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에서 Umwelt와 Lebenswelt의 차이

후설 현상학에서 Umwelt(주변세계)와 Lebenswelt(생활세계)의 차이가 뭔가요? Lebenswelt는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서) 선(先)과학적 경험세계로 이해하고 있는데, Umwelt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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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 현상학에서 'Umwelt'가 정확히 어떤 뜻인진 저도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Umwelt'는 '환경'이란 뜻입니다(예컨대 Umweltbewegung = 환경 운동). 바로 영어의 'environment'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동물들에겐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Umwelt)이 있지만, 인간들에겐 그에 더해서 '세계'(Welt)가 있다고 보통 말합니다. 인간 '세계'엔 의미와 가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의 생존 '환경'과 본질적으로 다르죠. 『존재와 시간』에 나오는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라는 개념도 다른 동물들과 다른, 인간 현존재의 실존적 존재 방식을 말하기 위해 하이데거가 사용한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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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x님께서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현상학과 해석학에서 '환경(Umwelt)'은 '세계(Welt)'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전자는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는 인식 지평이고, 후자는 우리 자신과의 실천적 관계 속에서 주어져 있는 인식 지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상학-해석학적으로는 세계가 환경에 선행하죠. 실천적 태도와 완전히 분리된 사태란 엄밀히 말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가다머는 '환경'과 '세계'를 이렇게 해명합니다.

세계를 가진다는 것은 세계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한다는 뜻이다. 세계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는 세계 속에서 마주치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대할 수 있도록 그 경험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경험을 있는 그대로 대할 수 있는 능력은 세계를 가지는 동시에 언어를 갖는 하나의 사태로 집약된다. 이로써 세계Welt라는 개념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세계Umwelt와는 대립된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임홍배 옮김, 문학동네, 2012, 384쪽.)

즉, 세계란 우리가 특정한 '태도(Verhaltung)' 혹은 '관점(Ansicht)'을 가질 때에만 주어질 수 있는 인식 지평인 것이죠. 그래서 동물은 단순히 환경에 놓여 있을 뿐 세계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세계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죠. 가다머는 이 점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포괄적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환경 개념은 모든 생명체에 적용될 수 있으며, 생명체가 삶을 영위하는 조건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로써 분명해지는 것은 여타의 생명체와 달리 인간은 '세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세계'가 다른 생명체의 경우와 동일한 의미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환경 속에 이미 편입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385쪽.)

그리고 이렇듯 '세계'를 가진다는 것과 '태도' 혹은 '관점'을 가진다는 것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계(Welt)'와 '세계관(Weltansicht)'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즉, 즉물적인 사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는 항상 특정한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진리와 방법』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세계의 ‘즉자존재’를 세계를 보는 ‘관점’, 즉 세계관과 대립시키는 사람은 신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거나―그런 경우 ‘즉자존재’는 그렇게 사고하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오로지 신의 관점에서 그렇게 설정되는 것이다―아니면 사탄 루시퍼의 관점을 취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 전체가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을 신과 동격에 놓으려는 입장이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390쪽.)

*흥미롭게도 피츠버그 학파의 존 맥도웰이 자신의 주저인 Mind and World에서 '환경'과 '세계'를 구별한 가다머의 주장을 아주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죠. 정확히 제가 인용한 구절들이 등장하는 『진리와 방법』의 페이지들을 말이에요. 사실, '환경'과 '세계'라는 구별 자체는 가다머가 처음 제시한 것이 아니라 후설이나 셸러 등 이전 현상학자들이 제시한 것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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