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드리고 싶은 답변은 @YOUN 님께서 남기신 답변과 겉으로 보기엔 완전히 상반된 답변이지만, 또 사실 뿌리에선 별 이견이 없는 생각이지 않나 싶습니다.
"철학을 배우면 삶과 사물을 볼 때 뭔가 다른 것이 꿰뚫어져 보이는(?) 능력이 생기나요?"
이 질문엔 저도 그 교수님의 답변에 동의합니다. "꿰뚫어져 보이는(?) 능력"이라는 말도 정의하기 나름이긴 할텐데 ... 그런 비슷한 능력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고분자물리학/사회복지학 등 타 학문들 또한 그런 비슷한 능력을 충분히 배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철학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대답을 내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 즉, 우리가 실천적으로 어떠한 윤리를 따라야 하는지, 어떠한 정당을 옹호해야 하는지, 어떠한 법을 수립해야 하는지, 어떠한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는지는 안타깝게도 현대철학에서 논의되는 주된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시대의 고전적 철학자 중에서 실천적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제시하는 인물은 많지 않다.)
의 경우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시대의 고전적 철학자"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피터 싱어를 위시한 현대 실천윤리학의 거장들은 위 답변에 대한 단적인 반례인 듯 싶습니다.
더불어 언어철학, 형이상학등 보다 "이론적"인 영역에서도 보다 실천적인 교훈을 끌어내려는 시도들이 학계 거물들 사이에서도 점점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예. 제이슨 스탠리).
역사상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학자들, 가령 플라톤, 데카르트부터 특히 칸트, 헤겔, 후설, 하이데거 등은 소위 일반인들도 "우와" 할 만한 '인류/세계에 대한 통찰' 또는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위 링크 글에서 선생님들의 표현대로 "궁극적 진리"를 제시하려 하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이를 지시할 만한 어떤 단서로서의 무언가에라도 천착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그런 류의 철학'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세계) 철학계의 합의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데이빗 루이스의 양상 실재론('평행 세계들이 존재한다!')는 일반인들도 "우와"할만한 주장이지 않나요? (그게 "우와!"일지, "우와..."일지는 다른 문제입니다만 )
저는 사실 좀 아닙니다만,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은 여전히 '인류/세계에 대한 통찰', '패러다임 전환', '궁극적 진리'를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공유하는 생각은 다만 ''궁극적' 문제를 한 큐에 해결하려는 시도는 지금껏 죄다 실패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궁극적 진리'를 쪼개서 차근차근 각개격파를 할 필요가 있다.' 인 듯 싶습니다. 그렇기에 분업화가 받아들여지는 것이구요.
따라서 "'그런 류의 철학'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에서 "불가능"은 일종의 사회적/공학적(?) 불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게 좀더 합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불가해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어 전 철학 영역의 문헌을 섭렵해 종합하고 그에 비춰 전 철학 영역을 통합한 체계를 제시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야 그는 분업에 의존할 필요도 없겠고, 곧 자기 혼자서 '그런 류의 철학'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철학을 배우면 실존, 또는 현실(의 세계관)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그리고 '없다면 어떤 이유에서이고, 있다면 어떤 변화일까요?'
전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건 철학이 특별한건 아니라고 봅니다. 다른 학문을 배우면서도,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충분히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례로 환각제 사용이 철학적 믿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본 포럼에서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철학, 혹은 최소한 강단에서 '철학'이라고 불리는 활동이 할 수 있는 기여가 있다면 이런 실존/세계관/그 변화의 이유에 대해 따져묻고, 각각의 근거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한때 유행했던 밈 중에서 '디자이너 vs 엔지니어' 밈이 있었죠. 대략
디자이너: 내가 ~~~한 기능을 갖는 제품을 만들어봤어.
엔지니어: 오, 신박한데. 그거 어떻게 작동하는거야?
디자이너: 그건 니가 생각해야지
엔지니어:
로 흘러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유비에 빗대자면 철학자의 역할은 엔지니어의 역할에 가깝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