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철학 토론의 장에 참여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과 이에 대한 고대 주석을 위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용어 표준화에 관한 관리자님의 글을 보고 생각나서 정리해 봤습니다.
질문 : 사람과 개는 다르다. 흑인과 백인은 다르고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또 나와 너는 다르다. 각각의 다름은 어떻게 다를까?
이것은 저것과 다르다라거나 이것은 저것과 차이를 갖는다라는 말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가령 동물과 식물이 다른 방식과 사람과 개가 다른 방식과 나와 너가 다른 방식은 각기 다를 것이다. 동물과 식물은 유적으로 다르고 사람과 개는 종적으로 다르고 나와 너는 개체적으로 다르다.
차이를 갖는 것은 공통점을 전제로 한다. 가령 사람과 개 간에 차이가 있다는 말은 사람과 개가 동류라는 걸 전제한다. 동류이지만 동종은 아니라는 지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또 나와 너는 동종이지만 같은 개체는 아니라는 지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들 간에는 차이를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차이란 그에 따르면 완전한 거리인데, 완전한 거리가 있을 수 없는 두 사물 간에는 차이라는 것도 없다. 완전한 거리란 반대되는 두 항 사이에 놓인 어떤 것이다. 가령 흰색과 검은색이 그렇다. 회색은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쯤에 있으므로 양자로부터 완전한 거리에 있지 않다. 서로 완전한 거리를 갖는다는 것은 동류에 속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차이는 동류에 속하는 것들 간에서만 말할 수 있다. 가령 사람과 흰색이 서로 차이를 갖는다라는 말은 거의 무의미하다.
동류에 속한 두 반대항은 그 유를 나눈다. 가령 동물에 속한 두 반대항 '날 수 있다’와 ‘날 수 없다’ 또는 '이성적이다’와 '이성적이지 않다’는 동물을 이러한 특성을 가진 두 종으로 나눈다. 모순율에 의해 어떤 것도 두 반대항을 동시에 지닐 수 없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나뉜 두 종은 본질적 차이를 갖는다고 말한다. 본질적 차이는 종적 차이다.
그런데 흰색과 검은색이 서로 반대항이고 암과 수가 서로 반대항이라면, 어째서 검은 사람과 흰 사람이 종적으로 다르지 않고, 어째서 남자와 여자가 종적으로 다르지 않은지 물을 수 있다. 인종적 차이와 성적 차이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본질적 차이를 구성하려면 반대항은 사물의 질료가 아니라 형상에 속해야 한다. 형상은 종을 구성하고 질료는 개별화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색이나 성별은 질료에 속하는 차이다. 따라서 색의 차이나 성별의 차이는 종적 차이를 구성하지 않는다.
정확히 따지면 차이와 다름을 구별할 수 있다. 차이는 앞서 본 대로 공통의 준거점을 전제하지만 다름은 그러지 않는다. 가령 나와 다른 것은 내가 아닌 모든 것이다. 나는 너와 달라라는 말은 단순히 너는 내가 아니라는 말이다.
차이 : diaphora; difference
다름: heterotes; otherness; (“타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