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셀라스, 『경험론과 심리철학』 - 16. 내적 삽화의 논리: 인상(完)

XVI. 내적 삽화의 논리: 인상

60. 직접 경험의 개념을 도입하기 전에 먼저 상기해야 할 것은, 존스의 이론에서 도입된 사유에는 지각적 사유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라일주의 언어 사용자들에게 감각 지각에서 성립하는 요소는 공적 발화를 통해 표현되는 명제적 내용뿐이다. 누군가 표준적 관찰 조건에서 “나는 사과가 붉음을 본다”(I see that the apple is red)고 말한다면, 그는 사과가 존재하며 그것이 붉다는 명제적 내용을 승인하여 그것이 참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1

존스의 이론에서 이 발화는 ‘내가 붉은 사과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라는 담론적 내적 삽화의 결과로 해석된다.

셀라스는 이제까지의 설명을 바탕으로 22-24절에서 처음 제기되었던 봄, 질적 보임과 존재적 보임의 문제를 재정식화한다. 셀라스의 일화에서 언어 사용자들은 ‘직접 경험’, ‘감각’, ‘인상’ 등의 개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 시점에서 ‘붉은 삼각형에 대한 인상’과 같은 말이란 그저 아래 세 가지 상황에 공통된 지각자의 상태 정도의 의미만을 갖는다.

(a) 나는 저기 있는 대상이 붉고 삼각형임을 본다.
(b) 저기 있는 대상은 나에게 붉고 삼각형인 듯 보인다.
(c) 붉고 삼각형인 대상이 저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당 부분에서 미해결 상태로 남았던 문제는 딜레마 형식을 띠고 있다. 감각 또는 인상이 이론적으로 상정된 존재자라는 생각은 이상하다.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감각한다는 사실은 이론적으로 설명되는 사실이 아니라 가장 직접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b)나 (c)에서처럼 대상이 실제로 붉은 삼각형이 아닌 경우에도 관찰자가 대상을 붉은 삼각형으로 감각하는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해야 하는데(21절에 따르면 이것이 감각 자료 이론이 출현한 철학적 동기이다), 감각 인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감각 자료 경험론의 문제가 잘 해결되는 듯 보인다.

이제 감각 인상에 관한 딜레마는 한 쪽 뿔을 거부함으로써 쉽게 해결된다. 우리는 감각 경험이 어떤 이론에도 매개되지 않은 직접적 현상이라는 종래의 경험론적 발상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셀라스의 일화에서 존스는 이제 인상 개념을 이론에 도입한다. 인상이란, 물리적 대상에 자극을 받은 신체 여러 부분의 작용 결과물이다.

61. 셀라스는 다섯 가지 주석을 덧붙인다.

(1) 인상은 지각자의 상태이지 어떤 특수자가 아니다. 일상 세계에서 특수자란 감각 인상이 아니라 책, 의자, 사과 같은 개별 사물들이다. 이번에는 인상 이론의 모형이 인상을 사물의 내적 복제품(inner replica)에 비유한다고 해보자. 모형에 의하면, 표준적 관찰 조건에서 물리적 대상은 그것과 지각적 특성을 공유하는 복제품을 지각자의 ‘내면’에 형성한다. 그렇다면 인상은 엄밀하게는 지각자의 상태로 정의됨에도 불구하고 개별 사물처럼 오해되기 쉬울 것이다. 여기서 인상이 이러저러한 대상의 복제물이지 이러저러한 대상을 보는 일(seeing)의 복제물이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인상이 특수자라는 오해를 떨치기 위해 인상을 후자로 간주한다면 이는 불필요한 처사인데, 그것은 이론적 모형에 제한 조건을 부가함으로써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자의 선택지는 인상을 담론적 인식적인 존재물로 착각하게 만들어 인상 이론을 사유 이론과 뒤섞어버리는 또 다른 치명적 오해를 낳을 수 있다. V, VI장에서 지적되었듯 바로 이 착각이 전통적 경험론에 횡행하던 오류이다.

(2) 인상이 이론적 존재자로 도입됨으로써, 세 가지 관찰 상황에 공통된 기술적 내용은 명제적 내용에 의존하지 않은 채 규정되어야 하며 그럴 수 있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22절에서 기술적 내용은, ‘(b), (c)의 명제적 내용이 (a)에서처럼 참이라면 (b), (c)를 대상을 보는(seeing) 경험으로 만들었을 그런 내용’이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만 규정되었다. 물론 감각 인상은 표준적 조건 아래에서 붉은 삼각형을 원인으로 형성되는 그러한 존재자이지만, 위의 간접적 규정이 기술적 내용의 정의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무색무취이고 마실 수 있으며 0도에서 어는 액체’라는 한정 기술구가 물에 대한 화학적 정의가 아닌 이유와 동일하다.

(3) 인상은 내재적 성질을 지닌다. 예컨대 존스의 이론에서 붉은 삼각형에 대한 인상은 r과 t 성질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r과 t는 각각 일상적 사물의 붉음과 삼각형에 대응하는 인상의 성질이지만, 붉음과 삼각형 성질 자체와 동일시될 필요는 없다. 이론적 모형은 인상의 성질들을 식별하고 구별하는 구조가 물리적 성질들을 식별하고 구별하는 구조와 동형사상(isomorphic)이라는 점을 지적할 뿐이기 때문이며, 모형에는 제한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인상이 이론적 존재자라면, 인상이 갖는 성질들은 엄밀하게는 당연히도 이론 내재적인 용어들로 정의된다.

