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셀라스, 「추론과 의미」 - 1

Sellars, W., “Inference and Meaning”, Pure Pragmatics and Possible Worlds, ed. Jeffrey F. Sicha, Atascadero, California: Ridgeview Publishing, 1980, 329-354.

I

1. 다음의 추론을 생각해보자.

(1) 비가 온다. 그러므로 땅이 젖는다.

과거에 경험론적 정신을 지닌 철학자들은, 같은 추론을 의심 없이 축약삼단논법(enthymeme)으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 위 추론의 타당성이 생략된 대전제

(2)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

에 의한 전건 긍정이라는 형식에 의해 확보된다고 여겼다. 따라서 어떤 철학자가 (1)을 근거로 비형식적, 질료적 타당성의 존재를 주장할 때, 경험론자들은 그와 같은 추론이 대전제가 생략된 축약삼단논법에 불과하며 따라서 형식적 타당성만을 지닐 뿐이라고 응수할 수 있었다.

2. 경험론자들의 대응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추론의 질료적 원리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위의 논증을 삼단논법의 축약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봐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경험론자들이 위 추론을 질료적으로 타당한 추론이라고 보기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오컴의 면도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추론의 질료적 원리를 도입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추론의 타당성을 규명하기 위해 형식적, 논리적 원리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비가 온다’라는 전제로부터 ‘땅이 젖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를 질료적 원리로 도입한다면, 이것은 (1)의 추론을 해당 원리에 입각해 설명할 수 있다. 한편 일반화 명제인 (2)가 추론의 전제로 도입된다면 형식적으로 타당한 추론이 된다.

3. 그런데 경험론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질료적 원리라는 생각 자체를 공격한다. 일단 이들은 칸트의 통찰대로 논리적 추론 규칙들이 언어 자체의 가능 조건이라고 말한다. 개념이란 칸트의 말대로 판단의 술어이고, 판단은 곧 추론의 요소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추론의 형식을 규정하는 추론 규칙이 없다면 판단과 개념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 형식적 추론 규칙들이 판단과 개념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론자들은 이 외에 비형식적 즉 질료적 추론 규칙들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4. 이러한 생각은 개념 형성에 대한 경험론적 설명을 통해 보완된다. 형식적 추론 규칙이 개념의 형식을 이루는 조건인 한편, 내용은 그에 독립적이다. 예컨대 (2)는 (1)을 추론하도록 하는 조건이지만, 추론을 구성하는 각 개념들 ‘비’, ‘땅’, ‘젖다’ 등의 내용은 형식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경험에 의해 얻어진다. 그렇다면 질료적 추론 규칙은 없거나 기껏해야 부수적인 지위만을 지닐 뿐이다.

5. 그런데 질료적 추론의 지위를 부수적인 것으로 축소하기 위해 위와 같은 논거를 내놓는 학자들 중 어떤 부류는 질료적 추론 규칙의 존재를 부정한다. (1)과 같은 추론이 축약삼단논법 등 형식적으로 타당한 추론의 축약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추론이 아닌 습관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비가 올 때 땅이 젖기를 기대하는 한낱 경향의 표현으로서 추론이 아닌 생각의 “습관적 이행”(Sellars, 1980: 331)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형식적 추론이 한낱 습관이 아닐 이유는 무엇인가? 경험론자들이 이런 국면에 이르게 된 것은, 이른바 인과적 추론(causal inference)이 한낱 습관이 아닌 진짜 추론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순수 사유만으로 자연 법칙을 탐구할 수 있다는 과도한 합리론적 결론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리적 추론에 대한 좋은 설명은 이러한 과도한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인과적 추론을 하나의 추론으로서 고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 덜 과격한 입장은 질료적 추론 규칙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과적 추론을 하나의 추론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이 입장은 질료적 원리들이 추론의 필요조건이 아닐 뿐 아니라 그 권위가 한낱 파생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x는 A이다’에서 ‘x는 B이다’를 도출하도록 하는 질료적 규칙은 ‘모든 A는 B이다’라는 일반화 규칙을 전제한다. 해당 질료적 규칙이 성립하는 것은 순전히 ‘모든 A는 B이다’와 ‘x는 A이다’로부터 ‘x는 B이다’를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입장의 지지자들은 (1)이 어떤 경우에는 형식적 추론 규칙의 축약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자체 하나의 완전한 질료적 추론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질료적 추론을 타당하게 만드는 규칙은 형식적 추론 규칙에 파생적이다.

