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on(1990) Mimesis as Make-Believe 1장: Representation and Make-Believe (요약) (2)

1.6. 소도구 없는 허구: 꿈과 백일몽

“꿈과 백일몽에서 허구적인 것은 믿는 체하기 게임이나 재현적인 예술 작품에서 허구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무엇이 상상되는가보다는 무엇이 상상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다.” (p. 83[43])

(1) 집단적 백일몽의 경우, 상호간 합의된 것, 상상하기로 합의된 것만이 허구적이다. 합의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상상되었더라도 허구적이지 않다.

(2) 개인적인 백일몽도, 의도적인 것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레드가 은퇴하여 남프랑스에서 지내는 백일몽을 꾸겠다는 결정은 자신에게 규칙을 만들어 적용시키는 것이다.

(3) 의도적이지 않은 상상하기는 “꿈이나 백일몽의 부분으로서 실제로 상상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상상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p. 84[44]) 수용 규칙(acceptance rule)이 적용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의도적이지 않은 상상하기에서 상상되지 않는 것 또한 허구적일 수 있다.

(4) 도리스의 진술: “내 꿈속에서 나는 시카고에서 뉴욕에 있는 존스에게 전화를 했어. 그 후에 나는 그와 또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번에는 뉴욕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직접 대화를 한 거야. ...... 내가 그사이에 뉴욕으로 간 것임에 틀림없어” (p. 85[45])

(5) 월튼은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즉, 그가 그 사이에 뉴욕으로 갔다는 것은 도리스의 꿈 - 허구적이다. 그러나 도리스는 그것을 상상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비현행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상상했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는 자신이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갔다는 것을, 비현행적 상상을 반성하는 방식과는 달리 새로 알아내야 했다.

(6) 이 경우 “꿈 안에서 허구적인 명제들의 무리가 어떤 자연스럽고 명백한 방식으로 전체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채워지도록 하는” (p. 87[46]) 규칙인 보충 규칙(supplementation rule)이 적용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7) 이후 꿈과 백일몽에 관한 짧지 않은 더 깊은 논의가 있으나 생략함. (pp. 88-93[47-51] 참조)

1.7. 재현들

(1) 재현적 예술 작품 또한 인형, (E&G 게임에서의) 그루터기와 같이 일반적으로 믿는 체하기 게임의 소도구이다.

(2) 재현적 예술 작품과 인형이 그루터기와 다른 점은, 그것들이 소도구가 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월튼은 그루터기와 같이, 일회적 상황에서 일회적 믿는 체하기 게임에서만 소도구로 사용되는 ad hoc 소도구는 재현(representation)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재현은 특정한 게임에서 어떠한 것으로, 예를 들어 인형은 아기로서, 장난감 트럭은 실제 트럭으로서 상상되도록 만들어졌으며, 그러한 의도에 부합하는 게임들은 그 소도구의 공인된(authorized) 게임이라고 한다.

(3) 한 사물이 재현이기 위해서는 그 기능이 소도구여야 하지만, 여기서 “기능”이라는 말은넓은 뜻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특정 사물이 아닌 그 사물이 속한 종류의 일반적, 관행적 기능이 소도구라면, 그 특정 사물이 소도구로서 의도되지 않았다고 해도 재현일 수 있다. “어떤 경우 기능은 사물들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지에 대한 규칙의 문제로서 간주될 수 있다.” (p. 95[52]) 그 기능이 소도구인 사물들은, 특정 믿는 체하기 게임의 규칙을 기능으로서 가지는 것이 아닌 “어떤 종류의 게임을, 어떤 규칙을 가진 게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 (p. 95[52])을 가진다.

(4) 통상적인 재현적 예술 작품들의 기능은 어떤 특정한 종류의 게임에서 소도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재현적 예술 작품이 주어졌을 때 매번 새로 발생의 원칙을 확립할 필요가 없으며,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이 어떻게 사용될지 예측할 수 있고, 감상자는 (그 규칙이 충분히 익숙하다면) 자연발생적으로 규정된 상상을 해낼 수 있다. “회화와 소설을 감상하는 것은 크게 보아 그것들을 가지고 그것들이 소도구로 기능하는 종류의 믿는 체하기 게임을 하는 것이다.” (p. 96[53]) 그러나 때때로 우리들은 특정 게임과는 별개로 소도구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1.8. 비구상적(nonfigurative) 예술

(1) 어떤 것이 재현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구상적(figurative)이라는 것을 반드시 함축하지는 않는다.

