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년 버튼>에 대한 생각

꽤 오래 전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만화 중에 <5억 년 버튼>이라는 만화가 있다.
나는 이 만화를 잊을 만하면 한 번 씩 보는데, 매번 볼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생각난 김에 이 주제에 대해 블로그 포스팅을 하나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짧은 글을 남겨본다.

우선 <5억 년 버튼>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버튼이 달린 상자를 들고 있는 한 사람을 마주친다. 그는 버튼을 누르면 다른 시공간으로 워프되어 5억 년을 살겠지만 100만 엔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시간 동안 이 세계의 시간은 정지해있고 5억 년을 살고 돌아올 때에는 그 기억을 잃어서 마치 누르자마자 100만 엔을 얻은 것 같이 여기게 될 것이다. 동행자가 버튼을 누르자마자 100만 엔을 받는 것을 보고 주인공도 버튼을 누르는데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떨어져 5억 년을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 뒤로는 뭐 점점 미쳐가다가 갑자기 삼라만상에 대한 지혜를 궁구하더니 억겁의 시간을 지나며 깨달음을 얻어 초월의 경지에 오르면서 이 세계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흘러간다.

마지막으로 이 만화를 봤을 때 내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문제는 "누가 나인가?"라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만화에 약간의 서술트릭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처음과 마지막에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돈을 얻는 현실의 사람이 나인 것처럼 그리지만 중간에는 억겁의 세월을 사는 것이 나인 것처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 중 하나가 "진짜" 내가 아니라면, 즉 현실 세계의 사람과 5억 년을 사는 사람 간에 동일성이 깨진다면 선택은 한결 쉬워질 것 같다. 현실 세계의 사람이 나라면 버튼을 누를 것이고 5억 년을 사는 사람이 나라면 누르지 않을 것이다.

"버튼을 누를 것인가?"에 대한 나의 답은 "안 누를 것이다"였다.
사람의 동일성(personal identity)에 관해 유력한 입장은 크게 (1) 심리적 연속성 가설과 (2) 신체적 연속성 가설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입장을 취하더라도 나는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1) 심리적 연속성 가설부터 보자. 이 가설에 따르면 t2에서의 어떤 사람 P가 t1에서의 사람 H의 기억, 성격적 특성 등 심리적 특질들을 가지고 있다면, 두 사람은 동일하다. <5억 년 버튼> 이야기에서 서술된 바가 현재 사고실험에 대한 비일관성 없는 세팅이라고 가정한다면, 5억 년을 살아야 하는 사람은 버튼을 누르기 직전의 사람과 연속적이다. 따라서 버튼을 누르기 전의 사람과 5억 년을 사는 사람은 동일하다. 그런데 버튼을 누르고 돈을 받는 사람은 이러한 기억의 연속, 그 중에서도 어떻게 보면 매우 중요한 기억(!)의 연속성을 갖고 있지 않다. 적어도 직관적으로는 버튼을 누른 뒤 5억 년을 산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러한 기억 없이 돈을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즉, 고생은 내가 하고 돈은 다른 사람이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나는 그 개고생을 하고 소멸되어 버린다! 심리적 연속성 가설이 맞다면 나는 이 버튼을 누를 만한 조금의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2) 신체적 연속성 가설에 따르면 신체가 점유하는 시공간의 연속성이 사람의 동일성 기준이 되기 때문에, <5억 년 버튼>의 이야기에서 진짜 나는 현실 세계에 있는 자다. 내가 버튼을 누르고, 내가 돈을 받는다. 일견 이 경우에는 버튼을 누르는 것이 꽤 괜찮은 선택지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돈을 받는 사람이 내가 된다는 것이 좋은 위안이 되지는 못한다. 어쨌든 이 시나리오에서 내가 5억 년의 시간을 견뎌낸 뒤에 기억이 지워진다는 심리적 경험을 하는 것은 돈을 받는 사람이 누구냐와는 무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5억 년의 시간을 견뎌내는 그 시나리오가 나의 것이냐 다른 사람의 것이냐는 것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앞서 말했던 "서술트릭"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 같다. 만일 내가 정말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일인칭적 관점에서 이 만화에서 5억 년의 시간을 경험하는 부분은 그냥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기억은 마치 내가 한 경험이 아닌 것처럼 될 것이다. 반면 내가 버튼을 눌렀을 때 실제로 그 경험을 한다면 그 경험은 내 것임이 분명하다. 적어도 이 직관이 맞는다면 기억을 잃는 순간 내 경험이었던 것이 다른 사람의 경험이 되는 것처럼 되는 측면이 있다. 나는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세팅에 따라 실제로 돈을 받는 게 나라 하더라도 5억 년의 경험 또한 내 것이라면 나는 그로 인한 손실이 100만 엔보다 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누르지 않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ernest_scribbler/222512442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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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을 누르기 직전의 사람과 돈을 받는 사람 사이에는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연속성이 성립하니까, 버튼을 누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아닐까요? 오히려 심리적, 신체적 연속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5억년을 살아야 하는 사람의 인격은 버튼을 눌러서 돈을 받는 사람과는 별개의 인격처럼 보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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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도 그래요. 5억 년을 사는 사람과 돈을 받는 사람이 별개인 것 같다는 점은 저한테는 좀 분명해보이는데, 문제는 누가 진짜 나인가 하는 것에서 시작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만화를 보면서 제가 든 생각은 아무래도 버튼을 누르고 5억 년을 사는 사람이 나인 것 같고, 돈을 받는 사람은 버튼을 누르는 순간 분기된 나 아닌 나와 매우 비슷한 누군가인 것 같다는 거죠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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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을 눌러줄 사람들을 모집해서 버튼을 누르면 10만엔을 준다고 하고 90만엔씩 뒤로 받으면 자아동일성 문제는 고민할 필요도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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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마저 하청을ㄷㄷ