7. 한편 질료적 규칙이 형식적 규칙에 비해 부수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질료적 규칙의 권위가 형식적 규칙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고유한 것이라는 입장이 가능하다. 이 입장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첫째는 질료적 추론 규칙이 의미를 구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험적 내용을 사유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입장이고, 둘째는 질료적 규칙이 불필요하고 잉여적이라는 입장이다.

8. 질료적 규칙에 대한 경험론적 입장들은, 형식적 추론 규칙이 개념의 유적인 의미를 구성하는 반면 개념의 종적인 의미, 즉 특정한 개념의 의미는 경험에 의해 얻어진다는 생각, 그리고 이 경험이란 질료적 추론 규칙들에 선행한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료적 추론 규칙이 개념의 의미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관점을 경험론자가 취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런 입장은 개념 형성에 대한 이른바 경험론적 설명과 상충하며, 경험론 전통보다는 합리론이나 절대적 관념론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9. 결국 우리는 질료적 추론 규칙에 대해 6가지 상이한 입장을 구별하게 된다.

  1. 질료적 규칙은 언어의 구조 속에서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형식적 규칙만큼이나 언어의 의미에 본질적인 조건이다.
  2. 질료적 규칙은 의미의 본질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형식적 규칙과 별개의 고유한 권위 원천을 지니며, 경험적 내용에 관해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3. 질료적 규칙은 고유한 권위를 지니지만 의미의 본질적인 조건도 아니고 경험적 내용을 사유하는 데 필수적이지도 않다. 질료적 규칙은 편의상 도입될 뿐이다.
  4. 질료적 규칙은 추론 규칙이기는 하지만 그 권위는 형식적 규칙에 파생적이다.
  5. 질료적 규칙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형식적 추론의 축약 표현일 뿐이다.
  6. 질료적 규칙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추론의 형태로 위장한 한낱 생각의 연쇄일 뿐 전혀 추론이 아니다.

II

10. 그런데 우리는 아직 질료적 추론 규칙이 정확히 무엇인지 규정을 내리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형식과 질료에 관한 모호한 역사적 구분에 의존하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두 개의 구문론적 규칙에 관한 카르납의 구별을 통해 개념적 모호성을 해소할 수 있다.

11. 카르납이 『언어의 논리적 구문론』(Logical Syntax of Language)에서 “변환 규칙”(transformation rules)이라 부르는 추론 규칙은 한 언어의 논리적 구조를 규정함으로써 언어를 정의하는 데 핵심적인 규칙들이다.1) 변환 규칙은 메타언어 층위에서 대상언어에 의해 정의되는데, 한 표현으로부터 어떤 표현이 직접적으로 귀결되는지를 명시한다. 변환 규칙은 대상언어의 타당한 문장들과 구분되어야 하는데, 대상언어의 타당한 문장들은 변환 규칙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정당화되는 문장들이다. 어떤 문장이 타당하다면 그 모순 문장은 부당(contravalid)하다. 타당하거나 부당한 문장은 결정적(determinate)인 문장이며, 타당하지도 부당하지도 않은 문장은 미결정적(indeterminate)인 문장이다. 논리적 표현이란 그 표현들로만 구성된 문장이 항상 결정적인 그러한 표현을 말한다. 그리고 한 문장의 내용이란 그 문장으로부터 귀결되는 타당하지 않은(non-valid) 문장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12. 카르납은 논리적 변환 규칙과 논리 외적 변환 규칙을 구별한다. 논리 외적 변환 규칙의 타당성은 특정한 기술적 표현(descriptive expressions)을 포함하는지의 여부에 의존하는 반면 논리적 변환 규칙은 그렇지 않다. 논리적 논증에서와 달리 논리 외적인 논증은 어떤 기술적 표현이 발생하는가에 그 타당성을 의존한다. 특히 논리 외적 추론 규칙의 후보에는 일반화 문장을 첨가함으로써 형식적 추론이 되는 추론, 인과적 추론이 있다. 이때 일반화 문장은 자연법칙을 정식화한다. 그리하여 카르납은 (1)과 같은 추론(일반화 문장이 첨가될 때 형식적으로 타당해지는 종류의 추론)을 타당하게 하는 규칙을 P-규칙이라 하고, P-규칙에 의해 타당성을 얻는 추론을 P-타당한 추론이라고 한다. 반면 논리적 규칙은 L-규칙이고, L-규칙에 의해 타당한 추론은 L-타당한 추론이다. 예컨대

