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현재는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철학 공부도 겸하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우연히 제가 사용하는 AI가 뭐가 있고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공유해 볼 겸, 이 포럼의 구성원 분들의 사용법 공유도 되면 좋을 것 같아 한 번 잡념을 써봅니다. 일단 제가 유료로 쓰고 있는 AI 툴은 다음과 같습니다.
- ChatGPT(Plus 요금제)
- Claude(Pro 요금제)
- Perplexity(유료 요금제)
그 외에 무료로 가끔씩 사용하는 AI 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Gemini AI (구글 기반 AI)
- ReseachFlow (논문 기반 탐색 AI)
보통 제가 쓰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본 베이스는 ChatGPT(혹은 Claude)에게 질문을 시작합니다.
- ChatGPT에게서 받은 답을 보고서 Claude와 Perplexity에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이상한 부분을 비판적 의견을 가미해서 질문
- 위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추가적인 AI tool을 사용(Gemini AI 및 ResearchFlow)
본론
1. ChatGPT에게 질문 및 질문 내용
"롤랑바르트, 하얀 방을 통해서 본 생성형이미지 고찰"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모친 사진을 보면서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존재-했음(ça-a-été)"이다. 사진은 그것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생성된 사진, 만들어진 사진을 비롯한 여러 사진, 이미지는 "그곳에-존재-했는가?"라는 의문형으로 변했다. 푼크툼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코드로 해석된다. 스투디움은 이제 더이상 개인의 주관에서 벗어나, 개인의 통제권을 넘어섰다.
위의 글은 내가 쓴 내용이야. 여기서 정말로 생성형 이미지에서 푼크툼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코드로 해석될까? 생성형 이미지에서 롤랑바르트의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느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이러한 생성형 이미지가 다시 소비되어 의미를 가지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의미 소비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급조해서 제가 예전에 쓴 글을 인용하고 변주를 줘서 한 번 질문을 던졌습니다. 답변은 다음과 같이 왔습니다.
답변 내용 일부
네가 쓴 글에서 출발한 질문을 하나씩 세부적으로 다뤄보자.
1.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이 생성형 이미지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코드로 해석되는가?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이야기한 푼크툼(punctum)은 개인의 내밀한 기억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예기치 않은 이미지의 세부 요소다. 푼크툼이 성립하는 근본적인 전제는 “그것이 존재했음(ça-a-été)”이라는 사진의 본질적 속성이다. 즉, 사진에 찍힌 대상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성에서 오는 감정적 울림이다.
그러나 생성형 이미지는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는 이미지다. 그러므로 생성형 이미지를 볼 때, 푼크툼의 전제 조건인 사실성의 지반이 붕괴된다. 여기서 푼크툼은 **“신뢰할 수 없는 코드”**로 해석될 수 있다는 네 주장은 타당하다. 즉, 전통적인 사진에서의 푼크툼은 실재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생성형 이미지에서는 실재와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으므로 푼크툼의 진정성은 흔들리게 된다.
다만, 생성형 이미지에서도 유사 푼크툼(pseudo-punctum) 이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은 실제가 아닌, 상상의 실재성에서 오는 감정적 공명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성형 이미지에서의 푼크툼은 더이상 바르트가 말한 “실재성에서 기원하는” 푼크툼이 아니라, 환영이나 환상에서 비롯된 푼크툼으로 재정의 될 가능성이 높다.
무언가 유사 푼크툼(pseudo-punctum)이라는 단어가 꺼림직 해서 이 내용을 크로스 체크를 해보려고 합니다. Claude와 Perplexity에 비슷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2. Claude와 Perplexity에 질문 및 반문 요청
"롤랑바르트, 하얀 방을 통해서 본 생성형이미지 고찰"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모친 사진을 보면서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존재-했음(ça-a-été)"이다. 사진은 그것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생성된 사진, 만들어진 사진을 비롯한 여러 사진, 이미지는 "그곳에-존재-했는가?"라는 의문형으로 변했다. 푼크툼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코드로 해석된다. 스투디움은 이제 더이상 개인의 주관에서 벗어나, 개인의 통제권을 넘어섰다.
