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제 1장 (2)


(출처: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p.71)

2. 앎의 바탕 구도

여헌이 위와 같은 태도로 학문을 하며 생각해낸 방법을 저자는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하였다.

① 우리는 우주 내의 존재물들을 관찰함으로써 그것에 적용되는 변화의 원리(理)를 찾아낼 수 있다.

② 이렇게 얻어진 변화의 원리를 활용하면 그 존재물의 현재 상태를 확인함으로써 그것의 과거 상태와 미래 상태를 산출해낼 수 있다. (예측적 앎)

저자는 근대 과학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개념이 더 요구된다고 말한다. 하나는 어떠한 존재물을 지정했을 때 이를 특징짓는 존재물의 ‘특성’ 을 나타낼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특성을 지닌 존재물의 ‘상태’ 를 나타낼 개념이다. 예를 들어, “돌이 날아간다”고 할 때 돌의 특성을 지칭할 개념과 돌의 운동을 지칭할 개념이 구체화되어야 의미 있는 서술 및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헌도 이러한 개념이 필요하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기는 했을 것이라 저자는 추측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재구성해서 저자는 71쪽에 나온 바와 같이 ‘앎의 바탕 구도’를 정리하였다. 여헌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 추정되는 ‘상태’ 개념을 통해서 ‘처음 상태’와 ‘나중 상태’를 전제하고,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할 수 있는 변화의 원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론을 찾는다. 안타깝게도 여헌은 구체적인 이론을 찾는 것까지는 이루지 못했지만 인생의 후반부에 수학의 중요성을 예견하며 후대에 나머지 일을 맡기고자 했다.


(출처: EBS 특별기획 통찰(洞察) - 자연과 인간의 통합적 이해 - 자연 이해의 바탕 관념_#001 - YouTube (EBS 특별기획 통찰(洞察) - 자연과 인간의 통합적 이해 - 자연 이해의 바탕 관념_#001))

3. 대지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 : 차원 개념의 진화

저자는 <우주설>이나 <답동문>에 나온 한 가지 흥미로운 구체적인 논의를 이야기한다. “대지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원초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직관과 유사하다. '대체 왜 그 커다란 지구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면서 떨어지지 않는 거지?' 아주 어렸을 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중력’, ‘만유인력’ 개념을 학습하면서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졌을 뿐인 것이다. 저자는 여헌이라는 고전을 통해서 바로 이러한 질문을 생생하게 느끼고 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과 답을 생생하게 느껴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를 통해서 '공간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꽤나 형이상학적이면서도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대한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다루기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질문 등을 다루면서 우리가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었던 바탕 관념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서 전제하고 있는 바탕 관념 혹은 관념 체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소 철학적이기만 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형이상학적 질문은 현실의 구체적인 과학적 문제와 대면하면서 서로 긍정적인 상보적 관계를 이루어 더욱 괜찮은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특히 이번에 다루는 질문은 우리가 공간을 몇 차원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사실 공간을 각각의 동등한 3차원으로 본다면 위와 같은 질문("대지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은 나올 수 없다. 3차원으로 본다는 것은 앞뒤, 좌우, 상하 세 가지 방향 축을 각각 대등한 것으로 보는 입장인데, 이를 받아들이면 앞뒤나 좌우 방향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데 유독 상하 방향으로만 낙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것이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17세기 뉴튼의 고전역학에서 바라보는 기본적인 공간 관념이다.

이와 달리 여헌을 비롯한 그 이전 사람들은 서로 대등한 앞뒤 방향과 좌우 방향이 2차원을 이루며, 상하 방향은 이들과 대등하지 않으므로 별도의 1차원을 이룬다고 보는 입장에 해당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2+1)차원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념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공간 직관에 해당할 것이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앞뒤로 움직이는 것과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필요한 힘의 차이가 유의미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상하로 움직이는 것은 중력의 개입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헌은 <답동문>에서 이러한 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사유를 전개했기 때문에 “대지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만약 여헌이 이러한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면, 기존의 공간 개념을 버리고 3차원 혹은 여타의 공간 개념을 고안해냄으로써 우리만의 자생적인 과학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구의 과학 체계가 우리에게 유입되어 답을 제시하기까지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이러한 고민을 품고, 즉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동아시아에서 과학 혹은 더 나아가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품고 제 10장까지 읽어나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4. 책을 읽는 관전포인트

저자가 책에서 명시적으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구두로 책을 읽을 때 염두에 두며 읽기 좋은 관전포인트 두 가지를 언급한 바가 있다.

① 위 '앎의 바탕 구도' 사진에 있는 '이론이 들어설 자리'에 어떤 변화의 원리로써 이론이 채워져나갈 것인지 기대하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② 마찬가지로 위 '앎의 바탕 구도' 사진에 있는 "대지는 왜 안 떨어지나?", '사방 2차원, 상하 1차원, 시간 1차원' 등과 같은 차원 개념이 어떻게 진화해나갈 것인지 주의해가며 읽어가도 좋을 것이다.

<심학 제1도>에서는 여헌의 문제의식을 통해서 '앎의 바탕 구도'의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즉, 우리가 자연에 대한 탐구를 위해 어떠한 학문적 태도와 방법론을 가져야 할 지, 그리고 차원에 대한 바탕 관념을 어떻게 가져왔고 혹은 어떻게 가지는 것이 더 좋을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바탕으로 책을 읽는다면 각 장을 펼쳐 읽을 때마다 조금이나마 더 쉽고, 흥미롭고, 유익하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음 장부터는 데카르트와 뉴턴으로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이론들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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