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학 1』, 1부 1장, 요약




기독교 신학 I
김균진 저


제 1부.「신학의 기본적인 문제들」


제 1장. 신학은 메시아적 학문이다 – 신학의 메시아적 본질과 신학의 주제 –



[신학사史 개괄: 신학의 시대별 모습, 학문 영역]

신학의 학문 영역은 시대에 따라 확장되었다.
시기별로는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 철학 (신론) > 초대 교회 (양성론, 삼위일체론) > 중세 (교의학) > 근대 (신앙론) > 현대

교의학, 신앙론의 차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교의학"
– 외적 권위(교회)를 토대로 교리의 객관적 논리를 기술함
– 계시의 객관적 현실로부터 출발함
– 신의 초월성을 강조함
– 교회의 교리를 기술함

"신앙론"
– 신에 대한 절대 의존의 감정을 기술함
– 인간의 주관적(종교적) 체험으로부터 출발함
– 신의 내재성을 강조함
–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기술하려함

"교의학 ↔ 신앙론"
외적 권위 ↔ 내적 감정
계시, 객관적 현실 ↔ 영접, 주관적 체험
초월성 ↔ 내재성
교회의 교리 ↔ 교인의 신앙

즉, 신학은 신에 대한 논변이라는 의미에서 '신론'에서 시작했다. 시기별로 "고대 그리스 (신론) > 초대 교회 (양성론과 삼위일체론) > 중세 (교의학) > 근대 (신앙론) > 현대"에 따라 신학의 영역은 점점 더 증대 및 분화되었다. ¹

저자는 신학사史에 대한 개괄로 시작함으로써 신학을 본격적으로 정의내리기 앞서 신학의 시대별 다양한 형태와 주제를 포괄할 것을 유도한다.


[신학: 메시아적 학문으로서의 신학]

신학은 '신론'을 넘어 '신에 대한 학學'으로서 '신'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이후의 내용은 그러한 신적 본질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가능하며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신은 사랑이다 (요일 4:8, 16)"를 중심으로 사랑을 새로운 생명의 세계에 대한 약속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성서 구절들 ² 을 가져온다. 저자는 성서의 권위에 대한 개신교적 전통sola scriptura에 충실하되, 이를 메시아적 세계의 도래라는 사건의 시간성, 구원의 '현재와 미래의 변증법'으로서 설명한다.

'성서에서 약속된 신의 나라/하나님 나라Gottesreich'로서 '메시아적 세계', 이처럼 저자는 '메시아'라는 단어에서 구원의 예감, 희망을 감지하며 이를 신학의 핵심적 어휘로 삼는다. 메시아; '신은 늘 구원하는 신'이며 따라서 신학은 그러한 '늘 구원하는 신'에 대한 학문이다.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은 이러한 메시아적 성격, '메시아성'을 늘 지니며 메시아적 세계의 도래에 대한 희망(기다림)을 품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메시아적 세계에 대한 희망을 지평으로 바라보는 '메시아적 지평'을 지니며, 신학은 이런 도래할 메시아적 세계의 희망에 대한 학문으로서 "선취적 학문antizipatorische Wissenschaft"이며 신학의 언어는 "종말론적 언어" ³ 로, 따라서 '메시아적 학문'이라 말할 수 있다.

신의 메시아적 본질메시아적 세계라는 목적인telos을 향한다. 이는 구원에 대한 통속적 이해인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이 아니라 '피조세계 자체의 구원'이다. ⁴ 즉, 신은 '메시아적 지향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신학은 늘 생동하는 현실들의 개별적 사건들과의 연관을 맺는 "상황신학"이다. "무시간적/초시간적 신학"은 애초에 성립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신학의 주체: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안셀무스Anselmus에 의하면 신앙은 곧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 이다. 어떤 신앙인이던지 그는 '인식하는 바를 신앙'하고 '신앙하는 바를 인식'한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신앙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신학적 작업의 과정 속에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태도는 이미 신학적 태도인 셈이다. ⁵

따라서 신학의 주체는 특정 연구자, 연구집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다. 신학자는 신앙인들의 태도를 보다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대리하는 전문직일 뿐이다. 즉, 신학적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근본적 태도이다. 이러한 메시아적 세계에 대한 희망/기다림이라는 태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학문이 신학인 것이다. ⁶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메시아적 지평 위에 있기 때문에 기초적(근본적)으로는 모두 신학자이다. 그러므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신앙을 실천하는 것과 동떨어진 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신앙과 신앙의 실천에 있어 권장될 만한 일이다.


[각주]

1. 『조직신학입문』(이신건 作) 에선 교의학의 본격적인 대두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교부로의 회귀'를 주장하면서 기존의 교의/교리dogma가 '그들은 실제로 교부들의 가르침과 어느 정도나 부합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의학dogmatik이라는 용어 자체는 루카스 라인하르트Lukas Leinhart가 1659년에 최초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교의학의 내용은 아주 오래 전부터(오리게네스 이래) 늘 존재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2. '출 3:8', '삼하 7:8–16', '계 21:1–4' 참조.

3. 신학의 언어는 "자신이 지시하는 대상을 종말론적 차원에서 표현함으로써 현실을 근본적으로 상대화(부정)하며 변혁(긍정)을 이루어가는 주체적인 언어"다. (황돈형 2008, 92)

4. 저자는 피조세계에 대한 신의 관심이 경전 내에서 표현되어있다고 말한다. '출19:5', '시24:1' 참조.

5. 전통적으로 계시와 이성 사이의 조화는 신학의 핵심 주제였으며, 오컴 이래로 그것이 경시되는 풍토가 생겼다. 그러나 해석이란 이해에 있어 근본적이고 유일한 방법으로, 신앙인의 신앙 또한 그런 해석학적 차원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6.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겸손이란 오히려 스스로의 신앙이 이미 해석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그런 사실을 신앙 생활의 진리로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겸허한 태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이라는 말을 단순히 모든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통합하고 테두리짓는 종결적인 일자로 바라볼 수 있다고 여겨선 안된다.


[정리]

저자에게 '메시아적'이라는 수식어는 '(성서에서) 약속된 신의 나라Gottesreich'에 대한 희망의 차원을 포괄한다. 그렇게 신학은 '메시아적 세계'의 도래라는 관점 속에서 이론과 실천을 연구한다.

피조세계 대한 신의 관심과 사랑은 '메시아적 본질'로, 기독교는 이러한 '메시아적 본질'에 대한 이해를 주축으로 한다는 점에서 '메시아성'을 가진다고 말해진다. 저자는 이러한 '메시아성'을 통한 학문적 탐구를 신학이라고 본다. 메시아적 세계를 탐구하고 그 도래에 있어 인간의 이론적–실천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신학의 역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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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개성이 강한 책이네요! ‘메시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신학 사상 전체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처음 봅니다. 저 시리즈가 김균진 교수님의 조직신학적 작업들을 하나로 묶어 정리한 책인 줄 알았는데, 단순한 논문집이 아니라 김균진 교수님 본인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저서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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