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셀라스, 『경험론과 심리철학』 - 9. 과학과 일상적 용법

IX. 과학과 일상적 용법

39. 철학의 정원에는 인식론, 존재론 등 다양한 수목이 자라지만, 최근에 생장하기 시작한 과학철학이라는 분야가 바로 셀라스가 주목하려는 것이다. 과학철학이라는 분과는 명목상의 분류이지만, 이 명목상의 구별이 원인이 되어 실제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과학철학의 등장은 종종 철학의 목표와 과학의 목표 사이의 혼동을 가져왔으며, 우리의 일상적·상식적 세계관에 깊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는 자연에 대한 과학적 논의가 철학적 사유에 중요하고 통합적인 함축을 지닌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줬다. 그런데 과학철학의 명목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철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건전한 주장에서 나아가 철학을 과학과 독립적인 영역으로 생각하려는 유혹이 대두된다.

40. 철학적 분석의 대상인 담론이 여러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고, 철학자들이 특정한 세부 영역에서 (정의 제시로서의) 분석을 행하는 한, 철학은 여러 전문 영역을 보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철학에 대한 원자론적 상은 망상에 불과하다. 철학적 분석이란 더 이상 용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담론들의 논리적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데 각 담론은 각자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담론 및 비언어적 사실들과 상호교차적으로 뒤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는 이제 다른 영역들로부터 고립된 채 자기의 영역에만 몰두할 수 없다.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모든, 아니면 최소한 대부분의 개념들은 하나 이상의 담론 차원에 붙들려 있다[.]”(Sellars, 1997: 80-81) 이 점에서 철학의 과업은 (전통적으로 그러했듯) 세계 속 인간 혹은 모든 담론들 전체에 대한 통합적인 시야를 제공하는 일이다.

특히 과학적 담론과 일상적 담론이 상호 착종되어 있는 까닭에, 각각에 관한 철학적 분석은 독립적일 수 없다. 이것은 일상적 담론을 분석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철학의 노동 분업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과학 담론은 과학 이전 시대부터 존재해왔던 담론으로부터 개화한 것이고,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과학이 일상 담론에서 하는 역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한 경험적 어휘들조차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41. 철학적 분석이 과학의 방법이나 성과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과학 담론 내의 새로운 동향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세계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과학이 담론의 연장이라면, 과학적 세계상이 일상적 세계상을 대체하는 부분 즉 일상적 담론의 존재론에 대해 (최소 부분적으로) 우선권을 갖는 과학적 존재론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점을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물리적 대상이 색깔을 지닌다는 우리의 상식은 과학에 의해 거짓으로 밝혀진 것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러한 표현은 명백히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색깔 있는 대상이 과학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지더라도, 이는 사물의 색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어휘와 담화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 담론의 구조틀(framework)을 벗어나 그에 대한 철학적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상적 담론에서 “사물에는 색깔이 없다”는 틀린 문장이다. 한편 담론의 구조틀 자체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셀라스는 색깔을 지닌 채 시공간 속에서 지속하는 사물들의 일상적 세계가 비실재적(unreal)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이야말로 모든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43. 1 많은 철학자들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일상 언어를 배우고 이와 더불어 그것이 함축하는 일상적 세계관에서 시작한다는 점으로 말미암아 일상적 세계관의 범주적 틀에 반박 불가능한 명징성(authenticity)을 부여하고는 한다. 이 반박 불가능한 근본적 구조틀이 감각 내용들 사이의 현상적 관계인지 아니면 물리적 대상, 사람, 시공간 등의 범주들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2 이들은 일상적 어휘와 세계 사이의 지시적(ostensive) 연결을 범주적 토대에 두면서 자연히 일상적 대상들의 존재론을 받아들인다.

셀라스는 과학 이론의 대상과 대상들 사이의 관계가 한갓 보조적 지위만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과학에 대한 실증주의적 구상”(the positivistic conception of science)이라고 부른다(Sellars, 1997: 85). 실증주의적 과학관은, 세계와 지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상적 담론의 구조틀 체계화하고 일반화하는 보조 장치로 과학을 취급한다. 논리적 원자론자들과 일상언어 철학자들은, 지시적으로 연결된 일상 담론 속 대상들은 마치 과학적 존재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as if) 작용하며 오직 그렇게만 작용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증주의적 과학관의 혐의로부터 벗어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일상적 담론의 대상들이 실재 과학적 존재자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부정함으로써만 성립하는 것이다.

세계와 지시적으로 연결된 반박 불가능한 토대적 구조틀을 상정한다면, 과학 이론적 담론이 일상 담론에 비해 보조적이고 파생적인 권위만을 지닌다는 생각에 쉽게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1) 언어 속 지시적 요소의 역할을 오해(소여의 신화)했으며 (2) 이론적 담론과 비이론적 담론 사이의 방법론적(methodological) 구별을 실체적(substantive) 구별로 사물화하는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적 과학관의 지지자들은 과학적 담론을 일상적 담론이라는 본토에 부속된 하나의 반도(半島)와 비슷하게 본다. 이들에게 과학적 담론에 대한 분석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본토인 일상적 담론의 혼란과는 독립되어 있는 보조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철학이 마땅히 해결해야 하는 일상적 담론의 틀과 현대 과학 담론의 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다르게 말하면 인간의 현시적 상(manifest image)과 과학적 상(scientific image) 사이의 충돌3을 해결할 수 없다.


1)「경험론과 심리철학」 원문에는 42절이 없다.
2)표현에서 명시적으로 알 수 있듯, 일상언어 철학자들과 논리적 원자론자들 모두를 겨냥한 비판이다. (DeVries, Triplett, Knowledge, Mind, and the Given, 109.)
3)이 문제에 관한 셀라스의 자세한 논의에 대해서는 Sellars, W., “Philosophy and the Scientific Image of Man”, Science, Perception, Reality, Atascadero, California: Ridgeview Publishing, 1991, 1-4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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