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형의 '4차원 개별자론'에 대한 요약 및 비판적 접근

참고 텍스트 : 백도형. (2012). 심신 유명론으로서의 4 차원개별자론. 철학탐구, 32, 197-226.

백도형은 데이비슨의 사건 개별자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보다 확장시켜 심신 유명론으로서 4차원 개별자론을 제시한다. 4차원 개별자론의 요지는 개별자들을 묶는 보편자로서의 속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모든 개별자들은 그 자체로는 서로 동일하지도 않고 인과성도 가지지 않는 개별자들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가 사건들, 개별자들의 동일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언어적 차원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형이상학적 실재나 범주라고 생각했던 필연성, 속성과 같은 것들은 모두 언어적 차원에서만 성립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주장할 경우 데이비슨의 주장이 속성이원론이라는 주장과 함께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정신속성 부수현상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신속성 부수현상론은 정신속성이 물리속성에 대해 부수현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인데, 백도형의 유명론에서는 애초에 속성실재론을 인정하지를 않으니 이런 비판은 전제부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라이프니츠의 단자론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라이프니츠의 단자는 공간성만 있고 시간성은 반영되지 않는 반면 백도형의 4차원 개별자는 시간성까지 반영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시간성을 반영하는게 유의미한 이유는 무한성을 지향한 기존의 형이상학 체계와는 달리 세계의 유한성을 긍정하고, 무한한/절대적인 필연성은 언어의 차원에 남겨둠으로써 존재론적 부담을 덜기 때문이다.

나는 4차원 개별론의 귀결들은 동의가 되지만 4차월 개별자론이라는 형이상학 자체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데이비슨이 "개념적 도식에 대하여"에서 개념적 도식과 경험/실재의 이원론을 비판할 때 염두에 둔 것은 언어적 차원과 별개로 성립하는 존재론적 차원이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강한 실재론이 통약 불가능한 실재를 개념적인 것의 토대가 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면, 4차원 개별자론은 실재, 개별자가 언어와 상관이 없다는 일종의 회의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애초에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개별자들에 대해 성립하는 인과성의 언어라는 개념 자체는 상당히 회의주의적이다.

백도형이 잘 지적한대로, 실체-속성의 구분은 임의적인 구분일 따름이다.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개념을 통해 이를 해명할 수 있다. 우리가 주장할 것은 "이미 우리의 언어는 실재, 보편적 속성을 가정하지 않아도 잘 작동하고 있다"에 멈추면 되는 것이다. 언어와 별개로 존재하는 4차원 개별자, 언어를 규약하는 비개념적 실재 개념 그 무엇을 주장하든지 간에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일 뿐이다. 나는 백도형의 4차원 개별자보다는 맥도웰과 비트겐슈타인의 침묵주의가 보다 더 형이상학적 부담을 지지 않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4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