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하먼이 쓴 하이데거 해설서를 읽다 보니, 왜 이 사람이 하이데거를 공부했으면서도 객체지향 존재론 같은 이상한 방향으로 빠졌는지 알 것 같다. 하먼은 후설의 현상학을 ‘관념론’으로 단정해버리고, 하이데거의 후설 비판을 일종의 ‘관념론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해설한다. 현상학을 이런 식의 단순한 도식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관념론에 반대되는 ‘객체’, ‘실재’, ‘유물론’ 같은 요소들을 일종의 대안으로서 옹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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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먼은 정말 글을 쉽게 잘 쓴다. 게다가, “es gibt”라는 독일어 표현에 주목해서 하이데거를 설명하는 부분이라든가 ‘도래’, ‘기재’, ‘현재’라는 탈자태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내가 하이데거를 다룰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를 하먼도 동일하게 짚고 있어서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런데 문제는, 후설을 의식에만 갇힌 관념론자로, 하이데거를 의식 바깥으로 나오려고 한 실재론자로 시종일관 완전히 잘못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먼은 현상학자들이 보면 천인공노할(?) 이분법으로 후설과 하이데거를 대립시키고 있어서, 정작 현상학의 전체적인 논지를 완전히 어그러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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