(4) 한편 혹자는 (4)를 근거로 인상이 순수 형식적인 개념이며 인상 이론은 개념들의 순수 논리적 관계를 다루는 체계라고 주장하며, 인상 개념의 내용은 한정 기술이 아니라 지시적 정의(ostensive definition)를 통해서만 주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상 이론의 용어로서 ‘인상’의 내용은 물에 관한 화학적 정의의 내용보다 하등 빈약할 것이 없으며, 지시적 정의는 다른 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상을 정의하는 데 부적절하다.

(5) 인상은 지각자의 상태이지 특수자가 아니다. 그런데 인상은 신경생리학적 상태가 아닌 심리학적 상태로서 도입되는 것이다. 인상 개념의 이론적 위치에 대한 고려는 과학적 세계상의 지위라는 흥미로운 문제를 촉발시킨다. 어떤 철학자들은 과학이 발전하면서 심리학의 모든 개념들이 점차 신경생물학적으로 정의될 것이고, 신경생물학의 용어들은 이론물리학적으로 정의 가능하므로, 후일 모든 심리학적 개념들은 물리적 용어들로 정의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예측은 사소하거나 오류이다. 만일 여기서 ‘물리학’이 ‘시공간 내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이론’ 정도로 이해된다면 이 예측은 사소하다. 왜냐하면 애초에 인간의 행동은 물리적이며,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물리학이 ‘원초적인 이론적 존재물들로 정의 가능한 사물들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이론’으로 이해된다면, 이 예측은 오류이다.2 인상은 그런 의미에서는 비물리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두 개의 이론적 틀을 뒤섞는 것, 특히 물리적 대상에 관한 미시 이론과 인간 행동에 관한 거시 이론을 뒤섞어서 후자를 전자의 용어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오류이다. 한편, 거시 이론에 대응하는 이론적 상대역을 미시 이론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오류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셀라스는 감각 인상에 대응하는 특수자가 미시 이론적 층위에서 발견될 가능성을 긍정한다. 감각 자료 이론가들과 셀라스의 다른 점은, 감각 자료의 주창자들이 특수자로서의 감각 인상을 일상적 세계상 속에서 찾으려고 했던 반면, 셀라스는 일상 세계가 아닌 (지각자의 상태로서) 심리적 인상 개념에 대응하는 미시 이론적 대응물의 발견 가능성을 긍정한다는 점이다. 주체가 보고 있는 것은 붉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의 붉은 표면에 대한 감각 내용이라는 감각 자료 이론가들의 주장은 이처럼 소여의 신화를 벗어난 맥락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62. 일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감각 인상에 관한 존스의 이론을 받아들인 동료들은 “붉은 삼각형인 물리적 대상이 저기에 있는 듯 보인다”를 명제적 내용으로 하는 사유와 발화(내적·외적 삽화)들을 근거로 붉은 삼각형 인상의 존재를 결론으로 추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론에 대한 숙련에 따라 그들은 “나에게 붉은 삼각형에 대한 인상이 있다”와 같은 문장을 비추론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사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상은 사적이면서도 상호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에 대한 비추론적 관찰 보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은 인상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을 지닌다. 한편 그것은 언어적으로 기술되고 이런저런 공적인 근거와 증거를 통해 추론되며, 공동체의 언어 규칙에 의해 규제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상호주관적이다. 공적인 행동들이 인상의 추론 근거라는 점은 사유와 마찬가지로 인상 개념을 둘러싼 추론 규칙에 암시적으로 내재한다.

인상에 관한 담론들은 II장에서 비판되었던 ‘부호’가 아니다. 그것은 기존에 있던 담론의 축약어나 기호가 아니라 자율적인 논리적 구조를 갖추고 종래의 ‘이러저러하게 보이다’(looks thus-and-so)와 같은 어휘에 대한 설명력을 지닌다. 또한, 과학자들이 단순히 그저 주어져 있던 분자를 인식했다기보다 기체의 팽창과 수축을 설명하기 위해 방법론적으로 분자의 개념을 도입했듯이, 인상은 그저 존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설명적 필요성과 더불어 발견되고 도입된 것이다.

감각 인상에 대한 존스의 이론은 어떻게 소여의 신화로 탈바꿈하는가? 존스 이후 출현한 감각 자료 이론가는 존스의 이론을 열심히 익혀서 인상에 대한 보고적 용법을 습득하고 인상을 관찰하기에 이르렀으나, 이 이론을 잘못된 담론 영역에 위치시킨다. 그는 경험적 지식의 어휘를 풍부하게 해주는 이론적 틀을 경험적 지식에 대한 (환원적) 분석과 동일시하고 만다.

63. 셀라스가 설정한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언어와 지식의 역사적 발전에 논리적으로 부합하는 것을 의도로 짜인 시나리오이다. “나는 신화─소여의 신화─를 없애기 위해 신화를 이용했다. 그러나 나의 신화가 정말 신화인가? 아니면, 동굴의 고함과 우짖음으로부터 응접실, 실험실, 연구실의 미묘하고 다차원적인 담화 그리고 헨리 제임스와 윌리엄 제임스, 아인슈타인 그리고 담화에서 벗어나 담화 너머의 원천[archē]을 향하려는 노력 중 가장 신기한 차원을 마련했던 철학자들의 언어에 이르는 여정의 한가운데 있던 존스를 독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가?”(Sellars, 1997: 117)


1)22절 참조.
2)셀라스는 “The Concept of Emergence”(with Paul E. Meehl, Minnesota Studie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vol. 1,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56, 239-252)에서 ‘물리적’의 두 가지 개념을 구별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물리적’이란 시공간 내에 존재하는 것을 가리키고, 좁은 의미에서 ‘물리적’이란 현실의 상태들을 완전히 설명하기에 적합하도록 기초적인 이론적 존재물들로 정의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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