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셀라스, 『경험론과 심리철학』 - 7. '의미함'의 논리

VII. ‘의미함’의 논리

30. 내적 삽화의 관념을 부정하는 철학자들도 빠지기 쉬운 종류의 소여의 신화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언어를 배운다고 할 때, 우리는 당연히 그 사람이 시공간적인 물리적 대상들의 논리적 공간에 속한다고 간주한다. 그런데 이렇게 그를 논리적 공간에 위치시킬 때, 이 사람이 처음부터(ab initio) 제한적인 수준의 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이는 애초에 세계 내의 상이한 요소들을 구별하고 분류할 수 있는 인지를 모호하고 암시적인 형태로나마 지니고 있고,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본유적인 인지 능력을 잘 다듬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지 능력을 사적인 감각 내용에 귀속시키든 물리적 대상의 영역에 귀속시키든, 이것은 소여의 신화이다.

언어 이론을 검토하고 이론에 대해 판단을 내리려면 해당 이론이 사물이 “현전할 때의 사유”(thinking in presence)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검토해봐야 한다. 이 경우가 “언어와 비언어적 사실의 근본적 연결이 드러나는”(Sellars, 1997: 65) 경우이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 이론이 진정으로 심리적 유명론인지를 판단하려면, 바로 인식자 앞에 사물이 현전할 때 일어나는 사유를 해당 이론이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 봐야 한다. 이 지점에서 심리적 유명론처럼 보였던 많은 이론들이 진정한 심리적 유명론과는 다른 것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잃어버린 안경을 어디에 뒀는지를 기억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생각은 언어적이라고 판단하기 쉬운데, 이 경우 그는 안경을 찾기 위해 판단을 내리고 추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안경이 직접 그의 눈앞에 나타나 있을 때 그는 안경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굳이 언어를 거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적 언어 이론이 아닌 진정한 심리적 유명론은, 사물이 현전할 때 일어나는 생각 역시 언어적으로 매개되어 있어야 한다고 답한다.1)

31. 심리적 유명론은 단순히 개념을 단어 및 사유와 등치시키는 입장이 아니다. 단순히 단어를 사유와 동일시한다면, “붉음”과 “red”, “rot”는 모두 판이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위의 세 단어가 공통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제대로 해명할 수 없으며, 언어가 다른 사람들은 같은 개념을 공유하지도 못할 것이다.2) 셀라스는 이런 이론을 신봉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 유명론은 기본적으로 “논리적 공간에 대해 언어 습득에 선행하거나 독립적인 인지가 있다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Sellars, 1997: 66).

‘붉음’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술어로 규정하는 논리적 구문론을 전제해야만 술어로 기능한다. 그리고 우리가 표준적 상황에서 붉은 대상을 보고 “이것은 붉다”라는 문장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만 ‘붉음’은 술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이 두 가지 조건을 가지고, 다음의 문장이 ‘붉음’ 단어와 실재 붉음 성질 사이의 의미 관계를 표현한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붉음’은 붉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프라이스(H. H. Price)가 “온도계 관점”(thermometer view)라고 부른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의미하다’(means)를 일종의 관계로 착각하기 때문에 대두된다. 관계로 생각된 의미 술어는 단어와 비언어적 대상 사이의 관계로 간주되고, 양자의 관계는 결합 관계로 취급되는 것이다. 셀라스에 의하면, “‘x’는 y를 의미한다”(‘x’ means y)는 관계적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해당 문장에서 언급된 ‘x’가 문장에서 사용된 y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언어적 장치라는 점을 나타낸다. ‘의미하다’라는 술어가 드러내는 바는, x가 y에 상응하는 개념적 기능을 맡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풀이할 때 우리는 “‘and’는 그리고를 의미한다”나 “‘red’는 붉음을 의미한다”와 같은 진술이 단어와 추상적 연언 존재자 또는 추상적 붉음 속성 존재자 사이의 의미 관계(meaning relation)라는 생각에 호소하지 않고도 ‘의미하다’가 포함된 진술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붉음’은 붉음을 의미한다”라는 진술이 참이라고 해서, 이 진술로부터 붉음 개념의 언어적 기능이나, 단어와 비언어적 대상 사이의 관계를 추론할 수는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 또 지적해야 할 것은, “‘x’는 y를 의미한다”와 같은 문장을 위처럼 이해한다고 해서, 붉음 개념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언어적 역할이 복잡하고 복합적인 구조를 지닌다는 점, 그리고 (암암리에 일반 개념을 파악하는 본유적인 능력을 전제하던 고전 경험론과 달리) 붉음 개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붉음 개념과 연결된 여러 다발의 개념적 추론 관계들을 습득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1)안경의 예시와 이를 통한 해당 구절의 설명은 DeVries, Triplett, Knowledge, Mind, and the Given, 62 참조.
2)DeVries, Triplett, Knolwedge, Mind, and the Given,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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