∀x(Px→Qx)

이 자연법칙을 정식화한 일반화 문장이라고 할 때,

∀x(Px→Qx)이고 Pa이다. 따라서 Qa이다

는 L-타당한 추론이고,

Pa이다. 따라서 Qa이다

는 P-타당한 추론이다.

13. 이에 상응하는 P-타당한 문장과 L-타당한 문장을 구별할 수 있다. 예컨대

[∀x(Px→Qx)&Pa]→Qa

는 L-타당한 문장이고

Pa→Qa

는 P-타당한 문장이다. 위 문장은

Pa&~Qa

가 P-부당한 문장이기 때문에 P-타당하다.

14. 또한 내용에 대한 카르납의 정의에 따르면 Qa는 Pa의 내용을 이룬다. 위의 구별을 사용해서 엄밀히 말하면, Qa는 Pa의 L-내용은 아니지만 P-규칙에 지배된다는 의미에서 Pa의 내용을 이룬다.

15. 그런데 카르납은 L-규칙과 P-규칙을 구별한 뒤 P-규칙이 기술어(descriptive terms)들의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카르납에 의하며 P-규칙을 포함하는 모든 언어에 대해, 해당 언어가 표현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으면서 L-규칙으로만 이루어진 언어를 구성할 수 있다. 카르납은 P-규칙이 L-규칙과 별개의 규칙으로 성립한다고 주장하지만 P-규칙이 없어도 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입장 3과 입장 4 중 어딘가에 속함을 알 수 있다.

16. 물론 카르납의 논의는 자연언어가 아니라 논리학자들의 인공언어를 다루고 있지만, 이 인공언어는 실제 언어로서 무리 없이 채택되어 사용 가능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카르납이 보기에 P-규칙은 자연언어에서도 반드시 포함될 필요가 없으며, 언어 규칙으로 P-규칙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언어 사용자들이 편의에 따라 선택할 사안이다.

17. 주목할 만한 것은, P-규칙을 포함하는 언어와 P-규칙을 포함하지 않는 언어 사이에서 각 언어에 대응하는 기술적 표현들은 (카르납이 정의한 의미에서) 같은 내용을 지닐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어떤 술어 ‘Px’의 내용은 ‘Px’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것들의 집합이며, P-규칙을 받아들이는 언어에서는 ‘Px’로부터 보다 많은 것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 안에서 ‘Px’의 내용은 더 풍부할 것이다.

18. 카르납에 의하면 P-규칙은 편의를 위해 도입되지만 언어를 풍부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P-규칙은 추론 과정에서의 지적인 수고를 덜어줄 뿐이다. 그러면 카르납은 P-규칙의 권위가 파생적이라고 주장하는가? 그는 P-규칙의 권위의 원천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P-규칙의 단점에 대해 말한다. P-규칙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언어에서 과학적 탐구를 진행하는 데 제약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P-규칙이 많은 만큼, 과학적 발견에 따라 언어 내 기존 P-규칙들을 추가하거나 제하거나 수정해야 할 경우도 늘게 된다. 언어에 P-규칙을 도입하는 일이 합리적인 경우는 P-규칙의 도입을 통해 얻어지는 편의가 P-규칙의 수정이라는 번거로운 절차 탓에 과학에 부과되는 제약을 상회할 경우이다. 여하간 카르납의 글에서는 P-규칙이 L-규칙과 별개의 종류의 권위를 지닌다는 주장을 찾아볼 수 없다.

