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 논법에 관한 질문

저는 철학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질문에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히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몇 달 전 분석철학에 대한 책을 읽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창시한 고전적인 3단논법의 논리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비판의 논지는 예컨데, 고전적 삼단논법의 한 예시로서,

대전제: 모든 사람이 죽는다.
소전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에서, 대전제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1) 모든 사람을 관찰해서 그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검증하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결론을 내리거나, 2) 충분히 많은 사람을 관찰해서 그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검증하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결론을 귀납적으로 내린다는 두 가지 방법이 있겠는데, 귀납법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편적인 진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며, 모든 사람을 관찰한다면 소크라테스 역시 관찰되어야 하는데 그러하다면 대전제에 결론이 포함되어 있는 꼴이므로 논증이 순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삼단논법은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적인 방법론으로서의 가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박이 있나요? 혹은, 삼단논법이 이러한 비판을 피해 가도록 보완하려는 시도가 있었나요?

학부 과학철학 수업시간에 흔히 '모든 A는 B다' 형식의 명제의 반증은 유한한 반례들로 가능하지만 확증은 무한한 사례들이 있어야 하므로 불가능하다고 배웁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받아들이던 말던 해당 형식의 경험적 명제가 어떻게 정당화되느냐는 어려운 이슈 같습니다.

따라서 우선 '모든 A는 B다&a는 A다//a는 B다' 형식의 논증에서, 전제가 선험적이 아닌 경험적으로 정당화되는 명제들일 경우, 말씀하신대로 결론이 '보편적으로 확실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다만 모든 연역 논증들은 만약 전제가 참일 경우 결론이 참일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면 전제가 선험적으로 확실한 명제일 경우에는 결론도 그럴 수밖에 없으니, 만약 전제가 수학에서 참인 명제, 아니면 논리적으로 참인 명제(예: 해는 동쪽에서 뜨거나, 해는 동쪽에서 뜨지 않는다)만으로 이루어질 경우 결론도 참임이 확실하니까, 연역논증은 수학적 진리나 논리적 진리를 다루는 논리로서는 적절해 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로는 수학을 다루는 데에 한계가 있어서, 현대적인 1차 술어 논리로 수학에서 나오는 논증을 다룰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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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출처를 혹시 달아주신다면 정확한 맥락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나눠보도록 하죠.

  1. 논증의 타당성은 형식에 의해 결정됩니다. 따라서 각 전제가 어떻게 참으로 확인되는지, 그것이 우연적 참인지는 논증의 타당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비판의 정확한 맥락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런 식의 비판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대해서도 적절한 비판은 아닌 것 같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생각거리 중에 하나는 연역논증 자체가 혹시 순환논증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건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죠. 어떤 의미에선 연역논증 자체가 순환논증으로 생각될만한 여지가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전제에 이미 결론이 "들어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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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저 앞선 두분의 댓글을 합쳐서 살짝 각주를 달아볼까합니다.

  1. 라쿤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질문자님은 논증의 타당성과 명제의 타당성을 혼동하고 계신듯합니다. 라쿤님이 지적하셨듯, 논증의 타당성은 1) 전제가 참이고 2) 전제들이 형식(=여기서는 삼단논법)에 적절할 경우, 3) 결론의 명제가 참이다.입니다.
    따라서 전제가 참인지 아닌지 자체는 논증의 타당성과는 무관한, 전제로 삼은 명제가 타당한지 아닌지의 문제입니다.

1.1.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을 비판하려면, 삼단논법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를 지적하면 될겁니다. 예를 들면, 단순히 참/거짓으로 분할하기 어려운 명제처럼 말이죠. (당장 생각나는 예시는 "곰돌이 푸는 뚱뚱하다" 입니다. 이 명제의 경우, 뚱뚱하다의 기준에 따라서 참/거짓이 달라지겠죠.)

  1. 사실 질문자님의 의문은 명제의 타당성, 나아가 지식의 확실성을 묻고 계신걸로 보입니다.

만약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 명제의 타당성을 보증하지 않고, 귀납조차 완전한 명제의 타당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면, 지식의 확실성은 어디서 오는가?

그러면 이제 문제는 인식론의 복잡한 차원으로 옵니다. 당장 저기서부터 온갖 질문이 나올 수 있죠.

a) 지식이란 무엇인가? 지식은 어떻게 믿음이나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가?
b) 지식이 확실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학처럼 모든 경우에 언제나 참인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더 약한 조건으로도 만족이 가능한가?
c) 지식은 어떤 경우 확실하다 하는가? 가장 명확하게 분명하여 토대가 되는 지식에서, 적절한 방법(삼단논법 등)으로 확정된 지식을 말하는가? (토대론). 아니면 내가 지식이라 믿는 여러 지식들과 정합적일 때 확실한가? (정합론)
d) 토대론이든 정합론이든 최초의 지식 - 내가 믿는 바는 어떻게 성립하는가? (부터는 보통 인식론의 범위를 살짝 벗어나는 문제에 가깝죠.)

인식론의 복잡한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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