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번역)

삶의 의미 (meaning of life)

서문

많은 철학사의 인물들은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가"에 대해 답했다. 비록 이 삶의 의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예컨대, 인간의 기능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아퀴나스의 지복직관(beatific vision), 칸트의 최고선 등이 있다.
이와 연관되어 생각해볼 것은 다음과 같은 발언들이다. (성경 전도서의 저자로 상정된) 코헬렛은 삶을 '헛된 것'으로 묘사하며, '바람의 목적'에 비유한다. 니체의 니힐리즘이나 "우리가 원하는 것에 우리가 도달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깨닫게 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들이 있다.
여기서 사용된 개념들은 행복(happiness)와 덕, 혹은 이와 반대되는 것들과 어느정도 관계되어 있지만, 이들은 명시적으로 '사람이 그걸 깨닫게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이 중요해지는 가장 높은 최종 목표'에 대해서 말한다.

존경할만한 내력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집중할) 영미-호주권 철학에서 "삶의 의미"가 독자적인 영역이 된 것은 고작 1980년대쯤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깊이 있는 토론과 복잡성이 드러난지는 고작 20년 밖에 되지 않는다.
20년 전에는 "삶의 의미"에 대한 분석철학 전통에서, 이 주제는 "웰빙"(well-being)이나 좋은 성품(good character)에 비해 외진 곳이였으며, 이와 관련된 모든 글의 목록을 작성하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한 글이 수가 적었다는 뜻]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영미-호주권 철학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연구는 정말 다양해져서 여기서 모두 다루는게 힘들 정도다. 글의 일관성을 위해서, 책과 영향력 있는 에세이들, 보다 최근의 작업들을 다루겠다. 또한 다른 철학적 전통(대륙 혹은 아프리카)이나 비-철학 전통 (심리학 혹은 문학)의 기여는 배제하도록 하겠다.

이 글의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삶의 의미"에 대한 최근 분석 철학적 접근, 주요한 논점과 향후의 연구 방향이 될 수 있을 무시된 토픽에 대해서 숙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삶의 의미"라는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보통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무엇에 관해 말하는거야?" "삶의 의미가 그래서 뭔데?", "그래서 정말 삶에 의미란게 있어?" 분석적 글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지에 따라 유용하게 구성될 수 있다.
이 글은 우선 (1) "삶의 의미"에 대한 추상적/메타적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할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할 때, 우리가 목표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후, (2)(3) "의미 있음"의 본성(nature)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답변들을 다룰 것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마치 응용 윤리처럼 특정한 사례나 주제에 대해서 "의미"를 탐구하는 세부 영역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다운시프트족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지만, 그를 통해 많은 여가 시간을 보장받는 삶의 방식], 유전자 조작을 통한 능력의 향상을 받는 것, 무엇을 성취하는 것, 교육을 받는 것, 연구 참가자와 상호작용하는 것, 자동 노동, 아이를 가지는 것 등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 글은 "삶의 의미"에 대한 오늘날의 규범작-이론적 접근에 주로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접근은 "삶의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상황에 대해 단일하고 일반적인 법칙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4) 이 글은 니힐리점 관점에서의 새로운 의견들을 검토할 것이다. 니힐리즘은 어떠한 사람도 의미 있는 삶에 필수적인 상태를 가질 수 없고, 그러므로 모든 우리의 삶은 무의미하다는 관점이다.

(1) "삶의 의미"에서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가?

(1-a) '삶의 의미'의 범위 ; '삶 속의 의미'와 '인간 종의 삶의 의미'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의 한 부분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서 탐구하거나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체계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대다수의 글들은 "중요한"(importance)이나 "중대한"(significance)를 "의미 있음"과 동의어로 본다. 허나, 비록 불충분하게 논박할지라도, "의미 있음"과 중요함을 구분하려는 시도도 있다.
또한 "의미가 없는 삶"이라는 개념이 삶의 부조리, 헛됨(futile),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음"과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히 하는 유용한 방법은 그것의 전달자(bearer)를 특정하는 것이다. 논의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염두하는가? 표준적인 구분은 "삶 '속의'(in)의 의미와 좁은 의미에서의 "삶의 의미"다. "삶 속의 의미"는 한 인간이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고, (좁은 의미에서의) "삶의 의미"는 종으로서의 인간 전체가 의미가 있거나 없는지 물어본다.
(또한 최근에는 동물 혹은 인간 영아가 그들의 삶에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있다. 대부분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가능한 경우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덜 탐구된 문제로는 사람 집단이나 조직이 의미의 전달자가 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떤 상태에서 그러한지다.)