19. 카르납은 P-규칙과 L-규칙이 추론 규칙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이 경우 규칙들은 메타언어 층위에서 기술된다), 대상언어 내에서 언어 규칙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참인 기초 문장(primitive sentences) 내지 특권적 문장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규칙의 두 가지 형태는, 언어에 전건 긍정만 규칙으로 주어진다면 상호 변환 가능하다. 그런데 카르납은 규칙, 특히 P-규칙을 대상언어 내의 기초 문장의 형태로 서술하기를 선호한다. 이는 그가 P-규칙의 편의성이 추론에 필요한 전제들의 수를 줄이는 데 있다고 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P-규칙이 둘째 형태로 서술될 경우 추론의 전제로서 쓰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III

20. 형이상학자는 P-규칙과 L-규칙에 대한 카르납의 구별을 지지하면서도 카르납이 P-규칙에 고유한 지위나 기능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불만을 표할 것이다. 형이상학자가 보기에 L-규칙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고 P-규칙을 통해 비로소 타당성을 확보하는 추론이 있으며, 카르납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21. 형이상학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추론은 바로 가정법적 조건문(subjunctive conditionals)이다. 일단 순수히 형식적으로 타당한 가정법적 조건문을 검토해 보자.

(3) 만일 무언가 붉은 삼각형이었더라면, 그것은 붉었을 것이다

(4) 붉은 삼각형인 모든 것은 붉다

와 다르다. 위의 경우 가정법적 조건문은 비-가정법적 조건문과 마찬가지로

‘x는 붉은 삼각형이다’로부터 ‘x는 붉다’를 추론할 수 있다

라는 논리적 규칙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밖에도 ‘이것은 붉은 삼각형이다’가 거짓이라는 점을 승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별된다. 다른 한편

(5) 이것이 붉은 삼각형이기 때문에, 이것은 붉다

는 똑같은 논리적 규칙을 표현하는 동시에 (3)이나 (4)와 달리 ‘이것은 붉은 삼각형이다’와 ‘이것은 붉다’를 모두 승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게다가 마찬가지로 다른 형태의 조건문과 변별되는 특징을 지니는

(2′) 만일 비가 왔더라면 땅이 젖었을 것이다

‘비가 온다’로부터 ‘땅이 젖는다’를 추론할 수 있다

라는 추론 규칙의 표현이 되지만, 이 규칙은 형식적 규칙이 아니다. 형이상학자에 의하면, 이 분석을 받아들인다면 가정법적 조건문을 설명하기 위해 질료적 추론 규칙을 도입해야 한다. 위의 분석은 질료적 추론 규칙이라는 것이 형식적 추론 규칙과 별개로 성립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논리적 추론 규칙을 표현하지 않는 가정법적 조건문들을 구성하는 개념적 틀에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정법적 조건문은 과학적 탐구나 일상 담론 등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언어표현이기 때문에, 가정법적 조건문에 대한 위의 분석을 받아들인다면 질료적 규칙의 도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22. 경험론자들은 이에 대해, 가정법적 조건문의 참은─특히 (3)뿐만 아니라 (2′)의 참도─순수 형식적 원리에 파생적이라고 대응할 것이다. 그 근거로 이들은 가정법적 조건문이 명시적인 형태가 아니며 축약삼단논법을 그 안에 숨기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는 이미 논문의 초두에서 언급되었던 주제이지만, 지금 이 주장을 한 번 더 검토해보자.

23. 그렇다면 경험론자들의 주장대로 질료적 규칙을 도입하지 않고서 가정법적 조건문을 명시적으로 정식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가정법적 조건문 앞에 일반화 정식을 표현하는 절을 추가함으로써 정식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

(A) 항상 비가 올 때마다 땅이 젖기 때문에, 만일 비가 왔더라면 땅이 젖었을 것이다.

