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비극론 (Young 2013 中) & 안티고네 독해

줄리언 영은 자신의 책 『신의 죽음과 삶의 의미』의 <후기 니체>에서 니체의 자기 정초 부분을 설명하면서, 그가 일반 예술[드라마]가 아닌 그리스 비극[Greek tragic drama]를 참고하라고 말했다고 옮긴다. 그리고 그 이유가 심리학적 복잡성의 유무의 차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영은 자신의 이전 책 『THE PHILOSOPHY OF TRRAGEDY』을 참고하라면서 <니체> 파트가 아닌 <헤겔> 파트를 지목한다. 그리스 비극을 서정시와 서사시와 구분하는 것과 전자를 후자들보다 높이 사는 면모는 니체와 헤겔 모두에게서 동일하다. 이에 더해 영은 이 구분의 원인 또한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 듯하다. 즉, 니체와 헤겔 모두에게서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Idée fixe의 화신"인 반면, 서정시와 서사시의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구별한다고 영은 주장하려는 것이다. 다음 글은 J. Young, 2013의 <헤겔> 파트 일부의 요약본이다.


헤겔의 주된 관심은 흄과 같은 사람들이 관심 가진 비극이 청중에게 주는 효과가 아니라, 그것의 내적 구조이다. 그에 따르면 비극의 구조는 변증법의 구조를 띄고 있다. 비극 구조에 관한 그의 논의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인륜성(ethical substance)' 1), '비극적 갈등', '비극적 결함이 있는 비극 영웅', '비극적 화해'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앞의 셋만 다루고 '비극적 화해'를 포함하여 '카타르시스론', '근대 비극' 등에 관한 헤겔의 비극론은 추후에 정리한다.

  • 인륜성

헤겔에 따르면 그리스 비극의 주제는 인륜성이다. 인륜성이란 공동체의 공유된 에토스를 의미하는데, 에토스란 공동체를 공동체로 정립하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좋은 삶의 기반에 대한 공유된 개념이 부재한다면 사회는 존재할 수 있어도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인륜성은 『정신현상학』에서 불문법인 신적 법칙(unwritten, divine law)와 인간적 법칙(human law)의 결합으로 제시되는데, 안티고네와 클레온이 그것의 전형이다. 이는 후에 『미학강의에서 다시 제시되는데, 분리되어 있던 두 법칙은 실상 하나인 것으로 나타난다. 즉, 불문법인 신적 법칙이 인간적 법칙 부분까지 포함함으로써 인륜성 전체를 포괄한다.

영은 이제 불문법인 신적 법칙(unwritten, divine law)의 특성을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법칙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은 법이 요구하는 바가 혼란스럽고 불분명하다는 가능성과 법이 유동적이고 역사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시대적 배경에 연원하는데, 영웅적 시대에는 보편적인 윤리적 권력이 아직 법으로서 혹은 도덕적 계율과 의무로서 명시적으로 고정되있지 않았다. 둘째, 법칙이 신적이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도전될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한다. 즉 공유된 에토스이자 인륜성인 신적인 것은 어떤 개인에게서도 비판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륜성이 그 개인의 존재와 실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개인성의 기반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므로, 그리스 비극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갈등은 자아의 통일성을 위협하는 갈등[분열]이다.

  • 비극적 갈등

그리스 비극의 주된 갈등은 가족과 국가 간의 갈등이다. 이때의 국가란 단순한 정치적 구조를 의미하기보다는 윤리적 통일체로서의 공동체, 즉 인륜성의 현실태이다. 따라서 그러한 갈등은 개인의 최고 의무가 공동체 전체에 대한 것이라는 견해와 좀 더 좁은 단체인 가족에 대한 것이라는 견해 사이의 갈등이다. 이는 곧 자연적 인륜성과 정신적 보편성의 인륜성 사이의 갈등을 의미한다. 헤겔은 양쪽 모두 동등하게 정당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동등하게 정당화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는 양쪽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에 대한 완전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헤겔이 비극의 효과보다 내용에 집중했다는 점을 주시하면 잘 이해할 수 있는데, 만약 비극의 주인공이 완전히 나약하거나 비열한 자라서 자신의 입장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공동의 에토스 사이에서 갈등하는 힘들 중 하나를 대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동등하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극에서는 양쪽이 50:50으로 정당한 것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안티고네가 주인공인 『안티고네』에서는 분명히 크레온이 아니라 안티고네가 영웅이다. 정리하자면 그들은 근본적인 윤리적 두 원칙을 고려할 때 그들 행동에 대한 완전한 정당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한쪽이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원칙이 부재하기 때문에 각각은 상대방의 원칙보다 자신의 것이 우선한다고 주장하므로 갈등이 발생한다.