동일성 문제로 보면 '기억 이론'으로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기억 이론이 가진 맹점은... 내가 기억 못한다고 정말 그게 내가 아닌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로크의 "용감한 장교" 일화가 너무 잘 알려진 사례인 것 같아요. 전투에서 큰 승리를 이끌었던 용감한 장교는 과거 어린 시절 도둑질 하다가 몰매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교 본인조차 그 기억을 잊었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그 사실을 잊었다면? 그 장교랑 어린 시절 도둑 소년은 다른 사람인가? 하는 문제...

심리적 연속성?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A라는 사람이 갑자기 광인이 되어서 B가 "A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라고 관용적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A는 광인이 되었지만 A는 여전히 A인 것 같습니다.

S.O.M.A 라는 게임이 있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심리적 연속성'이란 것이 이상한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거기서 사이먼이라는 사람은 뇌 스캔을 받은 원본 사이먼이 있습니다. 원본 사이먼은 옛적에 뇌질환으로 죽었지만, 그의 뇌 스캔 기록 때부터 모든 기억 데이터가 남아서, 다른 로봇에 복제가 됩니다. 그 로봇은 뇌 스캔 시점부터의 사이먼의 기억을 갖고 삶?을 진행하게 되죠. 심지어 이 복사 과정은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또 나타나는데, 그때는 로봇과 로봇들끼리 동일성이 충돌합니다. 복제된 기억이 자기가 복제된 기억이라고 생각 안하고, 심지어 동전 던지기 해서 자기가 이겼다고 착각합니다. 심리적 연속성 가설도 일단은 가장 직관적인 것 같지만, 상상 속으로 실험해본다면 상당히 난처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사고실험 자체를 허무맹랑하다라고 보면 애초에 5억년 버튼 자체가 허무맹랑하겠지만요.

어떤 고통을 대가로 보수를 받았는데, 그 일을 다시하기 싫은 이유가 그것에 대한 기억, 자신의 존재성 사이의 충동과 연관이 되어있으리라, 근데 기억이 없다. 좀 멀리서 보자면 그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부주의하게 돈을 버는 것이다. 책임에 대한 관념도 기억과 함께 밥말아먹은 거니깐
근데 그냥 그 버튼을 나무에 돌려 갔다대서 수십번 연타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