1에서의 자신의 기준 SC1에 따라 문장의 진리치를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C1에서 철수의 기준 SC1에 따라 문장을 평가하면, 해당 문장은 참인 문장이다. 따라서 철수는 C2에서 자신이 C1에서 했던 주장을 철회할 이유가 없다.
반면, 평가에 민감한 맥락주의에 따르면 C2에서 철수가 C1에서 사용한 문장을 평가할 때, 그는 현재 평가 맥락의 기준인 SC2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SC2에 따르면 해당 문장은 거짓이므로, C2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자신이 과거의 맥락 C1에서 했던 주장은 거짓이다. 따라서 철수는 C2에서 자신이 C1에서 했던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
4.2.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박
1.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와 철회 의무는 양립하기 힘든 쌍 아닌가?
진리의 기준이 상대적이라면 하나의 기준에 의해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기준에 의해 참이 될 수 있다. 특히, 취향에 관해 상대적 진리를 인정한다면, 우리와 다른 취향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철회 의무는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와 양립하기 힘든 것 같다.
이에 대해 가능한 반박은 우리는 취향에 관한 문제에서도 철회 의무를 상대에게 요구한다는 점이다. 다음의 일상적 예시를 들 수가 있다. 철수가 <에스프레소는 맛있어>라고 말하고, 영희가 <아니야. 에스프레소는 맛없어>라고 말하는 의견 불일치 상황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때 핵심은 영희가 <아니야>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영희는 <아니야>라고 발화하며 철수로 하여금 그의 관점을 바꾸도록 요구한다.
<아니야>라는 반응이 적절한 반박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으나, 지금 논의의 대상은 사물의 본질이 아닌 화용론적 옳고 그름이다. 따라서 언어 사용자들의 실제 사용 방식은 적절한 근거가 될 수 있다.
2. 평가-민감적 맥락주의는 평가자의 현재 평가 기준이 문장/명제의 진리치를 결정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현재의 평가자 자기중심적인 이론이다.
현재의 평가자 자기중심적인 특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비지표적 맥락주의가 겪은 문제와 동일한 문제를 겪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에 따르면 명제 p는 여러 평가 맥락에서 서로 다른 진리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C1에서 사용되고 Cn에서 평가된 명제 p의 진리치가 Cn에서 고정된다면, 비지표적 맥락주의처럼 절대적 진리 개념을 받아들이는 꼴이 된다.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C1에서 사용되고 Cn에서 평가된 명제가 끊임없이 또 다른 평가 맥락 C#에서 재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평가-민감적 맥락주의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예) 대화 C
(C1) 철수: 에스프레소는 맛있어.
(C2) 영희: 아니야. 에스프레소는 맛없어.
(C3) 철수: 아닌데. 에스프레소는 진짜 맛있어.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에 따르면, 이상의 대화에서 C2에서 영희가 주장하는 바는 <C1에서 철수가 사용한 문장 ‘에스프레소는 맛있다’는 거짓이다>이다. 그리고 C2의 영희 주장을 반박하는 C3의 철수가 주장하는 바는 <C2에서 영희가 사용한 문장 ‘에스프레소는 맛없어’는 거짓이다>이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는 맛없어’는 거짓이라는 주장은 ‘에스프레소는 맛있어’라는 문장이 참이라는 말이고, 이는 곧 C1에서 철수 자신이 사용한 문장이다. 따라서 철수는 C3에서 C2 영희의 주장을 반박하며 C1에서 자신이 사용한 문장이 참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평가-민감적 맥락주의에 따르더라도, 화자는 평가자의 기준에 따른 진리치 부여에 갇히지 않고 회복될 수 있다.
참고문헌: 오은영. "상대적 진리에 관한 맥팔레인의 화용론적 의미론에 관한 고찰." 철학논집 (2021): 133-172.
관련문헌: MacFarlane, John, "The Assessment Sensitivity of Knowledge Attributions"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