  • 비극적 영웅

헤겔에 따르면 그리스 비극 속 영웅의 근본적인 기능은 비극적 변증의 한 측면을 의인화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다양한 특성을 가지는 서사시의 영웅과 달리, 비극의 영웅은 그 자신을 지배하는 힘의 조형물(scuplture) 혹은 화신(embodiment)이다. 이 조형물의 비유가 상징하는 바는 비극의 영웅은 단 하나의 감성을 구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술은 비극 영웅을 추동하는 것이 인륜이지 격정이 아니라는 점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격정은 가변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뿐 자신 존재를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 더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비극 영웅은 단 하나의 파토스에 의해 추동되므로, 즉 비극 영웅이 곧 그 파토스와 같으므로 그 찬동의 파괴는 오직 영웅의 파괴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다.

헤겔의 하나의 파토스에 대한 강조는 비극 영웅을 개인보다는 아키 타입으로 만들려는 것일 수 있는데, 그는 비극 영웅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비극은 예술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인데, 다른 말로 하자면 다음과 같다. 비극 영웅이 개인으로써 설득하기를 실패한다면, 관람자들의 지성만이 비극에 참여할 뿐 그들의 감정과 느낌은 배제될 것다. 따라서 비극 영웅은 추상적 개념인 단순 아키 타입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로부터 헤겔은 비극 작가는 개인과 아키 타입 양극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서 비극을 서정시&서사시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극 영웅의 확고한 성격에 따른 결정성은 서정시와 달리 외부 존재의 세부 사항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되고, 또한 그 성격에 따라 서정시에서처럼 주관적 내면으로 수축되어서는 안된다. 전자를 어긴다면 크레온이 아닌 아킬레우스가, 안티고네가 아닌 햄릿이 탄생한다. 2)

  • 비극적 갈등의 원인 - 헤겔의 하마르티아(Hamartia) 논의

헤겔에 따르면 비극의 원초적 본질은 갈등 속에서 각각은 정당성을 갖는 반면에 상대방의 동등하게 정당화된 힘을 부정 및 침해함으로써 자신의 목표와 특질의 긍정적이고 진실한 내용을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윤리적 삶 속에서 각자 유죄 선고 받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일방적 태도[강고한 의지와 기질]로 인해 인륜성 사이의 차이(mere difference)가 반대(opposition)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각[안티고네와 크레온]은 유죄 선고 받으며, 비극적 결말로 이끄는 하마르티아를 각자 갖게 된다.

헤겔은 이 일방성(one-sideness)을 논의하며 주인공들이 상대방의 측면을 전혀 알지 못했음을 강력히 지적한다. 예를 들어 크레온은 안티고네 약혼자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등장하고, 안티고네의 '삼촌'이기까지 하므로 가족의 얘기에 민감해야만 한다. 안티고네는 '시민'이므로 국가의 얘기에 민감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 각자는 대립하는 의무를 조화시킬 수 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각자가 옳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무지하고 오만했기 때문에 옳음의 문제에 관한 자신의 접근을 좀 더 숙고하지 못했다. 그 결과 비극적 참사는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 부분은 확실하게 헤겔 본인의 변증법 논의를 떠올리게 하는 변증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1. 일반적으로 인륜성(Sittlichkeit)는 주로 'ethical life'라고 번역되는데, 왜 ethical substance라고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번역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전공분야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2. 아킬레우스를 이 사례에 꼭 집어 넣을수 있는지 의문이다.


출처: THE PHILOSOPHY OF TRRAGEDY: From Plato to Žižek, J. Young, 2013, pp. 126-154.



『안티고네』 독해에 있어 짚고 갈만한 점 몇 가지를 정리했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이 왜 영웅이며, 그들이 어떻게 신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의 화신처럼 묘사되는지, 그리고 그 갈등과 대립이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작성됐다. 위의 내용을 상기하며 참고하면 헤겔의 『안티고네』 독해와 그에 대한 영의 독해에 도움이 되겠다. 다만 『안티고네』 원전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힘들다.