위의 글은 내가 쓴 내용이야. 여기서 정말로 생성형 이미지에서 푼크툼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코드로 해석될까? 생성형 이미지에서 롤랑바르트의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느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이러한 생성형 이미지가 다시 소비되어 의미를 가지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의미 소비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누군가가 답변해 줬는데, "생성형 이미지에서도 **유사 푼크툼(pseudo-punctum)**이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은 실제가 아닌, 상상의 실재성에서 오는 감정적 공명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성형 이미지에서의 푼크툼은 더이상 바르트가 말한 “실재성에서 기원하는” 푼크툼이 아니라, 환영이나 환상에서 비롯된 푼크툼으로 재정의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어, 근데 유사 푼크툼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용어일까?
위와 같이 질문을 작성하고 Calude와 Perplexity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Perplexity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달았습니다. "실제 논문으로 나와있거나 롤랑바르트의 책에 있는 경우만 찾아줘"라고요.
Claude 답변
롤랑 바르트의 이론과 생성형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주셨네요. 이 주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해 보겠습니다.
생성형 이미지와 푼크툼의 관계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 개념은 사진에서 우리를 "찌르는", 개인적으로 감동을 주는 우연적 요소를 말합니다. 반면 스투디움(studium)은 사진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오는 일반적 관심을 의미합니다.
생성형 이미지에서 푼크툼은 전통적 의미와는 다르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 생성형 이미지는 "그것이-존재-했음(ça-a-été)"의 지표성을 결여합니다. 바르트에게 사진의 본질은 실재했던 것의 증거였지만, AI 생성 이미지는 이러한 실재의 증거가 아닙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형 이미지에서도 우리를 정서적으로 "찌르는" 요소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재가 아닌 "가능했을 실재"에 대한 정서적 반응입니다.
"유사 푼크툼(pseudo-punctum)"이라는 용어는 학술적으로 정립된 용어는 아닙니다. 이는 귀하가 언급한 응답자가 바르트의 개념을 생성형 이미지 맥락에 적용하기 위해 제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기존 이론을 확장하여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생성형 이미지에서의 스투디움과 푼크툼
생성형 이미지에서 스투디움은 오히려 더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 생성형 이미지는 기존 문화적 코드와 시각적 규범을 학습하여 생성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화적 스투디움의 집약체입니다.
- 개인의 통제권을 넘어섰다는 귀하의 관찰은 정확합니다. AI 생성 시스템은 수많은 이미지를 학습하여 만들어지므로, 개인의 의도를 넘어서는 문화적 코드를 재생산합니다.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본 생성형 이미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 이론은 생성형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특히 유용합니다:
- 생성형 이미지는 원본 없는 복제본, 즉 시뮬라크르의 궁극적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실재에 기반하지 않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이미지입니다.
- 이러한 이미지가 다시 소비되고 의미를 가지는 과정은 보드리야르의 "초현실(hyperreality)" 개념과 연결됩니다. 실재와 이미지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태에서,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실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 생성형 이미지의 소비는 보드리야르가 말한 "기호의 소비"의 새로운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재가 아닌, 실재의 가능성을 소비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생성형 이미지에서 푼크툼은 더 이상 실재의 증거로서가 아니라, 가상 또는 가능성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정서적 반응으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사진 이론을 확장하고 재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Perplexity 답변
Perplexity의 Deep Research를 사용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관점에서 본 생성형 이미지와 푼크툼의 관계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국내에서는 『밝은 방』으로 번역)에 등장하는 '푼크툼'과 '스투디움' 개념을 생성형 이미지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이론적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유사 푼크툼(pseudo-punctum)'이라는 개념이 실제 바르트의 저술이나 학술 문헌에 존재하는지를 중심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바르트의 푼크툼과 스투디움 개념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제시했습니다. 스투디움은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는 사진의 일반적 관심 영역이며, 푼크툼은 사진 속에서 우리를 "찌르는(pierce)" 개인적이고 우연적인 세부사항을 의미합니다.
푼크툼은 "특정 세부사항이 관심을 끄는 사진의 특정 지점으로, 상징적 표현 체계를 사용하지 않고도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됩니다[7]. 중요한 것은 푼크툼이 "사진 속에 예상치 못하게 등장하며 사진작가의 통제를 벗어나는 특정 디테일에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7].
