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표시자(type indicator)로서 조사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조사들은 어쩌면 유형 표시자들은 아닌가? 즉, 조사 𝜁란 일종의 𝜎→(𝜏→t) 유형 표현이고, 이때 𝜎와 𝜏는 각각 조사들이 수식할 수 있는 낱말(term) 유형과 𝜁(𝜀𝜎 )을 제거한, 어떤 (불완전한) 문장꼴의 유형은 아닌가?

다음 예시를 봅시다:

  • 철수 한 시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 공부했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변환될 수 있어 보입니다:

  • (𝜆x.x는 한 시에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철수)
  • (𝜆x.철수는 x에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한 시)
  • (𝜆x.철수는 한 시에 x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양화중학교)
  • (𝜆x.철수는 한 시에 양화중학교에서 x를 공부했다)(논리학)

즉 각각은 다음과 같은 함수에 철수, 한 시, 양화중학교, 논리학이 적용된 표현의 사례입니다:

  • 𝜆x.x는 한 시에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
  • 𝜆x.철수는 x에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
  • 𝜆x.철수는 한 시에 x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
  • 𝜆x.철수는 한 시에 양화중학교에서 x를 공부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각각에 아무 이름을 넣는다면 구문론적으로 오류 있는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가령,

  • (𝜆x.x는 한 시에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한 시)
  • (𝜆x.철수는 x에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양화중학교)
  • (𝜆x.철수는 한 시에 x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논리학)
  • (𝜆x.철수는 한 시에 양화중학교에서 x를 공부했다)(철수)

는 의미뿐 아니라 문법적으로도 틀린 듯 보이는, 다음 문장들을 만듭니다:

  • (*)한 시는 한 시에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
  • (*)철수는 양화중학교에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
  • (*)철수는 한 시에 논리학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
  • (?)철수는 한 시에 양화중학교에서 철수를 공부했다

저는 이것이, 일견 조사들이 모종의 유형적 제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를테면,

  • ‘-는’은 문장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유형만을 논항으로 받는다
  • ‘-에’의 어떤 (방향을 의미하는 경우를 제외한) 형태는 시점을 지칭하는 유형만을 논항으로 받는다
  • ‘-에서’는 장소를 지칭하는 유형만을 논항으로 받는다
  • ‘-를’은 어떤 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형만을 논항으로 받는다

이런 점에서, 조사들은 유형 표시자(type indicator)로서 역할할 수 있습니다. 즉, 수식되는 낱말이 어떤 범주 내지 유형에 해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조사 𝜁를 𝜎→(𝜏→t) 유형 표현이라고 할 때, 𝜏는 통상 ‘구’(phrase)라고 일컬어지는 종류의 문장 성분이 결여된 문장꼴 유형을 가리키는 것이 됩니다. 가령, a가 𝜎 유형 표현이고 𝜁가 ‘-는’이라면, 𝜏는 주어구가 결여된 문장꼴 유형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때 우리는 어떤 조사들은 𝜏=t를 만족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예시를 봅시다:

  • 철수는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
  • 철수는 한 시에 논리학을 공부했다

따위는 ‘…에’, ‘…에서’ 구가 생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문장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에’나 ‘…에서’는 𝜎→(t→t) 유형의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상 ‘부사구’라고 부르는 표현들은 이러한 유형의 표현을 말하는 것이겠죠.

저는 이런 발견이 논리 교육에 어떤 쓸모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교육이 정확히 어떤 형태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못하네요. 한국어 통사론과 한국어의 형식 의미론을 좀 더 공부해봐야겠습니다.

2개의 좋아요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라면, 조사의 제약이 은유적이라는 점이 문제가 될 듯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는 당연해 보이지만, 다음 문장을 고려해보자면:

  • 철수는 양화중학교에서 논리학을 명제 논리에서 연관 논리까지 공부했다.

(1) "에서"라는 조사는 유형 표시자로서 중의적이거나,
(2) 두 번째 "에서" 토큰은 은유적으로 장소인 무언가(어떤 과목의 범위)를 지칭하는 유형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범위'라는 표현도 은유적이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듯합니다. 물론 제가 아직 생각하지 못한 진정한 중의성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케이스만 보자면 저는 직관적으로 (2)가 조금 더 그럴듯하게 들리네요. 그러나 어떻게 유형 이론을 통해 이 은유성을 해석할 수 있을지는 명료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Gemini에게 흥미로운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수식이 많아 이미지로 올립니다.


Gemini가 제안한 DTS에 비추어 보자면, ‘에서’같은 낱말은 앞에 오는 낱말 유형에 따라 논항으로 받는 식의 유형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앞에 시간 낱말이 온다면 단지 t타입을 논항으로 받는 함수이지만, 앞에 방향점(?) 낱말이 온다면 ‘…까지’가 포함된 모종의 빈 문장을 받는 함수가 된다는 식으로요. 또는, 실제 ‘에서’의 논리적 구조는 조사 ‘까지’ 또는 장소(?) 낱말을 논항으로 받는데, ‘까지’를 받을 경우 두 낱말을 논항으로 받아 문장을 논항으로 받고 문장을 내놓는 표현을 내놓는, 즉 e → e → t → t 타입의 표현을 내놓고, 장소 낱말을 받을 경우 t → t 타입의 표현을 내놓는 함수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이론화의 영역이지 싶습니다! 어쩌면 논리적 구문론으로부터 발전시켜 한국어 구문 트리를 다시 짤 수도 있겠고요.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