  • 안티고네의 영웅적 면모 ①: 1~3 행에서 안티고네는 자매인 이스메네에게 크레온의 결정을 전하며 이를 같이 무시하고 장례를 치루자며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이스메네는 이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이스메네는 권력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분별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이고 심지어 여자이기 때문이다. (61-64행) 안티고네는 조력자를 잃었음에 격노하지만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라비의 장례를 치르겠다는 그녀의 계획이 목숨까지 걸 만큼 대단한 일인가? 당시 그리스에서는 죽은 사람을 애곡하는 것은 가족, 특히 여성의 몫이었지다. 다만 안티고네의 경우에는 단순히 고집스러운 여성과 엄격한 군주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그녀는 전통적인 가족의 영역, 여성의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전통과 새로운 제도 사이의 충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 가족과 나 사이를 가로막을 권한이 그에겐 전혀 없어" (48행). 그녀는 가족을 국가와 대등한 것, 혹은 그 이상의 것으로, 그리고 그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이스메네는 오라비의 장례를 치루기를 거부했기에 안티고네에게 그녀는 더이상 가족이 아니기에 스스로가 유일한 생존자다] 인 자신을 그 '국가'의 대표로 여긴다.

  • 크레온의 영웅적 면모 ①: 적군이 쫓겨 간 것을 기뻐하는 합창단이 퇴장한 후 크레온이 나온다. 그가 사용하는 용어들은 그의 사고방식과 성격을 보여주는데, 권위, 도시(국가), 안전, 정의 등이 그것이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친 폴뤼네이케스를 용서하지 못했기에 매장을 금지한 것이다. "이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장례로써 예를 갖추지도 애곡하지도 못하도록 이 도시에 선포하였소." (203-206행) 여기서의 '선포하였소'는 완료시제 비인칭 구문인 '이미 선포되어 있소(ekkekeryktai)'으로, 이 명령이 취소 불가능하게 완결된 것이자 공적 권위를 갖춘 것임을 보여주는 표현법이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213~214행에서의 합창단의 구절 "죽은 자들에 대해서든 살아 이는 우리에 대해서든, 어디서 어떤 정책이든지 그대는 시행하실 수 있지요" 에 의해 지지 받는데, 합창단이 정말로 크레온에게 복종하는지는 의심해 볼 여지가 많다.

  •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정당성: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도전받는다. 파수꾼[전령]이 크레온에게 다가와 누군가가 장례를 치렀다고 전해주는데, 그 시신에는 누가 다녀간 흔적도 없는데 흙먼지가 덮여있고 짐승들이 그걸 훼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크레온은 크게 화내는데, 그 이유는 짐승들이 버려진 시신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신들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크레온의 입장에서는 조국을 침략한 불경한 자를 신들이 돌볼 리가 없으며 이런 자신은 경건하고 신들이 자기편이기 때문이다. 이후 크레온은 파수꾼을 시신으로 다시 보내는데, 이 이후 다시 합창이 시작되는데 이 합창이 희랍 비극에서 가장 유명한 '인간 찬양의 합창'이다. 이 합창의 마지막 부분이 주목할만 한데, 인간은 기술만으로는 좋은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합창단에 따르면 도시를 잘 유지하려면 '땅의 법과 신들께 맹세한 정의를 존중'해야 하는데, 이는 크레온을 지지하는 것인지 비판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어쨌든 돌아온 파수꾼은 시신을 감시 중인데 갑자기 돌풍이 불었다가 후에 보니 한 소녀가 시신 곁에 있어 그녀를 포박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안티고네가 신의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왜냐하면 그 일기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 파수꾼이 "신이 보낸 듯한 질병"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421행)

  • 안티고네 대 크레온: 안티고네는 크레온 앞으로 끌려와 타협책을 제안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타협책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크레온의 명령의 정당성 자체를 부인한다. "제가 보기에 이것을 명하신 이는 제우스가 아니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인간들에게 그와 같은 법은 정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당신의 포고가 그만큼 강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기록되진 않았지만 확고한 신들의 법을 필멸의 존재가 넘어설 수는 없지요. 왜냐하면 그 법은 어제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나 영원히 살아 있고 그것이 언제 생겨났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요." (449~457행) 합리적 타협책을 제시하여 그녀를 제압하려던 그는 화가 난다. 그를 가장 화나게 한 것은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군주로서, 어른으로서, 남자로서 모욕당한다. 그런데 그는 분노에 휩싸여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 버린다. 도시를 구해준 제우스를 찬양하는 노래에 이어 대중 앞에 나타나 제우스께 걸고 (184행) 포고를 발행했던 왕이 제우스의 권한을 부인한다. (486~489행) 범인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이스메네가 공범이라는 두번째 추측을 제시한다. 기술 합리성의 대표로 제시되는 크레온의 영웅적 면모는 여기서도 드러나지만, 안티고네는 그의 말을 모두 경멸하고 무시하며 대립각을 세운다. 증오와 차별을 원칙으로 내세우는 남성 권력자 앞에 저항하는 여성 안티고네가 내세우는 원칙은 사랑과 평등이다.