'유사 푼크툼(Pseudo-punctum)'의 실재 여부
제공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유사 푼크툼(pseudo-punctum)'이라는 용어는 롤랑 바르트의 원저작이나 학술 문헌에서 직접적으로 사용된 용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검색 결과[8]에서는 바르트가 사진이 "과거를 재생시키지만 동시에 감상자들에게 상실감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유사 현존(pseudo-presence)'과 '부재의 징표(token of absence)'로 작용한다"고 언급한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유사 현존(pseudo-presence)'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만 '유사 푼크툼'이라는 용어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또한 검색 결과[6]에서 '가성 눈물흘림(Pseudo epiphora)'이라는 의학 용어가 언급되지만, 이는 바르트의 이론과는 관련이 없는 안과적 상태를 설명하는 의학 용어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푼크툼
검색 결과[2]에 따르면, "디지털 이미지 제작으로의 전환은 바르트의 푼크툼을 없애버린다: 사진을 목격자로, '그것이 존재했음'의 증거로 신뢰할 권리를 없앤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필름 시대에는 사진이 기록으로 가치가 있었고,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반면, 디지털 시대에는 이미지의 실재성이 의문시되기 때문입니다[2].
국내 연구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푼크툼의 운명"이라는 주제로 논문이 발표된 바 있으며[13], "디지털이미지에서도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은 존속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과 바르트의 푼크툼 개념이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변화하는지 고찰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이미지와 푼크툼의 관계
생성형 이미지에서의 푼크툼 문제는 디지털 이미지의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검색 결과[13]의 논문 요약에 따르면, "사진이 코드에 의해 구상된 것이지만, 사진에서 떨쳐버릴 수 없는 실재성을 하나의 흔적, 인덱스(유사 관계가 아닌)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디지털 이미지와 관련하여 한 연구는 "가상과 실재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디지털 매체에서도 과거의 실재에 기반을 둔 푼크툼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13]. 이는 생성형 이미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질문입니다.
결론
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유사 푼크툼(pseudo-punctum)'이라는 용어는 바르트의 원저작이나 기존 학술 문헌에서 직접 사용된 용어는 아닌 것으로, 아마도 디지털 및 생성형 이미지 시대에 푼크툼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누군가가 제안한 용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성형 이미지에서의 푼크툼 가능성에 대해서는 검색 결과[13]의 결론이 의미심장합니다. "푼크툼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매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푼크툼의 본질이 인간의 인지와 경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시사합니다[13].
따라서 생성형 이미지에서의 푼크툼은 바르트가 처음 정의한 것과는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나, '유사 푼크툼'이라는 용어 자체는 바르트의 원저작이나 주요 학술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 새로운 제안으로 보입니다.
출처
[1] Roland Barthes: Studium & Punctum - Studio Q Photography Roland Barthes: Studium & Punctum — Studio Q Photography
[2] The Barthian Punctum is Dead. Digital Killed It. - Leicaphilia https://leicaphilia.com/the-barthian-punctum-is-dead-digital-killed-it/
[3] Supernumerary Punctum With Its Own Distinct Canaliculus - PubMed Supernumerary Punctum With Its Own Distinct Canaliculus - PubMed
[4] Roland Barthes : The Image and the Imaginary - PoPuPS PoPuPS | Roland Barthes : The Image and the Imaginary
[5] 디지털 이미지 시대의 푼크툼(Punctum) 표현방법 연구 디지털 이미지 시대의 푼크툼(Punctum) 표현방법 연구
[6] 눈물 흘림.. 진짜 눈물 흘림과 가짜 눈물 흘림?? - 아그점빵 눈물 흘림.. 진짜 눈물 흘림과 가짜 눈물 흘림??
[7] In Photography, the Punctum Is a Detail that Attracts your Attention In Photography, the Term "Punctum" Refers to a Detail that Captures your Attention
[8] Framing the Façade: Studium and Punctum in Architectural ... Framing the Façade: Studium and Punctum in Architectural Photography — Margot Note Consulting LLC
[9] 롤랑 바르트의 스투디움과 푼크툼, 그리고 랑시에르 - 멀티튜드 롤랑 바르트의 스투디움과 푼크툼, 그리고 랑시에르
[10] [PDF] READING 'STUDIUM' AND 'PUNCTUM' IN STEVE MCCURRY AND ... https://kirj.ee/public/trames_pdf/2017/issue_1/Trames-2017-1-33-50.pdf
...
Perplexity도 유사 푼크툼은 확인되지 않은 표현으로 보여주는군요. 개인적으로 Perplexity를 애용하는 이유 중 하나가 - 실제 참고자료의 정확도는 어떤지 몰라도 - 자신이 어떤 레퍼런스를 가지고 이 글을 보여주는지에 대해 잘 보여줘서 좋아합니다.
결론
아무튼 이런 식으로 저는 여러 모델을 써가면서 크로스 체크하고 필요한 부분이나 유용한 부분을 취사 선택해서 저만의 사고?에 녹여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