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셀라스, 『경험론과 심리철학』 - 4. 보임을 설명하기

IV. 보임을 설명하기

21. 감각자료 이론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이론적 동기로 갖는다. “어떻게 대상이 실제로 붉은색이 아닌데도, 대상이 다른 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보이는 일이 가능한가?” 이에 대한 셀라스의 답은, 감각자료 이론의 용어들이 지녔던 전통적인 인식론적 지위를 박탈하는 방향을 취한다.

인식자에게 대상이 붉게 보인다는 사실은 인식자에게 붉은 감각인상이 있다는 가정 하에 설명되어야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즉 직접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적 대상이 아니면서도 붉은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고, 그 대상의 ‘붉음’(is red)이 물리적 대상의 ‘붉게 보임’(looks red)과 같다면, 이는 물리적 대상이 붉게 보일 때의 붉음이 실재 물리적 대상의 붉음과 같은 의미라는 앞서 제시된 반론에 어긋난다. 게다가 III에서 제시된 제안에 의하면 우리는 그러한 비물리적 감각적 존재자들을 상정하지 않고도 무언가가 붉게 보인다는 것을 충분히 해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적 설명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감각인상 모델의 제안이 대안적 설명보다 못하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물리적 대상이 붉게 보인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 ‘붉게 보임’과 같은 붉음을 지니는 다른 무언가의 존재를 전제해야 하지 않는가?

22. 대상이 붉게 보인다는 사실을 설명할 두 가지 이론은, 풍선의 팽창을 설명할 두 가지 이론이 있다는 점과 유비적으로 생각될 수 있다. 풍선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설명할 이론으로 (a) 기체의 부피, 압력, 온도라는 경험적 개념들을 동원하는 보일-샤를 법칙과 (b) 기체 운동 이론이 있듯, 보임을 설명하기 위해 (a) 관찰 상황과 사물의 색 등 관찰 가능한 것들의 경험적 일반화를 동원하는 셀라스의 이론과 (b) 운동 이론에서 상정되는 분자처럼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인 ‘직접 경험’을 도입하는 이론이 생각될 수 있다.

여기서 직접 경험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마치 기체의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분자가 이론적으로 도입되는 것처럼) 설명을 위해 도입되는 이론적 존재물로 간주하는 것은 일견 이상해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게 될 것이다.

직접 경험 이론을 채택하여 질적 보임과 존재적 보임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 설명은 어떤 형태를 띨까? 일단 직접 경험 이론은 ‘x가 붉게 보인다’의 의미를 다음처럼 설명한다.

x가 붉게 보인다↔인식자는 x가 붉게 보인다는 관념을 수반하는 직접 경험을 하며, 만약 이 관념이 참이라면 이 경험은 x가 붉음을 봄(seeing that x is red)이라고 적절하게 규정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직접 경험 이론은 다음 세 가지 상황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적절히 설명해야 한다.

(a) x가 붉다는 것을 봄(seeing that x is red)
(b) x가 붉은 것처럼 보임(Looking that x is red)
(c) 마치 붉은 사물이 있는 것처럼 보임(Looking as if there were a red x)

(a)는 x의 존재와 x의 속성을 모두 승인하고, (b)는 x의 존재만을 승인하고 있으며, (c)는 x의 속성도 존재도 승인하고 있지 않다. 편의상 x가 붉다는 것(that x is red)을 저 세 가지 상황에 공통된 명제적 내용이라고 하자.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세 가지 상황은 명제적 내용을 공통적으로 갖되, 이 명제적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승인하느냐, 즉 승인 정도(extent of endorsement)에 따라 변별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 두 가지 요소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없는 잔여적 요소가 있다. 이것을 기술적 내용(descriptive content)이라 하자.1)

셀라스의 설명은 세 가지 경험이 명제적 내용뿐만 아니라 기술적 내용도 공유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우리는 세 가지 경험이 공유하는 기술적 내용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직접 경험 이론의 어휘로는 기껏해야 실제로 x가 붉다고 가정한다면 (즉 명제적 내용이 참이라면) 세 가지 경험 모두가 “S는 x는 붉다는 것을 본다”는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진술될 수 있을 뿐이다. 이 세 가지 경험에 공통된 기술적 성격의 내재적 특성은 무엇인가? (a), (b), (c)에서 명제적 내용이 승인되는 정도가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세 가지 경험은 공통된 기술적 특성을 지닐 수 있는가?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그것은 경험의 비명제적·비인식적 요소이다.)

23. 혹자는 자연스레 세 가지 경험에 공통된 특성이 바로 붉음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 답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 대상의 속성을 가리키는 용어 ‘붉음’의 뜻을 원래 의미로부터 탈각시켜 느슨하게 사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한 의미의 변형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붉음으로부터 세 가지 상황에 공통된 기술적 내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붉음’의 의미 변형은 지각 인식론에서 통용되는 다음과 같은 문제적인 생각에 의해 뒷받침된다.

우리가 탁자나 정육면체 등을 보는 것은 그 대상의 표면을 봄으로써만 가능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대상이 뒷면과 안쪽을 지니는 입체적 사물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대상을 본다는 것은 대상의 앞면을 본다는 것을 함축하며, 이때 대상의 감각적 속성(붉음)은 입체가 아닌 이차원 평면이다. 지각적 의식이 문제가 되는 한, 붉은 물리적 대상이란 곧 붉은 이차원 표면을 지니는 대상이다. 그런데 붉은 평면은 물리적 대상도 아니고 물리적 대상의 존재를 함축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a), (b), (c)에 공통된 기술적 내용은 이 비물리적 붉은 평면이다.

이 주장에서는 “붉은 표면”이라는 표현을 애매하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적인 담론에서 사물의 표면과 안쪽이 다른 색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사물의 표면은 붉지만 안쪽은 노란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물의 표면은 시공간상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과 따로 상정되는 ‘두께가 없는 이차원 붉은 평면’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께가 없는 이차원 평면’이라는 개념은 세계의 과학적 상(像)에 속하는 것이지 일상적 담론의 공간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한 개념이 일상적 담론의 개념적 틀을 설명함으로써 관계 맺을 수는 있지만, 일상적 담론의 의미를 그 개념으로 환원해버릴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색깔 단어들의 논리적 문법과는 관계가 없다.”(Sellars, 1997: 53) 이를테면 사물의 색깔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담화에 수반되는 개체는 사물 하나뿐이며, 여기에 추가적으로 비물리적인 표면 같은 것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일상적인 의미에서 어떤 사물이 부분적으로만 붉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부분이란 비물리적인 이차원 평면이 아니다. ‘비물리적인 붉은 표면’과 같은 개념은 지각 경험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역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물리적 대상에 관한 일상적 담론의 의미를 ‘분석’하는 역할은 아니다.


1.원문에서 셀라스는 마치 기술적 내용이 명제적 내용의 승인 정도인 것처럼 오해하기 좋게 써놨는데, 둘을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DeVries, W., Triplett, T., Knowledge, Mind and the Given: Reading Wilfrid Sellars’s “Empiricism and the Philosophy of Mind”,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2000,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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