(2)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1915)에서 우리는 캔버스의 윗부분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된 노란색의 직사각형 형태가 수평의 녹색 선(혹은 길게 늘인 직사각형) 앞에 있는 것을 "보며”, 또 다음에는 그것이 반대쪽 대각선 방향으로 긴 큰 검은색 사다리꼴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그리고 이것이 그 회화가 감상되도록 기대된 방식이다.” (p. 98[54-5])

(3) 그러나 노란색, 녹색, 검은색 중 어느 것도 실제로 “앞에 있지”는 않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평면 위에 그려져 있다. 월튼은 (2)에서 기술한 “보기”는 (비의도적) 상상하기라고 주장한다.

(4) 그러한 상상하기는 회화가 실제로 그려진 방식에 의해 규정되기에 <절대주의 회화> 또한 소도구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을 하는 것이 그 회화가 감상되도록 기대된 방식이기에 그러한 소도구로서 쓰이는 것이 그림의 기능이다. 따라서 <절대주의 회화>는 재현적이다.

(5) 그렇다면, 재현적이지 않은 회화가 거의 없게 되지 않는가? 월튼은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재현적이고 또한 구상적인 회화와 재현적이지만 구상적이지 않은 회화는 분명 구분되는 듯 보인다. 월튼은 후자의 경우 그 작품 자체의 부분에 대한 상상을 지시하며, 전자의 경우 그 자체가 아닌 어떤 다른 사물에 대한 상상을 지시한다는 구분을 제안한다.

1.9. 허구적 세계

“허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전이론적(pretheoretical) 개념은 부주의한 이론가들을 쉽게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 나는 가능한 한 허구적 세계에 대한 어떤 개념에도 의존하지 않고 싶다.” (p. 102[57-8])

(1) 월튼은 어떤 명제가 허구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허구적 세계 안에서 참이라는 설명에서는 벗어났지만, “두 명제가 ‘동일한 허구적 세계 안에서’ 또는 ‘서로 다른 허구적 세계 안에서’ 허구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허구적 세계에 대한 단순히 직관적인 개념에 필요 이상으로 기대지 않고서도 설명할 수 있기를 원한다.” (p. 102[58[)

  • 한 세계에서의 허구성

(1) “한편에는 세계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게임, 작품, 꿈과 백일몽들을 두고 그사이에 일대일 대응관계가 있다고 잠정적으로 가정해보자.” (p. 103[58]) 특정한 재현적 예술 작품 r를 감상하는 사람이 참여하는 게임 g들이 있다. 이때 r-세계에서 참인 것과 g-세계에서 참인 것이 많이 겹칠 수도 있지만(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모든 g-세계가 r-세계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을 r-세계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g-세계라는 점 하나뿐일 수는 없다.

(2) r-세계가 규정되는 방식은 r의 기능과 관련이 있다. r의 기능은 특정한 종류의 게임들, 즉 공인된 게임에서 소도구로 사용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인되지 않은 게임들의 세계는 r-세계일 수 없을 것이다.

(3) 그러나 공인된 게임에서 허구적인 모든 명제들이 r-세계에서도 참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모든 상상하기는 de se 상상하기이기 때문에) 특정한 감상자 S가 참여하는 공인된 게임에서는, S가 ...하다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 또한 허구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r-세계에서 참은 아닐 것이다.

(4) 월튼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r에서 허구적인 것은 - 즉 r-세계에서 참인 것은 - 그 안에서 소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r의 기능인 어떤 게임에서든 허구적인 것(또는 허구적일 만한 것)이어야 하며, 그 허구성은 r에 의해서만 발생해야 한다. “한 작품에서 허구적인 것은 (그 작품의 감상자들이 그 작품의 감상자로서) 상상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 작품의 기능을 구성하는 메타 규칙들이 있어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게임들을 하도록 지시하며, 이 게임들은 소도구로서 사용되는 작품 과 결합된 조건부적 규칙들에 기반을 둔 그 자신의 지시를 한다.” (p. 106[60-1])

  • 세계를 가지지 않는 소도구들

(1) Ad hoc 소도구들, 예를 들어 E&G 게임에서의 그루터기는 자신의 허구적 세계를 가지지 않는다.