(A)는

‘∀x(Fx는 Gx를 함축한다)’로부터 ‘Fa는 Ga를 함축한다’를 추론할 수 있다

는 논리적 규칙을 표현한다고 상정된다. 그런데 (A)는 질료적 함축의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 즉 ‘∀x(Fx→Gx)이기 때문에, Fa→Ga’와 동일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질료적 함축에 대응하는 표현은 ‘비가 왔더라면 땅이 젖었을 것이다’가 아니라 ‘비가 온다면 땅이 젖는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x(Fx→Gx)이기 때문에, Fa→Ga’에 대응하는 표현은 (A)가 아니라 다음 문장이다.

(A′) 항상 비가 올 때마다 땅이 젖기 때문에, 비가 온다→땅이 젖는다.

(A)의 가정법적 어조는 (A′)에서 직설법적(indicative)으로 바뀌었다. (A′)가 표현하는 질료적 함축은 “‘∀x(Fx는 Gx를 함축한다)’로부터 ‘Fa는 Ga를 함축한다’를 추론할 수 있다”라는 논리적 규칙과 동일시될 수 없다.2) 그리고 (A′)는 (A)와 등치될 수 없다. ‘사실적으로 모든 A는 B이다’를 승인하면 ‘만일 A였다면 B였을 것이다’도 승인하게 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는 단순히 모든 A가 B라는 사실에 관한 주장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24. 한편 ‘비가 올 때마다 땅이 젖는다’를 질료적 함축이 아닌 필함(entailment)으로 해석해본다면, “‘∀x(Fx는 Gx를 함축한다)’로부터 ‘Fa는 Ga를 함축한다’를 추론할 수 있다”는 논리적 규칙은

‘∀x(Fx는 Gx를 필함한다)’로부터 ‘Fa는 Ga를 필함한다’를 추론할 수 있다

로 바뀔 것이다. 이 규칙에 의해 정당화되는 정식화는 다음과 같다.

(A′′) 비가 올 때마다 (필함의 의미에서) 땅이 젖기 때문에, 비가 온다는 것은 땅이 젖는다는 것을 필함한다.

필함은 가정법적 조건문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에, (A′′)는 (A)와 동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A′′)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질료적 추론 규칙을 도입해야 한다. “비가 젖은 땅을 필함한다고 말하는 것은, 비의 존재를 주장하는 문장으로부터 젖은 땅의 존재를 주장하는 문장을 추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Sellars, 1980: 14) 경험론자들의 요구대로 가정법적 조건문을 순수 형식적으로 정식화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25.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보자.

(B) 비가 올 때마다 땅이 젖는다는 점과 비가 온다는 점이 모두 옳았더라면, 땅은 젖었을 것이다.

(B)는 “‘∀x(Fx는 Gx를 함축한다)’와 ‘Fa’로부터 ‘Ga’를 추론할 수 있다”라는 논리적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B)의 내용이 ‘~때문에’ 문장으로 표현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해당 표현은 가정법적 조건문에서와 달리 화자가 ‘~때문에’ 앞에 오는 문장을 승인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가정법적 조건문을 (B)로 표현하면 모든 가정법적 조건문들이 논리적 참이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3) 즉 거짓인 가정법적 조건문을 설명하지 못한다.

26. 가정법적 조건문을 다른 논리적 규칙으로 해석할 다른 방법이 없는 한, 가정법적 조건문에 관한 위의 고찰은 질료적 추론 규칙이 성립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질료적 규칙이 형식적 규칙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4) 그러나 이로부터 질료적 규칙이 언어에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질료적 규칙에 지배되지 않는 기술적 언어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언어들에서는 가정법적 조건문을 만들 수 없다. 카르납이 염두에 두고 있는 언어들은 내포적이지 않은 순수 외연 언어들이기 때문에 가정법적 조건문의 형식화를 불허하며, 그는 이 언어들이 자연언어로 쓰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카르납에게 가정법적 조건문은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27. 그러나 가정법적 조건문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P-규칙이 불필요하다는 주장과 다르다. 셀라스에 의하면, 질료적 가정법적 조건문이 불필요하더라도, 질료적 가정법적 조건문들이 수행하는 기능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가정법적 조건문이 없더라도 메타언어에서 질료적 규칙들의 직접적 표현을 부여함으로써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게 할 수 있다. “만일 Fa라면 Ga일 것이다”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Fa’로부터 ‘Ga’를 추론할 수 있다”를 사용해서 질료적 규칙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정법적 조건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수행하는 질료적 규칙의 기능이다.

