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셀라스, 『경험론과 심리철학』 - 10. 사적 삽화: 문제

X. 사적 삽화: 문제

45. 다시 봄(seeing), 질적 보임(qualitative looking) 그리고 존재적 보임(existential looking)의 공통 내용에 관한 논의로 돌아오자. 세 가지의 공통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x가 F이다”라는 명제적 내용이다. 그러나 그밖에도 셀라스가 ‘기술적 내용’(descriptive content)이라고 부른 또 다른 요인, 이전의 철학자들이 ‘인상’이나 ‘직접 경험’의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하려고 했던 요인이 있다.

IV장의 21절 이하1에서는 x가 붉게 보인다는 점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이 제시되었다. (a) 인상과 직접 경험을 이론적 존재자로 도입하는 것과 (b) 세 가지 상황에 대한 경험적 일반화를 통해 이들이 공통적으로 인상이나 직접 경험을 구성 요소로 포함하고 있음을 밝히는 일이 그것이다. 셀라스는 해당 장에서 (a)를 공박하고 거부했다. 한편 그는 (b)는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본다. 봄과 보임에 관한 세 가지 상황,

(1) 저기에 붉은 삼각형이 있는 것을 보는 경우
(2) 저기 삼각형이 붉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
(3) 저기에 붉은 삼각형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는 ‘붉은’과 ‘삼각형’이라는 어휘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서술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셀라스의 논증에 의하면, (2)와 (3)에서 ‘붉은’과 ‘삼각형’은 (1)에서와 동일한 의미로 쓰일 수 없다. 우리가 세 가지 상황에서 공통으로 상정되는 붉은 삼각형에 대한 인상을 간접적으로밖에 정의하지 못한다면, 즉 인상이 저 세 가지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성립하는 존재물이라는 점 이상의 규정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저 ‘인상’이라는 어휘는 앞서 셀라스가 II장에서 비판했던2 ‘부호’(code symbols)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인상과 같은 개념을 아예 부정하려는 생각은 셀라스가 앞서 제시했던 심리적 유명론과 소여의 신화 비판을 받아들임으로써 강해진다. “색깔 개념과 같은 가장 ‘단순한’ 개념들조차도 공적인 상황에서 공적인 대상에 대한 공적으로 보강된 반응[을 연마하는] 기나긴 과정의 결실”(Sellars, 1997: 87)이라는 셀라스의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인상이라는 존재물 같은 것이 존재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듯 보인다. 어떤 것에 대한 개념을 갖기 위해 다른 언어 사용자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개념의 사용 규칙에 숙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타인은 알 수 없고 오직 개인 자신만이 특권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의식의 ‘내적 삽화’에 대한 개념에 이르렀는가? 문제설정을 보다 언어철학적으로 정식화하자면, “S는 치통을 앓고 있다”는 S 한 명만이 치통을 앓고 있다면 그리고 오직 그때에만 참이지만, S가 아닌 다른 누구든 이 문장을 통해 사실을 진술할 수 있다.3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요컨대 내적 삽화 개념은 사밀성(privacy)과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뒤섞어 놓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라일(G. Ryle)은, 행동적 증거가 아니면서도 심적 상태에 관한 기술들을 참으로 만드는 내적 삽화와 같은 사적인 존재물을 심리철학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범주 착오(category mistake)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셀라스는 형언 불가능한 사적 삽화의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라일 역시 모종의 착각에 빠져 있다고 본다. 셀라스에 의하면, 내적 삽화는 비언어적이지만 공적인 담론 안에서 얼마든지 언어로 표현 가능한 것이며, 의식 상태의 기술을 위해 내적 삽화 개념을 도입하는 일은 범주 착오가 아니다. 셀라스의 목표는 바로 소여의 신화에 빠지지 않은 채 내적 삽화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다.

셀라스는 이 논의에서 특히 감각 인상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 전에 또 다른 내적 삽화인 사유(thought)에 대한 논의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1)부정과 비판 : 네이버 블로그
2)부정과 비판 : 네이버 블로그
3)그러나 문제가 되는 사적인 인상이 명제적 성격이 아닌 삽화적(episodic)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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