(2) 그러나 인형과 장남감 트럭의 경우, 우리는 그 기능이 특정한 종류의 게임에서 소도구로 사용되는 사물들도 자신만의 허구적 세계를 가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월튼은 이런 주저함에 세 가지 서로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데, 1. 인형은 재현적 예술 작품과는 달리 어떤 종류의 게임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즉 인형의 소위 “감상자“ 또는 “사용자“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시가 없다는 것; 2. 재현적 예술 작품과는 달리 인형과 장난감 트럭의 경우 우리가 그 단독으로 발생시키는 작품 세계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인형이 발생시키는 허구적 참은 기껏해야 이러저러하게 생긴 아기가 있다는 것 이상이 아닐 것이다); 3. 전형적인 그림들은 자신의 “허구적 공간”을 창조해낸다고, 즉 그것이 실제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그 작품의 허구적 세계에 중요하지 않은 반면, 인형의 경우 중요하다는 것. 인형의 경우 “’허구적 세계’로 간주될 ‘허구적 장소’는 없다”(p. 109[63])는 것이 있다.

  • 허구적 세계란 무엇인가?

(1) “각각의 허구적 세계는 명제들의 한 특정 집합이나 무리와 연관되어 있다. 그 명제들이란 그 세계 안에서 허구적인 명제들이다.” (p. 110[64])

(2) 그러나 허구적 세계는 가능 세계는 아니다. 첫째로 허구적 세계는 때때로 불가능하고, 대체로 불완전하다. 어떤 허구는, 그 안에서 허구적인 명제들이 비일관적이거나 모순이 있다는 뜻에서 불가능하며, 그 허구적 세계는 가능 세계가 아니다. 설령 우리가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지시는 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명제 p에 대해 허구적 세계는 p도 ~p도 포함하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증조부가 열쇠공이었다는 것도 열쇠공이 아니라는 것도 <변신>-허구적이지 않다.

(3) 그렇다고 해서, 허구적 세계가 단지 가능 세계와는 달리 일관적이거나 완전할 필요는 없을 뿐인 명제의 집합이라고 할 수도 없다. 허구적 세계는 우유적으로 존재하며, 만일 어떤 작품 r이 없다면 r-세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명제들의 집합은 필연적으로 존재하거나, 적어도 그 집합에 속하는 명제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존재한다. r-세계에서 참인 명제의 집합은 r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존재할 수 있다.

(4) 또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작품이 정확하게 동일한 허구적 참들을 발생시킬 수 있다.” (p. 113[66]) 이때 서로 다른 작품은 서로 다른 허구적 세계를 가지겠지만, 한 작품에서 허구적인 모든 명제는 다른 한 작품에서도 허구적이고, 오직 그럴 때만 그러할 것이다.

(5) 허구적 세계를 주어진 작품에 의해 지시된 것으로서의 명제들의 집합이라고 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는 피할 수 있겠지만, 그 어떤 세계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명제들을 허구적으로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가 남는다.

(6) 월튼은 허구적 세계가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허구적 세계와 같은 것을 인정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편의를 위해 “허구적 세계”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진술은 모두 지금까지 논의된 방식을 통해 허구적 세계에 대한 개입 없이 분석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1.10. 믿는 체하기라는 마법

1장 내용 총결. 믿는 체하기 게임에서 소도구를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상상적 활동의 “객관성, 통제, 공동 참여의 가능성 자연스러움, 그리고 그에 더해 실제 세계의 걱정들로부터의 어떤 자유” (p. 115[68])를 얻었다. “[...] 재현이란 믿는 체하기 게임에서 소도구로 사용된다는 사회적 기능을 가진 것들이라고 말했다. 비록 소도구들이 상상하기를 촉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상하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소도구란 조건부적인 발생의 원칙에 의해 상상하기를 지시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을 상상할 것이 지시되는 명제들은 허구적이며, 어떤 주어진 명제가 허구적이라는 사실은 허구적 참이다. 허구적 세계는 허구적 참들의 집합과 관련된 다. 허구적인 것은 예를 들면 믿는 체하기 게임의 세계라든지 재현적인 예술 작품의 세계 같은 어떤 주어진 세계 안에서 허구적이다. 이것이 개략적인 내[월튼의] 이론의 뼈대이다.” (p. 1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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