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인은) 술어가 존재론적 커미트먼트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특별한 원칙을 주장한다. 그는 'Fa'라는 형식의 진술에서 술어 'F'는 존재론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콰인은 술어에 창녀의 특권이라고 알려진 것, 즉 책임없는 권력을 부여한다. (암스트롱 1980 : 104-5)
원문: ...the extraordinary doctrine that predicates involve no ontological commitment. In a statement of the form 'Fa', he holds, the predicate 'F' need not be taken with ontological seriousness. Quine gives the predicate what has been said to be the privilege of the harlot: power without responsibility. (Armstrong 1980:104-5)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책임없는 권력과 창녀의 특권이 연결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원색적이긴 하네요;;
매춘부가 (보통은 책임을 수반하는) 많은 것들(?)을 책임 없이 받아들이는 직업(?)이라고 한다면, 이 때 특정한 권력이란 받아들여선 안 되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비교 우위의 위치를 점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절차든 결과든) '부당한' 이점 같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분별한' 수용은 '부당할' 것입니다. 마치 술어에는 "존재론적 진지함"의 요소가 할당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콰인의 자연화된 인식론 안에는 언어에 대한 실용주의적 측면을 함축했던가요? 아마 이것이 맞다면, 언어의 일부인 술어 역시 그에게 고정된 역할(한정기술과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을 것 같네요. 매춘부가 노소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