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의 문제들: 아베로에스 vs. 아퀴나스

14. 아퀴나스가 아베로에스(또는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의 지성단일성론(monopsychism)에 대해 어떤 비판을 제기하는지 설명하고 그 비판이 타당한지 검토하시오.

아베로에스는 지성이 개별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독립적 실체라는 지성단일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사고 작용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아베로에스를 비판하였다. 아베로에스의 지성단일론은 인간을 사고 작용의 주체에서 사고 작용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납득하기 어려운 입장으로 귀결되고 만다는 것이 아퀴나스가 제시한 비판의 요지이다.

아베로에스와 아퀴나스 사이의 논쟁은 ‘지성(nous)’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 모호하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즉,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질료형상론을 따라 영혼을 신체의 ‘형상(eidos)’ 혹은 ‘현실태(entelecheia)’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영혼의 정의를 받아들일 경우, 질료와 형상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신체와 영혼도 서로 분리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일부분’인 지성이 다른 감각작용들과는 달리 신체와 섞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성의 비물질성을 받아들일 경우, 지성은 신체에서 분리될 수 있어야 한다.

아베로에스는 영혼의 정의와 지성의 비물질성 사이의 양립 불가능성으로부터 지성은 영혼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영혼의 정의를 긍정하면서 영혼은 신체와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영혼의 정의가 물질적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지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지성은 영혼의 일부분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아베로에스에게 지성이란 개별 인간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어 존재하는 비물질적 실체일 수밖에 없다.

아퀴나스가 아베로에스의 입장을 거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로, 아퀴나스는 아베로에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주석적으로 잘못 독해하였다고 지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에 관하여』 2권 2장에서 모든 생명활동을 영혼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인간의 지성작용을 생명활동에 포함시킨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성과 영혼을 분리시킬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서 지성작용이란 영혼의 작용 중 일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로, 아퀴나스는 영혼의 정의와 지성의 비물질성 사이의 양립 불가능성이 철학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식물이나 동물에게는 없는 독특한 형상을 지닌다. 인간의 영혼은 주어진 감각을 초월할 수 있는 지성작용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자립적 형상’이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이 신체의 형상이면서도 식물이나 동물에게 내재된 일반적인 형상들과는 달리 신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가능하다.

아퀴나스의 주장을 부정적 관점과 긍정적 관점에서 각각 평가해 보자. 우선, 영혼의 정의와 지성의 비물질성이 양립 가능하다는 아퀴나스의 주장은 순환논증에 빠진다는 점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의 주장은 인간의 영혼이 독특하다는 전제에 근거하여 제시된 것이지만, 인간의 영혼이 독특하다는 전제는 인간의 영혼이 신체의 형상이면서 지성의 비물질성을 지닐 수 있다는 주장을 단지 다시 설명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아퀴나스의 주장은 아베로에스의 지성단일론에 비해 지성작용의 개별성을 잘 설명한다. 실제로, 아퀴나스는 자신에게 제기되는 순환논증의 혐의를 자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사고의 주체가 개별 인간이어야 한다는 확신에 근거하여 지성을 인간에게 내재하는 원리라고 강조하였다. 즉, 지성이 인간 밖에 존재한다는 아베로에스의 지성단일론에서는 “이 개별적 인간이 이해작용을 한다.”라는 너무나 자명한 주장이 거짓이 되고 만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지성이 사고하는 주체이고, 인간은 그 지성에 의해 사고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퀴나스의 주장은 지성의 개별성을 옹호하면서 비상식적 결론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만큼은 아베로에스의 지성단일론에 비햏 강점을 지닌다.

참고

이재경, 「’성난 황소’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연구』, 제81집, 2002, 175-198.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