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로버트 브랜덤의 『명시적으로 만들기』: 『명시적으로 만들기』는 어떤 책인가?(2)

다음 시간에는 7쪽까지 읽을 예정입니다. 책 전체 내용을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14쪽 분량의 서문을 한 번에 살펴보느라 시간이 너무 길어졌는데, 다음 시간부터는 분량이 절반으로 줄고 내용도 훨씬 평이해져서 세미나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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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의 본성에 대한 탐구

『명시적으로 만들기』는 언어의 본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어’란 우리를 합리적, 논리적, 개념적 존재로 구별되게 하는 ‘사회적 실천’이라고 이야기된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하였듯이, ‘합리적(rational)’ 존재란 자신에게 주어지는 암묵적 규범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하고, ‘논리적(logical)’ 존재란 그 규범을 명시적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개념적(concept-mongering)’ 존재란 그 두 가지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즉, 우리는 사회적 실천 속에서 규범을 이미 이해하고 있고, 그 규범을 바탕으로 무엇이 참이고/거짓인지, 옳고/그른지, 정당하고/정당하지 않은지를 판단하고 있고, 상대방과 그 규범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존재이다. 언어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실천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따라서 언어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사회적 실천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분리되지 않는다.

2. 탐구를 위한 전략

브랜덤이 언어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해 제시하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 계기를 지닌다. 그는 우리가 개입하고 있는 사회적 실천을 고찰하고, 그 고찰을 바탕으로 언어적 실천의 구조를 발견하고, 그 구조를 통해 의미론적 내용을 설명하고자 한다. 즉, 첫째는 우리가 언제나 이미 암묵적 실천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논증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화용론(pragmatics)’에 해당한다. 둘째는 암묵적 규범을 내재하고 있는 사회적 실천을 명시적 모델로 그려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통해 ‘이유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놀이(the giving and asking for reasons)’가 제시된다. 셋째는 언어가 어떻게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유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놀이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의미론(semantics)’에 해당한다. “의미론은 화용론에 응답해야 한다(Semantics must answer to pragmatics).”라는 표어는 『명시적으로 만들기』가 채택하고 있는 이와 같은 전략을 요약적으로 드러낸다.

3. 암묵적 규범의 존재

명제적/개념적 내용은 사회적 실천 속에서 부여된다. 이러한 실천은 암묵적 규범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즉, 우리는 아무런 규범도 없는 진공 상태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이미 암묵적 규범에 매개되어 있다. 우리가 알든지 알지 못하든지,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못하든지, 원하든 원치 않든지 우리가 속한 사회적 실천은 암묵적 규범의 지배를 받고 있다. 바로 이러한 규범들이 무엇이 참이고/거짓인지, 옳고/그른지, 정당하고/정당하지 않은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언어’라는 사회적 실천이 어떻게 의미를 얻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실천이 어떠한 암묵적 규범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4. 사용 이론

언어를 사회적 실천에 내재된 암묵적 규범으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종의 ‘의미에 대한 사용 이론(use-theory of meaning)’이다. 이러한 이론은 화용론을 바탕으로 의미론을 설명하고자 한다. ‘화용론’과 ‘의미론’이라는 두 분야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언어가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암묵적 실천에 따라 사용되는 방식이 바로 그 언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5. ‘명시적으로 만들기’의 의미

‘명시적으로 만들기(making it explicit)’란 우리가 사회적 실천 속에서 암묵적으로 규범을 ‘행하는(doing)’ 방식을 논리적 어휘를 통해 명시적으로 ‘말하는(saying)’ 작업이다. 사실, 여기서 ‘명시적으로 만들기’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즉, (1) 토의 상황에서 이유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모든 활동은 이미 그 자체로 ‘명시적으로 만들기’이다. 우리는 상대방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암묵적으로 따른 규범을 명시적으로 반성하여 무엇이 참이고/거짓인지, 옳고/그른지, 정당하고/정당하지 않은지를 말하기 때문이다. (2) 토의 상황을 ‘이유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놀이’라는 모델로 그려내는 작업 역시 ‘명시적으로 만들기’이다. 우리가 토의 상황에서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암묵적인 방식은 ‘이유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놀이’라는 모델을 통해 명시적 형태로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명시적으로 만들기’ 중에서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작업은 후자이다. 『명시적으로 만들기』라는 책은 토의 상황에서 암묵적 규범을 명시적으로 만들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명시적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6. 책의 구조

『명시적으로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3장과 제4장이다. 『명시적으로 만들기』의 핵심 이론이 여기서 제시된다. 나머지 내용은 핵심 이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역사적 배경이거나 핵심 이론을 통한 설명에 해당한다. 즉, 『명시적으로 만들기』는 제1장과 제2장에서 ‘이유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놀이’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기 위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제3장과 제4장에서 ‘이유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놀이’를 언어적 실천의 모델로 제시하고,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에서 ‘이유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놀이’각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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