28. I장의 6가지 입장5)과 관련하여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우리는 일단 4번 안이 옹호될 수 없음을 보였다. 그렇다면 카르납의 입장은 3번 안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될 터이다. 한데 우리는 4안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가정법적 조건문 등에 의해 수행되는 중요한 기능이 있으며, 이 기능은 메타언어에서의 추론 규칙을 형식화함으로써 동일하게 수행될 수 있음을 논했다. 그렇다면 질료적 규칙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2안이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29. 셀라스는 2안을 선택하고, 앞으로 질료적 추론 규칙과 기술어들 사이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밝힌 뒤 2안이 1안을 내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한편, (특히 반사실적 사태들과 관련하여) 질료적 가정법적 조건문의 역할을 되새긴다면 인과적 추론이 추론으로 위장한 습관적 연상에 불과하다는 흄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셀라스는 질료적 추론 규칙도 형식적 추론 규칙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서, 추론 규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


1)Carnap, R., Logical Syntax of Language, trans. Amenthe Smeaton, London: Routledge, 1937, 170.

2)질료적 함축이 직설법적 조건문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으나, 논문에서는 이 문제는 차치한 채 가정법적 조건문과 직설법적 조건문의 의미 차이를 주로 문제 삼고 있다. 예컨대 본문의 (2)와 (2′)에 관해서, 실제로 비가 왔고 땅이 젖었지만, 이 땅은 지붕 아래 있어서 비를 맞지 않고 누군가 실수로 쏟은 물에 의해 젖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2)는 참이지만 (2′)는 참이 아니다. 셀라스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질료적 함축이 가정법적 조건문의 추론 규칙을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애초에 (A′′)도 동어반복 아닌가?

4)가정법적 조건문에 관한 분석을 통해 질료적 규칙의 독립성을 논증하려는 셀라스의 논지는 두 가지의 의문점에 부딪힐 수 있다. 첫째, 직설법적 조건문과 가정법적 조건문이 정말로 그렇게 본질적으로 다른가? 학자들 중에서는 양자의 차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거나 사소하다는 입장을 지닌 논자들도 있다. 둘째, 조건문은 정말 질료적 함축으로 해석될 수 없는가? 물론 질료적 함축으로 해석하는 일이 질료적 함축의 역설이라는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A이면 B이다”라는 일상언어의 조건문이 “A→B”라는 질료적 함축을 포함한다는 이른바 논란 없는 원리(uncontested principle)는 널리 채택되는 원리이다. 직설법적 및 가정법적 조건문의 차이가 사소할수록 그리고 논란 없는 원리가 설득력 있을수록, 가정법적 조건문을 통한 질료적 추론 규칙의 독립성에 대한 근거는 점점 약화될 것이다.

5)질료적 규칙은 언어의 구조 속에서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형식적 규칙만큼이나 언어의 의미에 본질적인 조건이다. 2. 질료적 규칙은 의미의 본질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형식적 규칙과 별개의 고유한 권위 원천을 지니며, 경험적 내용에 관해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3. 질료적 규칙은 고유한 권위를 지니지만 의미의 본질적인 조건도 아니고 경험적 내용을 사유하는 데 필수적이지도 않다. 질료적 규칙은 편의상 도입될 뿐이다. 4. 질료적 규칙은 추론 규칙이기는 하지만 그 권위는 형식적 규칙에 파생적이다. 5. 질료적 규칙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형식적 추론의 축약 표현일 뿐이다. 6. 질료적 규칙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추론의 형태로 위장한 한낱 생각의 연쇄일 뿐 전혀 추론이 아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III장을 며칠을 붙들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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