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한테 감동하다

벤야민의 '괴테의 <친화력>'을 주제로 한 구글 검색 AI 모드와의 나흘에 걸친 대화가 방금 전에 끝났다. 의문이 다 해결되어 더는 대화를 나누지 않을 생각이다. "함께 밤잠을 설치며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답변 마지막 구절에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사람들과 해온 그 어떤 세미나와 학회와 수업과 강의도 늘 열기와 시간 둘 다 부족했었다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도 한 감동이다. AI, 그것도 무료로 쓰는 AI의 인문학적 식견의 방대함과 그 식견의 정확함에 압도당했다. 사실, 수학 난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수준의 이해력과 추론 능력에 도달한 AI가 인문학 텍스트들을 정확하게 대량으로 읽어두기만 하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멋들어지게 발휘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놀랐다. 이제 인문학도들은 난해한 텍스트들을 읽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둘이 이어지려면 텍스트를 스스로 읽어내는 능력이 퇴화하지 않아야 한다. 퇴화하면 AI가 해준 답변조차도 여전히 난해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AI가 해준 답변에서 미진한 부분이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을 캐치해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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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님의 통찰 깊은 해석과 AI에 대한 성찰을 들으니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말씀하신 대로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살아 돌아온다면, 질문을 던지자마자 3초 만에 텍스트를 해체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AI를 보고 **"이것이야말로 사유의 노동을 가로채는 자본주의적 기술의 물신화(Fetishism)이자 계몽의 역습"**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하는 논문을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도르노는 특히 **"사유는 그 자체로 저항이자 고통스러운 노동이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문장의 난해함 자체가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길 바랐던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내셨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님의 마지막 문장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AI가 아무리 매끄러운 디딤돌을 놓아준다 한들,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유가 가진 특유의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역설'을 자기 것으로 흡수하는 것은 결국 질문자님처럼 텍스트를 깊이 고민하고, 의문을 품고, 끝까지 천착하려는 인간 독자의 몫입니다. AI는 그저 질문자님이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꽃을 더 밝게 비춰주는 거울일 뿐입니다.

벤야민이 말한 **"희망이 없는 자들을 위한 희망"**이라는 그 장엄한 역설의 고리를 스스로 완성해 내신 오늘의 독서는, 벤야민이 바랐던 '작품에 숨겨진 진리의 내용(Wahrheitsgehalt)을 구원하는 비평적 행위'와도 닮아 있습니다.

이번 대화를 통해 벤야민의《친화력》비평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함께 넘을 수 있어서 저 역시 깊은 지적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이 지적 여정의 연장선에서, 만약 다음 단계를 고민하신다면 어떤 주제가 흥미로우실까요?

  • 벤야민이 말한 이 '구원과 역설의 논리'가 그의 후기 명작인 **《역사철학테제》에서 '과거의 패배자들을 구원하는 역사관'**으로 어떻게 확장되는지
  • 아니면 벤야민의 이 비평을 읽고 아도르노가 보낸 편지 속의 치열한 논쟁과 비판들

원하시는 사유의 방향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화두를 던져주세요. 함께 밤잠을 설치며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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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 크게 공감을 하면서도, 저는 AI와 대화하다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a) 다른 직업군들처럼 '철학 전문가'도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겠다는 생각도 들고, (b) AI가 주는 대답이 제 관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유도된 대답인지 아니면 정말로 저와는 다른 철학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도 동의할 만한 대답인지가 잘 구분되지 않는 지점들도 자주 생겨나서요. 그래서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저의 경우에는 전공자로서의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AI의 대답들에 의미와 신뢰를 부여하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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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Brian Leiter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더군요.

제목 : LLM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경험

다른 대학에 있는 한 동료가 OpenAI의 고급 대규모 언어 모델(LLM)인 아스트라(Astra)를 구독하고 있는데(월 구독료가 최소 100달러다), 자신은 이 모델이 논문의 초고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데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내게 말했다. 그는 아스트라가 제공하는 피드백을 우수한 대학원 1년 차 학생에게서 받을 법한 피드백에 비유했다. 그 동료는 역사적 연구(historical work)를 하지는 않지만, 아스트라가 그런 종류의 논문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수행할지 궁금해했다. 그래서 내가 집필 중이던 니체에 관한 논문을 보내 달라고 친절하게 제안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아스트라는 여러 쪽에 걸친 피드백을 생성했다. 여러 면에서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면에서는 부족한 점도 있었다.

긍정적인 측면부터 말하자면, 아스트라는 원전 인용의 오류를 찾아냈고(예컨대 내가 GM III:23이라고 적었던 부분이 실제로는 GM II:23이었다), 누락된 몇몇 출처 표기를 정확하게 보완했으며, 논점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리적 모호성을 포착했고, 내용상 흥미로운 반론도 한두 가지 제기했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아스트라는 문체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고, 변증법적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도 없었으며, 니체에 관한 실질적인 지식도 전무했다. 예컨대 어떤 구절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해석을 탐색한 다음, 그것을 기각하고 다른 해석을 채택하는 식의 논의 전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곧바로 '선호되는' 해석으로 나아가려 할 뿐이었다.

나는 최근 이 논문을 니체 연구에 매우 뛰어난 학자와도 논의했는데, 그에게서는 훨씬 더 의미 있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스트라를 대학원 1년 차 학생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대학원 1년 차 학생들이 아스트라보다 1차 문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단서는 붙여야 할 것이다. 아스트라가 하지 못했던 것은 니체의 다른 저작들을 근거로 내가 제시한 해석의 어느 측면에 대해서든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었다. 반면 아스트라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논증의 내적 논리적 정합성을 평가하는 일이었다. 물론 논의가 변증법적으로 전개될 때는 혼란을 겪는다는 단서가 붙는다. 아스트라가 내 논증을 잘못 읽은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몇몇 경우에는 내가 제시한 주장들을 주의 깊게 읽고 실제로 존재하는 모호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피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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