"삶의 의미"에 대해 논의할 때, 대부분의 분석 철학자들은 한 인간의 삶에서 의미있음이 드러날 수 있는지, 즉 "삶 속의 의미"를 탐구한다. 허나 요즘 소수의 사람들은 좁은 의미에서의 삶의 의미로 논의를 전개하기도 한다. 심지어 신이 있고, 신이 삶의 의미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인간 종보다는 한 인간의 삶이 신에 의해서 어떻게 의미 있어지는지 보다 자주 탐구한다. 비록 (좁은 의미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 역시 "삶 속의 의미"에 대한 탐구만큼이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분야의 대다수의 학자들은 개별 사람의 삶의 '의미 있음'과 어떻게 의미가 있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탐구한다.

"삶 속의 의미"에 집중하자면, 그것은 개념적으로 무언가 그 자체로 좋은 것, 혹은 그와 연관되어서 행동의 기본적인 의미를 부여해주는 무언가로 여기는 견해가 보편적이다. 요근래 소수의 사람들이 중립적인, 심지어는 원하지 않는 종류의 삶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지만은 말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표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1-b) 이거나 아니거나의 문제가 아닌 "삶의 의미"

상당한 합의가 있는 또다른 주장은 '삶의 의미'가 전부 아니면 없다가 아니라, 일종의 '정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컨대 삶의 어떤 시점에는 다른 시점보다 의미가 있다거나, 어떠한 삶 전체는 다른 삶 전체보다 의미있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명심할 점은 "어떤 한 사람의 "삶의 가치"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주장과, 그 두 사람이 도덕적 관점에서 동등하다는 주장이 양립 가능하다는 점이다.](결과론과 칸트의 예시가 나오는데, 잘 이해되지 않아 번역하지 않음.)

(1-c) 행복, 옳음과 구분되는 "삶의 의미"

"삶의 의미"에 대해 논쟁이 그다지 없는 다른 요소는, 이것이 개념적으로 행복 혹은 옮음과 구분된다는 점이다. 우선 누군가의 삶이 의미가 있는지 묻는 것은, 그의 삶이 쾌적하다거나 주관적으로 잘 사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가상 현실 기계 속의 삶은 분명 행복한 것이겠지만, 소수만이 이를 "의미 있는 삶"이라 여길 것이다. 기실, 어느정도의 사람들은 한 사람의 삶이 자신의 "잘 삼"(well-being)을 희생함으로써 의미가 있어진다고 말할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개인적 관심을 위한 돈을 타인을 돕는데 씀으로써 말이다.
둘째로, 사람의 지속적인 존재가 의미가 있는 것이, 그가 도덕적으로 올바른지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직관적으로 옳은 행동이나 도덕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삶의 의밀르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과학적 발견을 하거나 훌륭한 춤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누군가는 "삶은 기쁘지 않거나 도덕적이지 않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삶의 의미"에 대한 분석적 개념과는 멀리 떨어진 개념들 간의 복합적이고 실질적인 관계를 주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는 분석적으로 구분된다. 설사 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 후자의 질문의 답과 동일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할 때, 이는 1) (흑백이 아닌) 정도를 가지면서 그 자체로 좋은 것을 말하면서도 2) 개념저으로는 행복이나 옳음과는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다른 조건이 있을까? 이 최종 가치에 대해서 우리는 정의상 무엇을 추가할 수 있을까?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이 가상 현실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돌을 영원히 굴려야하는 시지프스와 같은 삶에는 "의미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의미 있음"이 고전적인 삼 항인 "선(the good), 진(the true), 미(the beautiful)"을 예시로 삼는다 볼 것이다. 이 진선미는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효용적 관계(beneficent relationships)(사랑, 동료관게, 도덕성), 지성적 반성(지혜, 교육, 발견) 그리고 창조성(예술 아니면 유머나 원예 같은 취미 활동에서의)를 보여주는 캐치프레이즈로 봐야할 것이다.

(미완성, SEP 내용인데, 원래는 다 번역하고 올리려고 했는데 이러다가는 초고조차 사라질 것 같아서 번역한 부분까지만 올립니다.)

6개의 좋아요

Meaning of life and death 책인가요? 1년전에 읽어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많은 부분이 일치하는거 같네요.

위 글은 번역하신 분이 밝혔듯 스탠포드 철학백과의 내용인데 그 작성자가 테디어스 메츠로 meaning in life라는 책을 쓰긴 했습니다.