  • 안티고네의 영웅적 면모 ②: 크레온의 잘못된 추측에 의해 이스메네가 끌려오고, 그녀는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만 안티고네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명예는 자신만의 것이다. 살기를 택한 이스메네와 달리 죽기를 택한 자신이 정의로운 선택을 행한 것이고, 이런 결정은 변경 불가능한 최종적인 것이다. 희생도 명예도 오로지 그녀 자신만의 것이다.

  • 크레온의 비 영웅적 면모 ①: 안티고네가 죽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자식인 하이몬이 달려와 크레온과 얘기를 나눈다. 이때 크레온은 다시 한번 선을 넘는다. "그녀는 혈연을 보호하는 제우스를 불러 찬양이나 하도록 두어라." (658-659행) 그러면서 그는 어떤 질서건 무정부상태보다 나은 것으로 여기는데, 한 번 더 선을 넘는다. "옳은 일이건 옳지 않은 일이건 지도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671행) 이에 하이몬은 그를 어루만지려 하지만 크레온은 그의 간언에도 "내가 도시가 시키는 대로 명해야 한다는 것이냐?"라고 반발한다. (734~738행) 이제 그에게서 영웅적 면모는 보이지 않고 독재자의 모습만이 보인다.

  • 안티고네의 영웅적 면모 ③: 동굴에 끌려간 안티고네는 처음부터 죽음을 각오했으나 애통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애통한 이유는 자기 자신은 충실히 지켜온 원칙에 따라 가족에 대한 애곡을 행하는 중인데, 그녀에게 사실상 가문에 남은 자가 혼자뿐이니 자신을 애곡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를 합창단은 위로한다. 합창단에 의해 그녀는 명성 높이 칭송되고 있고 그녀는 스스로의 법에 따라 벌을 받는 것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스스로의 법에 따라(autonomos)" 라는 표현은 대개 국가의 자치를 가르키는 말이므로, 안티고네의 행위와 그 신념은 그녀를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만든 셈이다. (821행)

  • 크레온의 비 영웅적 면모 ②: 안티고네의 퇴장 후 합창단은 운명의 힘은 피할 수 없다느니, 신들의 뜻에는 저항할 수 없다는 합창을 한다. 그 후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하고 크레온에게 고집을 버리고 치유책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크레온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공격하는데, 그 대화에는 '이득', '거래' 따위의 단어가 난무한다. (1040~1044행) 이제 세속 권력과 신적 권능은 맞부딪히고 예언자는 크레온에게 재앙을 예언한다, 예언자가 퇴장한 후 크레온은 두려움을 표현한다. 즉 그는 진정한 위협이 닥치자 즉시 굴복한다. 그는 결국 영웅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예언대로 신적 힘에 의해 합리성의 대표자인 크레온은 참담한 결과를 맞이한다.

  • 헤겔은 두 주인공 모두 옳다고 해석하는데, 좀 더 넓게 보자면 둘 모두 틀렸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안티고네』는 변증법 도식에 따르기에 둘 모두 불완전한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안티고네의 쪽이 상당한 위협인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도시국가가 처음 성립되던 시기에 안전은 크레온 말대로 도시가 먼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 『안티고네』를 독해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대로 주인공의 실책, 즉 여기서는 안티고네의 실책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주인공은 실책때 문에 불행에 빠진다고 하는데, 그녀의 불행 달리 말해 죽음은 실책이 아니라 영웅적 기질에 의한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도 있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 극이고 양분 구성인 극이다. 전반부에서는 안티고네, 후반부에서는 크레온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흔히 제목에 홀려 안티고네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혹시라도 하나만 주인공으로 정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 서 있는 크레온이 제1배우이기에 크레온이 주인공이다. 1)


  1. 이로부터 극의 이름이 『안티고네』인 이유를 안티고네가 영웅이기 때문이라는 영의 견해를 반박할 수 있다. 사실 영의 이러한 견해는 터무니없다. 왜냐하면 영의 논리에 따르면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영웅이 복수의 여신들(자비로운 여신들)이라는 것인데, 그들은 애초에 인간도 아니고 극 중 영웅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참고: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천병희, 2009 .

비극의 비밀, 강대진, 2013.

6개의 좋아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원문은 <https://blog.naver.com/utis0me/222650645881 >를, 그리스 비극 전반에 관한 강의는 <[강연] 희랍 비극의 세계 (강연 : 유종호 교수) 1부 >를 참조하시길..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